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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엔지니어] 아무도 몰라주는 프로그램 개발자로서의 삶, 7부 그리고 파이썬 (Pyt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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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저는 의미 없는 단순 반복 작업, 불합리한 시스템, 검증 불가능한 성과물 등과 프로그램 언어로 맞서 싸워 왔습니다. 매번 그 싸움에서 이긴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이겨냈습니다. 제가 결국 성공하지 못했던 것들은 대부분 제가 공부해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영역이거나, 조직에서 굳이 단순 반복 작업을 끝까지 강요하는 경우들 뿐이었습니다. 저도 월급 받고 다니는 주제에 끝까지 싸워 보고, 지면 관두고 하는 극단주의자는 아닙니다. 나름 세상과 적절하게 타협하며 잘 지내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한 부분들은 과감하게 개선하려고 노력은 했던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과정은 험난했지만 항상 즐겁게 임했습니다. 나중에 개선된 모습을 보면 나름의 성취감이 컸습니다.

 

리습 (LISP)과 애플리케이션 용 비주얼 베이직 (VBA)을 자유자재로 실무에 적용하면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팀 페이크의 ‘타이탄의 도구들’을 읽으며 밑줄 치고 메모해둔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삶의 유일한 배움은 마이크로 (micro)에서 매크로 (macro)를 찾아내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제가 프로그램 언어를 공부하면서 불편하고 불합리한 시스템을 개선하고자 할 때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업무를 일단 아주 작은 부분으로 잘게 쪼개서 해체한 다음 완벽하게 구조를 이해한 다음 개선 가능한 부분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기존에 유지되던 시스템은 불편하지만 다들 어쩔 수 없이 순응하고 사는 이유는 바로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부터 완벽하게 이해하고 시작해야 하는데 그런 복잡함과 귀찮음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괜히 개선했다가 예측하지 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지고 싶지 않음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니 저 같은 누군가가 나서서 그 귀찮음과 책임을 대신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고 바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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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에게 대기업에서 일할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저도 대기업에서 일한다는 것에 대한 설레임 반, 호기심 반으로 기회를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상황이 훨씬 복잡하고 심각했습니다. 각자 맡은 직무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름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고 사내 시스템도 외주로 처리 후 오랫동안 구축되어 온 탓에 감히 손을 댈 수가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매출액이 조 단위를 넘어가니 모두가 현재의 시스템에 순응해야 했고 불합리한 시스템도 다들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지만 변화에 대한 의사결정이 매우 느리고 복잡했습니다. 제가 나서서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아예 없었습니다. 바로 옆에 앉은 다른 팀 직원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힘들만큼 각자 업무에 충실했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엔지니어들만 득실대는 회사만 다니다가 금융, 회계, 법무, 정보기획, 사업기획, 전략, 구매, 인사 등 비엔지니어들이 거의 95%인 회사는 처음이어서 엔지니어들의 불편함은 그저 잠깐의 ‘불평’ 정도로 치부될 뿐이었습니다. 훨씬 더 거시적인 시각과 안목으로 거대 담론을 다루고 있으니 작은 부분은 신경 쓸 여력이 없거나 개선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엔지니어가 엔지니어링 회사가 아닌 회사를 다니다 보니 좀 싱겁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대기업 방식의 업무 분장으로 예전보다 혼자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져서 저는 인공지능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세돌 9단을 이긴 그 알파고 같은 딥러닝 기반의 인공지능을 감히 제가 개발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제대로 알고 사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찾다 보니 파이썬 (Python)으로 딥러닝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드웨어의 제약으로 완벽하게 구현할 수는 없더라도 어떤 방식인지 체험은 해볼 수 있겠다 싶어서 일단 책부터 샀습니다. 이전에 이미 리습 (LISP) VBA를 마스터한 상태였으니 새로 프로그램 언어 공부하는 것이 훨씬 쉬웠습니다. 굳이 함수들을 외우려 하지 않고 파이썬이라는 프로그램 언어의 문법과 구성을 위주로 파악했고 예제 위주의 책을 사서 한 줄, 한 줄 천천히 따라하며 공부했습니다. 파이썬은 제 예상보다 훨씬 강력했습니다. 제가 처음 사서 본 책은 “파이썬으로 데이터 주무르기”였는데 파이썬으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크롤링 (crawling)하는 것에 푹 빠졌습니다. 중앙선관위 홈페이지로 가서 대통령 선거 득표율을 시군구 단위로 크롤링해서 분석한 후 지도로 나타내는 예제를 접하고는 무릎을 쳤습니다. 곧바로 제가 하는 업무에 적용 해봐야겠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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