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제가 지난 2011년 오토데스크 파워유저 1기로 활동하면서 직접 쓴 컬럼입니다.
필자의 지난 BIM (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관련 글을 읽고 토목 업계에서 잔잔한 반향과 반색이 동시에 이루어지며 많은 관심과 이목을 받았습니다. 오토캐드의 오랜 사용자로서, 그리고 토목 기술자로써 쓴 글로 모두에게 피부에 와 닿는 얘기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첫 번째 글을 쓴 후 필자가 공부하고, 실제로 받았던 질문들과 들었던 얘기들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토목 업계의 BIM 관련 두 번째 글을 쓰고자 합니다. 이 글을 읽기 전에 반드시 첫 번째 글을 먼저 읽어 주기 바랍니다. 제목은 “지금은 BIM 시대 (토목 엔지니어에게 BIM이 갖는 의미)” 였으며, 아래의 두가지 방법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1. 캐드앤그래픽스 : 2010년 9월호 참고
2. 필자의 블로그 : 지금은 BIM 시대 (토목 엔지니어에게 BIM이 갖는 의미) (tistory.com)
BIM에 대해 점점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는 것을 이미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몇몇 대기업들에게 심한 우려와 진지한 질문들에서 느끼고 있습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토목 설계를 하는 엔지니어링 업체 몇 곳의 사내 게시판에 필자의 글이 링크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소위 잘 나간다는 회사에 다니는 친구 녀석이 대뜸 전화해서 짜증 섞인 말투로 “도대체 BIM이 뭔데?” 라고 말하며 전해준 소식이었습니다.
필자의 글이 이목을 끌었던 이유는 아마도 필자의 독특한 이력과 위치 때문일 것입니다. 대한민국토목 분야의 BIM 관련 세미나와 관련 글들을 - 양은 많지 않았지만 – 필자도 접해 보았습니다. 거의 모두 학계에서 유명하신 교수님들과 소위 벤더 (Vendor)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많이 배웠고, 많이 느낀 것도 사실이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교수님들께서는 학계에서 연구를 주로 하시고 차상위의 몇몇 회사들과 교류를 하시다 보니 업계 전반에 대한 현실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고 – 물론 필자의 편협한 편견이겠지만 -, 더구나 말씀들이 너무 어렵습니다. 벤더들의 경우는 강좌와 교육을 진행하며 업계의 현실에 밝은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토목 엔지니어로써 대형 토목 프로젝트를 BIM으로 진행한 경험이 전무하며 – 물론 필자도 마찬가지지만 -, 그들의 강좌나 교육은 항상 “이래서 이 소프트웨어를 사세요.”라고 결론이 나니 이 또한 아쉽습니다.
그러니 필자와 같이 토목 분야의 경력도 어느 정도 있고, 오토캐드 실력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고, 게다가 영어로 해외의 동향 파악과 정보 공유가 가능한 토목 엔지니어가 직접 쓴 글에 반응이 보다 빨리 오는 것이라고 나름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내 설계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위치에 있다 보니, 근처에서 나무도 보고, 멀리서 숲도 볼 수 있는 독특한 이력과 위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토목 엔지니어들은 BIM의 ‘B’ 때문에 적잖이 혼란스러워하고 때로는 언짢게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필자가 토목 엔지니어라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사실 그것도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건축과 토목을 헷갈려 하는 일반인들에게 혼란만 더욱 가중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별 것도 아닌 것으로 괜한 자존심(?) 때문에 그러는 것 아니냐는 눈초리도 있을 수 있지만 전 세계의 토목 엔지니어들은 이 용어를 업계에 받아들이는 최초 도입 시기인 지금 아예 새로운 용어를 만들자는 움직임도 있음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가령 CIM (Civil Information Modeling)과 같이 말입니다.
물론 토목 엔지니어들도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동의합니다. building이라는 용어를 건축이 아닌 건설로 이해하면 충분히 수용 가능한 용어가 되기 때문입니다. 건축과 토목이 다른 용어를 사용하면 분명히 그 접점에서 혼란이 발생할 수 있으니 통일하는 것이 효율 측면에서 훨씬 유리할 것입니다. 게다가 건축에서 먼저 시작해서 그 동안 많은 노하우들이 축적되었으니 토목에서 새롭게 기준과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보다 건축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것이 쉽고 빠를 것이므로 더욱 용어에 대한 문제는 이쯤에서 접어두는 것이 모두에게 이롭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엔지니어들의 공감을 얻었던 부분이 바로 “세부 분야 통합”이었습니다. 현재 토목 분야의 BIM 도입에 가장 큰 걸림돌이자 난제입니다. 현실적으로 토목에서 BIM을 도입하려는 데에는 꽤나 절박한 현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바로 엔지니어링 회사들의 “자생력”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지난 1부에도 언급한 문제인데, 토목 엔지니어링 회사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졌습니다. 우선 정책적으로 국내 전체 예산 대비 SOC 토목 건설 예산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습니다. 일이 없어진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뛰어난 시공 기술력과는 달리 영종대교, 인천대교 등 중요한 설계는 우리가 하지 못할 정도로 설계 기술력은 세계적으로 뛰어난 편이 아닙니다. 자생력은 없고 시공사의 ‘을’로써 턴키에 참여해 국내외로 경험도 쌓고 실력도 쌓아왔지만, 예산 축소로 인해 이것마저도 줄어드는 추세로, 결국 몇몇 회사를 제외하고는 심각한 수준에 도달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자생력”을 갖고자 일이 없는 국내를 벗어나 직접 해외 프로젝트 수주에 엔지니어링 회사들이 도전해봤지만, 높은 인건비, 불필요한 세부 분야와 뛰어날 것 없는 기술력으로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높은 인건비와 불필요한 세부 분야를 포기할 수 없으므로 이제 남은 선택은 뛰어난 기술력을 통한 고급화 전략이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몸값이 비싸서 누구나 하는 설계는 못하니까 이제까지 아무도 해내지 못한 설계를 해보자는 것입니다. 해외에서 그걸 하려다 보니 BIM이 대세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이제 BIM을 공부하고 국내에까지 도입하려는데,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세부 분야 통합” 문제가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 과정을 설명한 이 부분에 있어서는 현저한 시각차와 약간의 오류가 포함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 시간이 얼마가 걸려도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설계든 시공이든 우리나라의 토목에서는 ‘코디네이터’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 사람의 엔지니어가 모든 일을 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시단지 설계에서는 지반, 도로, 상수도, 하수도, 부대공 등으로 나눠 각각 설계한 뒤 하나로 취합하는 역할이 필요하고, 교량의 시공 현장에서는 공구별 하도급 업체 관리부터 시작해서 교량, 구조, 지반, 도로, 상수도, 하수도, 부대공 등의 세부 공종을 취합하고 관리하는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니 아무리 각각의 공종을 잘 수행해도 코디네이터가 잘하지 못하면 거의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여기서의 문제는 거의 반드시 일정과 비용의 손실로 이어지게 됩니다.
도로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운전하면서 차가 막힌다고 불평하고 길 찾아가는 데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토목 엔지니어들에게 도로라는 것은 모든 최첨단 공학과 기술력들의 총집합이라 이해합니다. 정책적인 부분을 완전히 배제하고 공학적인 얘기만 놓고 보자면, 도로는 땅 위에 포장만 얹어 놓는 것이 아닙니다. 포장 구조체에 대해 지반 및 지질 상태와 지하수 위치 등을 조사하고, 미리 교통량을 예측하여 그에 대한 하중을 계산하여 포장의 두께를 결정하고 배수 계획까지 포함하여 설계를 완료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선형의 종단 및 횡단 설계, 시야 확보, 배수 시설, 원심력을 위한 편구배, 설계 속도, 주변 환경과의 조화 등 수많은 요소들을 염두에 두고 설계해야 합니다. 게다가 도로에는 교량, 터널 등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더욱 복잡한 설계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의 도로를 위해서 토목 엔지니어들은 도로공학, 교통공학, 항만공학, 해양공학, 수리학, 수문학, 상하수도공학, 구조역학, 토질역학, 지반 및 기초공학, 측량 및 지형공간정보학, 환경공학, 도시공학 등 모든 토목 공학적 기술들을 쏟아 부어 설계합니다. 울퉁불퉁, 꼬불꼬불 그냥 대충 만든 것 같아도 교통사고를 가장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과학적으로 최적화하여 설계한 것이 바로 우리가 매일 지나다니는 도로라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모든 공학요소들을 기준으로 엔지니어링 회사 내에 세부 부서를 만들기 시작했고 – 물론 일본을 따라 한 것이지만 -, 가장 큰 설계 회사의 경우 그 수가 많게는 20여 개가 됩니다. 이제 이들에게 BIM을 화두로 던졌습니다. 그들의 반응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20여 개의 부서가 협업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회의가 많을까요?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우리가 할 일인지 다른 부서가 할 일인지를 놓고 한참을 회의하기도 하니 말입니다. 게다가 설계는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므로 한 곳에 실수가 있거나 변경 사항이 생기면 전 부서가 동시에 수정을 해야 하는 사태가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것은 인력 및 시간 낭비의 근본적인 원인이 됩니다. 따라서, Civil3D를 예로 들어보면, 도로부에서는 Civil3D의 수많은 기능들 중에서 도로 관련 기능만 사용하고, 상하수도부는 관망 관련 기능만 사용하는 식이니 대한민국에는 토목 엔지니어가 Civil3D의 모든 기능을 사용하는 사람이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니 벤더가 Civil3D 기능에 대해 아무리 교육과 강좌를 열심히 해도 자신의 부서와 관련 없는 기능은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기술적인 문제가 아닌 민원 문제, 정책적 문제, 인허가 관련 업무 등까지 엔지니어들에게 맡기는 업무 구조 또한 반드시 선결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필자와 친분이 있는 대부분의 토목 엔지니어들은 기술 업무가 아닌 보고서 예쁘고 많이 만들기, 인허가 서류 준비 등이 자신의 업무 중에서 절반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인허가 잘해서 대접받는 엔지니어도 있다고 하니 웃을 일만은 아닙니다. 이런 구조 하에서 토목 분야의 BIM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을뿐더러 “자생력”을 가지고 해외로 진출할 수도 없습니다. 제가 자신 있게 말씀 드리는데, 토목 분야의 BIM은 업체들 자체에서 수행하는 것보다 외주로 처리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복잡한 이 개념을 자체에서 책임지고 수행할 임원이 내부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돈 주고 얼른 처리할 방법인 외주 용역으로 처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두고 보시죠. 제 예상이 틀릴 것인지, 맞을 것인지.
모든 설계 과정을 손으로 하던 시절에는 수많은 단순 작업들을 위한 자동 계산 및 자동 도면 작도가 필요했었습니다. 이때 계산기와 PC의 보급, 그리고 오토캐드의 등장은 모든 설계인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불과 20년 전쯤에 토목 설계 자동화에 대해 인터넷에서는 약간의 소동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물론 종결된 사안이라 볼 수는 없다. 논란의 핵심은 이랬습니다. “토목 엔지니어들에게 설계의 완전 자동화가 과연 필요한가”였습니다. 누구나 쉽게 마우스 버튼 몇 번 클릭해서 설계할 수 있도록 하고 내역 산출도 자동으로 할 수 있도록 모든 시스템을 자동화하자는 아이디어에 대해 수많은 엔지니어들은 우려를 표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초등학생도 설계할 수 있느냐는 반론이었습니다. 결과에 대해 책임지고 검증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였습니다.
사실 두 입장 모두 이해가 됩니다.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제발 야근 좀 줄이자는’ 현실적인 점이 반영이 되어 있는 것이고,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엔지니어의 존재 이유’에 대한 원칙적인 접근이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공학적 문제들까지 완벽하게 ‘툴’로써의 소프트웨어로 제어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반영된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둘 사이의 절충점이 생기기 시작했고 – 물론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얘기입니다 –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Civil3D와 같은 BIM 소프트웨어입니다. 도면 작성 수준은 거의 자동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검토 기능과 간섭 검사 기능까지 구현하면서 복잡한 역학적 계산까지 어느 정도 도입했으니 말입니다.
2010년 조달청에서 먼저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물론 용어의 정의 대로 건축 분야부터 시작했지만 토목 분야도 조달청 발주 공사라면 해당이 됩니다. 한국형 BIM의 성공 여부는 아직 불투명합니다. 성공을 하더라도 국내에서만 성공한다면 역시 거시적인 관점에서 해외에서 적용하기 힘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시행착오를 겪고 어떤 과정을 겪고 정착이 될지 지켜볼 일이지만 지금으로써는 토목 분야의 변화가 우선인 시점이라 걱정이 앞섭니다.
첨언
그 후 11년 후 2021년에 국토교통부에서 “BIM 기반 건설산업 디지털 전환 로드맵”을 발표했습니다. 10년 동안 뭐하다가 이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업계에서는 혼란이 큰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제는 강제로라도 BIM으로 해야 하니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BIM 도입하다가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속담이 생겨날 판입니다. 이런 복잡한 와중에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것은 1969년 달나라에 다녀온 아폴로 11호와 1937년 완공된 금문교 (Golden Gate Bridge)는 모두 손으로 설계한 것이란 사실입니다. 엔지니어의 본질에 대해 성찰하기 바랍니다.
BIM이든 뭐든 엔지니어를 위한, 엔지니어에 의한, 엔지니어의 몫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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