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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엔지니어] 추신수의 발언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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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선수 추신수는 지난 2023 1 19. 미국 댈러스 한인 라디오 방송인 DKTV:DKNET에 출연하여 인터뷰를 했습니다. 당시 방송에서 한 얘기들이 일파만파 퍼졌고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은 약 일주일 정도 지났지만 추신수 선수에 대한 비판은 사그라들기는커녕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저도 평생을 야구 팬으로 살고 있고 프로야구의 역사를 모두 지켜봤던 한 사람으로서 한마디 하고자 합니다. 결론적으로 추신수 선수의 발언은 경솔했고 선을 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제 얘기가 감정적으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판이 비난이 되지 않도록 저도 신경 써서 글을 쓰겠습니다.

 

먼저 발언을 살펴보겠습니다. 발언 전문을 정확히 전달한 기사를 찾지 못해 여러 곳에서 가져와 짜깁기한 것이므로 발언의 순서와 어투는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작은 부분은 제외하고 발언의 맥락과 의중에만 집중하겠습니다. 그리고 치사하게 아들의 국적문제나 음주운전 얘기는 굳이 여기서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철저하게 추신수 선수의 발언과 관련해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얘기만 할 생각입니다. 먼저 추신수 선수의 얘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감싸주기보다 저는 한국이 용서가 너무 쉽지 않은 거 같아요. 사실 또 어릴 때 했다면... 잘못을 뉘우치고 처벌도 받고 출장 정지도 받고 다 했어요. 근데 국제 대회를 못 나가는 거에요. 박찬호 선배 다음으로 재능 있는 선수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다. 이 선수를 감싸주려는 게 아니다. 분명 잘못된 행동을 했다. 3자로서 들리고 보는 것만 보면 정말 안타깝다. 한국은 용서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잘못을 뉘우치고 처벌도 받고 출전 정지도 받고 다했다. 국제 대회에 못 나가는 거에 할 말은 많은데….

저는 제가 선배잖아요? 많은 야구 선배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일찍 태어나고 일찍 야구를 해서 선배가 아니라 이런 불합리하게 혜택을 보고 있는 후배들이 있으면 발 벗고 나서야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아무도 나서질 않아요. 저는 그게 너무 아쉽더라고요.

일본만 봐도 새로운 얼굴들이 많다. 나라면 미래를 봤을 것이다. 당장의 성적보다도 앞으로를 봤을 것 같다. 새로운 선수를 뽑았어야 했다

일본의 경우 국제 대회를 하면 새로운 얼굴이 되게 많다. 나 같으면 미래를 봤을 것이다. 당장의 성적보다 미래를 봤더라면 많은 선수들이 안 가는 게 맞다. 새로 뽑힐 선수가 더 많았어야 했다. 언제까지 김광현(SSG), 양현종(KIA)인가. 일본에서도 김광현이 또 있다는 기사가 나온다. 나도 경험을 해보니 (KBO리그에) 재능 있는 선수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런 선수들은 왜 안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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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존댓말과 반말이 섞여있는 이유는 여러 기사들에서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조금 읽기에 불편하셔도 양해 바랍니다. 그렇다고 제가 임의로 편집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이해는 됩니다. 선배로서 야구를 잘하는 안우진이라는 후배가 안타까워 보여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야구 팬으로서 언제까지 김광현과 양현종에게 선발투수의 중책을 맡겨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선수 구성에 관해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제가 추신수 선수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만큼 추신수 선수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거나 공감하려고 노력해봤는지 궁금합니다. 발언의 맥락만 집중해서 생각해봤을 때 제가 생각하는 추신수 선수 본인과 추신수 선수의 발언의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학교 폭력의 심각성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추신수 선수도 자녀를 둔 아빠로서 자신의 자녀가 학교 폭력을 당했다면 안우진이 받은 처벌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사회적으로 큰 문제로 다루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안우진 선수가 처벌로 고작 1년 정도 야구 못한 것과 피해자가 평생을 트라우마로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을 맞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큰 착각입니다. 만약 안우진 선수가 야구를 못했다면, 그래서 존재도 몰랐다면 그래도 같은 말을 했을지 의문입니다. ,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공인이 학교 폭력 자체에 대한 관심도 없는데 단순히 후배 야구 선수만 안타까워하니 비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안우진 선수는 처벌을 제대로 받은 적도 없고 용서는 오롯이 피해자의 몫이어야 합니다. 용서가 어려운 것은 그만큼 지은 죄가 무겁기 때문입니다. 추신수 선수가 말한 용서는 아마 안우진 선수가 받은 처벌만을 한정지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처벌은 KBO와 구단에서 내린 처벌이었을 뿐, 사회적인 합의에 의한 처벌도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했다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형사 처벌을 받았다면 법원의 판결이 사회적 합의에 의한 처벌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처벌이 합당한지 누구도 결정할 수 없습니다. 사회적 합의에 의한 처벌을 받았다고 해도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주홍글씨를 평생 안고 살아야 합니다. 당연히 사회적인 질서를 위해 가해자가 감수해야 할 부분입니다. 학교 폭력, 군대 폭력, 데이트 폭력, 성폭력 등으로 벌금내고 징역 살면 이제 용서 됐으니 뭘 하든 우리 모두는 상관 말자는 것과 같습니다. 프로야구 선수는 많은 인기를 얻고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 야구를 잘하면 당연히 높은 사회적 위치를 누리게 될 텐데 살인을 저질러도 처벌만 받으면 그만이라는 것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피해자는 TV를 볼 때마다 환하게 웃는 가해자를 보게 될텐데 용서를 누가 할 수 있다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인식은 전두환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저는 동의하지 않지만 어떤 세력은 전두환이 경제는 잘했다라고 칭송합니다. 백번 양보해서 전두환이 경제를 살리고 경제 분야에 일조했다고 칩시다. 추신수 선수의 논리대로라면 12.12 쿠데타로 사형선고 받고 징역 조금 산 것으로 용서가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럼 5.18 희생자들과 유족들요? 직접적인 피해자들은 전두환이 사망한 후인 지금도 용서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 얘기가 논리의 비약이라는 비판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 얘기의 취지는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처벌과 피해자로부터의 용서만 필요한 것이지 안우진 선수가 국가대표가 되느냐의 문제는 논란의 대상이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셋째, 야구만 잘하면 된다는 인식이 문제입니다. 공인으로서 인기와 부를 누리게 될 선수가 야구만 잘하면 된다는 인식은 매우 저급합니다. 그런 생각이야말로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방식입니다. 우리나라도 오래 전 다들 못먹고 못살던 시절에 사회적으로 다양한 방식의 폭력에 노출되어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다들 참고 살았고 어느 누구에게도 말도 못하고 지내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시인이 시만 잘쓰면 된다는 논리로 유명 시인에게 성폭행을 당했지만 말도 못하고 살았던 어느 여류시인의 미투 운동, 회장님의 갑질을 참고 또 참다가 폭발해서 언론에 폭로한 운전기사들, 군대 내 폭력에 못 견디고 자살한 청춘들 등 우리 사회에 일상이었고 만연해왔던 갑질과 폭력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는 요즘, 추신수 선수의 말은 시대를 역행하는 발언입니다. 야구만 잘하면 된다는 인식이 저면에 깔려 있으니 야구 잘하는 후배가 안타까워 보인 것 같습니다. 추신수 선수가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아빠라면 야구 잘해봤자 사회적 일탈 행위를 하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가르쳐야지, 다른 것은 신경쓰지 말고 야구만 잘하라고 가르치면 안됩니다.

 

넷째, 사대주의 (事大主義)에 매몰되어 다름과 틀림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토목 엔지니어인 저도 반성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저도 학교 다닐 때 일본 책을 번역한 듯한 한자 투성이의 전공 책들과 아예 번역도 귀찮았는지 영문 그대로의 전공 서적들로 공부했습니다. 교수님들과 선배들에게 우리나라의 설계 기준들이 모두 일본과 미국을 베낀 것이라는 설명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공부했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는 미국 엔지니어들과 일하며 미국의 설계 기준부터 배웠습니다. 미국 엔지니어들의 일하는 방식, 설계 프로세스, 시스템 등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30대 후반에는 일본에서 약 5년간 근무하면서 일본 엔지니어들과 함께 일하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런 제가 한국의 설계 시스템, 설계 기준, 설계 문화를 볼 때마다 추신수 선수와 똑같이 생각했습니다. 항상 안타까웠고 왜 못 바꾸고 안 바뀌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국내 설계회사에 몇 년간 몸담고 일해본 적도 있지만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돌아와 한국 회사에서 국내 방식대로 몇 년간 일해보니 제가 사대주의에 매몰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아직 개선해야 될 점들이 너무나 많고 이해하지 못할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렇더라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근대화와 산업화를 겪으며 지금의 모습을 갖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왔는데 단순히 문제있음을 지적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공감부터 해야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만의 방식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수용하고 불합리한 부분을 조금씩 개선하는 방향으로 다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추신수 선수도 저와 같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청소년 시절에 열악한 상태에서 야구하다가 미국에 가서 약 20년간 야구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미국의 야구 인프라가 기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야구를 해봤을 때 참담하고 비참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전철 (前轍)을 그대로 밟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대주의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몇 년 걸립니다. 게다가 한국에서만 살 생각은 없어 보이므로 영원히 못빠져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섯째, 현재 한국 프로야구 대표팀 감독과 기술위원들의 고민과 역량을 무시했습니다. 저도 김광현이나 양현종에게 더 이상 기대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 프로야구의 현실이 그런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성적을 포기하고 유망주들에게 기회를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현재 국가대표팀 감독인 이강철 감독과 기술위원들이 하지 않았을까요? 당연히 깊이 고민했을 테고 결론은 무조건 성적을 내야 한다고 내려졌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 카타르 월드컵을 모두 지켜봤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손흥민 말고는 선수들 이름도 잘 모를 정도로 인기가 별로 없는 한국 축구가 16강에 진출하니 세간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따라서 인기가 점점 식어가고 있는 KBO 입장에서 성적마저 내지 않으면 존폐의 기로에 설 수도 있다는 절박함을 이해하고 공감해야 합니다. 어떻게든 없는 전력도 쥐어짜서라도 성적을 내고 싶어서 어렵게 만든 대표팀 구성을 미래의 유망주를 키워야 한다는 낭만적인 발언으로 자신보다 더 위에 있는 선배들의 노력을 일순간에 폄훼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추신수 선수가 평소에 강조하는 야구장 인프라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도 적극 공감합니다. 당연히 갖춰져야 할 기본적인 시설들인데도 아무도 나서서 투자하려고 하지 않으니 문제입니다. 그런 노력을 현실적으로 야구인들이 나서서 하기 어렵습니다. 운 좋게 SSG 구단주는 돈이 많아 가능했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기업들을 추신수 선수가 원하는 기준에 맞게 투자하도록 움직여야 하는데 말 몇마디 한다고 쉽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려면 야구의 인기가 많아져야 하고, 팬들이 많아지면 수입이 늘어나니 자연스럽게 투자가 늘게 됩니다. 그래서 성적을 내서 팬들을 끌어 모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입니다. 국제 대회 성적도 잘 나오지 않으면 팬들이 야구장을 찾지 않을 것이고 구단을 운영하는 기업은 투자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게 우리 현실이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국제 성적과 무관하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스포츠는 미국에나 있을 뿐 우리나라에는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추신수 선수의 발언은 잘못되었고 경솔했습니다. 그는 자나깨나 야구만 생각하고 야구만 아는 탓에 다른 부분들은 잘 몰라서 그랬던 것으로 보입니다. 안우진 선수는 피해자에게 진심어린 용서를 구하고 나서 야구 팬들이 욕할 때마다 평생 고개 숙이고 사과하며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프로야구 선배로서 추신수 선수가 진심으로 안우진 선수를 안타까워하고 있다면 몇 마디 말이 아니라 모든 선수들과 함께 학교 폭력 추방 캠페인, 학교 폭력 예방 단체에 기부, 학교 폭력 피해자 트라우마 치유 센터 지원 등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래서 야구를 시작하는 모든 아이들에게 학교 폭력을 저지른 가해자는 내 후배가 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제시히야 합니다. 그렇게 모범을 보인 스포츠로 거듭날 때 프로야구는 인기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프로야구 선수가 학교 폭력, 음주운전, 약물 복용 등의 죄를 저지를 때마다 솜방망이 처벌 후 감싸주고 용서부터 운운하는 것은 그 자체로 프로야구가 프로 스포츠로서의 자격이 없음을 그대로 반증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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