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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엔지니어] 치과와 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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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금전적인 재산 (財産)은 없지만, 나름 자랑할만한 자산 (資産)은 있습니다. 정확히 이젠 있었습니다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치아와 시력입니다. 눈과 이의 건강이 타고난 것도 복이라고 하던데, 저는 그런 점에서 복을 타고 났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우리나라가 그리 위생적인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살던 풍납동이라는 동네는 제가 태어날 때만 해도 강남구였다가 강동구로 편입되었고, 이후 송파구로 편입된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한강 옆에만 가면 냄새가 심했었고, 비가 오면 하수가 역류하는 일도 빈번했었습니다. 동네 골목에서는 버려진 석면을 뜯어다가 쓰레기랑 함께 둘둘 말아서 공이라고 치고 축구를 하며 놀았던 기억이 있을 정도입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그런 곳에서 어떻게 살았나 싶습니다. 그러니 아파도 왜 아픈지 모르고, 병원에 가도 의료가 지금처럼 발달을 못했으니 잘 낫지도 않았으며, 다들 가난했으니 병원도 못가고 그냥 참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눈부터 얘기하면, 시력은 40대 초반까지 양쪽 눈 모두 1.0이었고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안경을 써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20대 후반까지는 2.0을 유지하고 있었고 30대 초중반부터 1.5 정도로 내려왔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어릴 때 눈에 이른바 다래끼라고 불리는 눈꺼풀이 세균에 감염된 질환으로 고생할 때도 그냥 약국 가서 안약 하나 사서 눈에 몇 번 넣으면 끝났고, 커서는 걸려본 적도 없었습니다. 살인적인 야근을 견디다 보면 피곤해서 실핏줄이 터지거나 안구 건조증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생각도 안 해봤습니다. 그렇게 저는 태어나서 안과에 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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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치아 얘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저분한 동네에서 살면서 씻는 것을 싫어해서 양치를 그리 열심히 한 적도 없었는데 태어나서 지금까지 충치가 있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나마 어렸을 때부터 과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덕분인 것 같습니다. 먹어 보면 맛있긴 한데 지금 뭔가를 먹으면 밥을 덜 먹게 되는 게 싫었습니다. 뼈만 앙상한 체형인데 밥은 두세그릇씩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이유는 하루 세끼 식사 외에는 물도 안 먹을 정도로 간식, 군것질, 야식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릴 때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올 때도 치과를 간 것이 아니라 어머니께서 실로 빼주시거나 제가 직접 혀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뺐었습니다. 학교에서 때마다 위생상태 검사나 치아 검사를 할 때면 충치가 없는 거의 유일한 학생이었습니다. 충치가 아니더라도 잇몸이라도 아플 수 있는데 저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30대 초반에 스케일링이라는 것을 처음 받을 때 치과라는 곳을 처음 가봤습니다. 아파서 간 것은 아니니 예방의 목적이지 치료 목적으로 갔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1년에 한 번 정도 받다가 35살쯤 되었을 때 스케일링을 받던 중 의사 선생님께서 양쪽 윗니 끝에 있는 사랑니 두 개는 지금 빼지 않아도 되긴 하지만 내버려 두면 충치가 될 수 있으니 빼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시길래 그 자리에서 뺐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예방의 목적이니 제외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태어나서 안과와 치과를 아프거나 안 좋아서 찾아간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48살까지는 그랬습니다. 가장 먼저 이상 신호가 온 것은 치아였습니다. 48살 되던 해에 갑자기 잇몸이 붓고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잇몸이 붓는 경험을 처음 해봐서 너무 아프고 불편했습니다. 팀원 하나가 타이레놀을 먹으면 좀 낫다고 해서 먹어보니 신기하게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타이레놀이 해열제의 역할 뿐만 아니라 진통제 역할을 하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타이레놀을 먹으면 좀 낫길래 버텨봤는데 잇몸이 붓는 빈도가 점점 늘어나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드디어 제 발로 치과를 처음 찾아갔습니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오른쪽 아래 어금니를 둘러싼 잇몸이 주저않았고 그 아래 뼈가 녹아서 이가 공중에 붕 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곧바로 견적 받고 임플란트 시술을 시작해서 몇 개월간 뼈 이식과 함께 치아 하나를 새로 채워넣었습니다. 지금은 원래부터 제 치아인 것처럼 잘 쓰고 있지만 치과를 처음 간 경험은 정말 강렬했습니다. 제 잇몸 속에 뼈를 이식하고 나사를 심는 과정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눈은 이처럼 통증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45살 무렵부터 매년 건강검진을 받으면 시력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딱히 불편한 것은 없어서 그냥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49살이 되면서 회의실에 회의를 하러 갔는데 약 4m 정도 떨어진 회의실 대형 모니터에 띄운 PPT 글씨가 흐리고 번져서 읽을 수가 없는 것을 처음 경험했습니다. 눈을 치켜 떠 보기도 하고, 게슴츠레하게 떠 보기도 하고, 감았다가 떠 보기도 했지만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제 발로 안과를 찾아갔습니다. 양쪽 눈의 시력은 모두 0.3이 나왔고, 노안, 근시, 난시가 동시에 한꺼번에 왔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곧바로 와이프와 딸 아이를 모두 데리고 안경점에 갔습니다. 생애 첫 안경이니까 어떤 안경이 어울리는지 봐달라고 제가 부탁해서 함께 갔고 여러 검사들을 받은 후 드디어 안경을 맞췄습니다. 안경을 써보니 세상이 달라 보이더군요. 시력이 좋았을 때 세상이 이렇게 보였었나 싶을 정도로 깨끗하게 보였습니다. 태어나서 49년만에 안경점을 다 와보다니 마냥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눈과 이가 건강했다고 자랑삼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하다고 자만하지 않고 미리미리 정기적으로 치과와 안과를 다녔다면 이런 일들을 좀 더 늦출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에 얘기를 꺼낸 것입니다. 사람은 꼭 위기가 닥치거나 아파봐야 정신을 차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확실한 동기부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좋게 말하면 먹고 살기 바빠서 일테고, 현실적으로 말하면 병원에 가기 싫고 귀찮아서 일테고, 솔직하게 말하면 아프지도 않은데 굳이 돈과 시간이라는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아픈 사람들이 시간을 되돌려 그때로 돌아가면 모두 건강 관리를 잘하겠다고 하는 말들은 모두 과거로 갈 수가 없으니 그냥 하는 말일 뿐입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다시 돌아가도 그렇게 못할 것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못하는 저 같은 사람들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합니다. 물론 다 압니다. 모두 다 아는 쉬운 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 하루도 반성과 함께 시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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