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아쉬운 점을 얘기하다 보니 마치 제가 교육 전문가라도 된냥 잘난 척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철저하게 학부모의 시각으로, 대한민국 교육의 수혜와 피해를 동시에 경험한 학생의 경험으로, 그리고 주권자이자 납세자의 자격으로 개인적인 생각을 얘기하려고 합니다. 아마 저도 어린시절부터 환경이 지금과 달랐다면 사교육에 매월 몇 백만원씩 지출하거나 사교육의 신봉자로 삶을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공감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연대 의식과 나도 저렇게 살았을 수도 있겠다는 공감이 사회 이슈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감 없이 비판만 하면 그건 그냥 욕입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생각한 것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비판도 하지만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 제도가 더 문제냐, 교육열이 더 문제냐 하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것과 유사한 논리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교육 제도가 저러니 교육열을 부추긴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교육열 때문에 교육 제도가 저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엄청난 교육열을 교육 제도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두 가지 모두 문제입니다. 기본적으로 교육열에는 학부모들의 욕망이 투여되어 있고, 교육 제도는 정치적인 욕망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백년지대계 (百年之大計)로써의 교육이 아니라, 학부모들은 자식이 성공해서 덕분에 부유해지거나 남들에게 자랑하길 바라고, 정치인들은 정권을 잡으면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을 심어 놓기를 바라는 교육이 되어 변질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와 같이 교육에 관한 사회적 현상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크게 여섯 가지 정도입니다.
첫째, 큰 돈을 들여 교육을 시키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솔직하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아이를 위한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원한 적이 없습니다. 돈을 쓴 만큼 아이의 성적이 좋아지지 않으면 항상 하는 말이 “내가 너를 위해 피 같은 돈을 써가며 공부시켰는데 너는 왜 그러느냐”는 것입니다. 처음 학원에 보내기 시작할 때 아이를 달래주며 했던 말은 “다 너 잘 되라고 그런 거야”였는데 그게 실패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입니다. 아이는 처음부터 원하지 않았는데 누구를 위해 돈을 쓴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둘째, 공부를 강요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입에서 단 내 나도록 공부해봤습니다. 공부라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고독한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공부를 아이에게 강요하는 것은 학대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외롭고 고독한 길을 가지 않으면 혼내겠다고 등 떠미는 것은 아이를 절벽으로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부모가 그렇게 공부한 적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몰라서 그렇다고 말을 하던데, 정작 부모들은 아이들처럼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습니다. 즉, 부모도 모르는 교육 방식을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적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과외와 학원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잘 사는 집에서나 학원을 다녔고 저는 몇 개월 다니다가 비싸서 제가 먼저 그만 다니겠다고 했었습니다. 다들 학원을 다녀봐야 몇 개 다니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밤 9~12시 사이에 집에 들어옵니다. 그렇게 공부해보지 않은 부모들이 꼭 후회된다며 아이들을 그렇게 만듭니다. 솔직히 저는 비겁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소중한 추억을 가질 수 있는 시간도 일종의 기회 비용인데 자신들은 어릴 적 추억 다 가져 놓고 아이들의 기회 비용을 빼앗는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넷째, 사교육을 하는 근거가 불명확합니다. 대부분 주변에서 들은 얘기들 뿐입니다. ‘이렇게 하면 좋다더라’, ‘여기 학원이 잘한다더라’, ‘누구네 집은 학원 보냈더니 1등을 한다더라’는 게 전부입니다. 그래서 저는 공포 마케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다가 내가 (또는 아이가) 뒤쳐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교육을 하면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환상이고 착각입니다. 그렇게 해서 성적이 좋아지는 아이는 원래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데 혼자서 공부하기 어려워하는 성향까지 잘 맞아떨어졌을 때 얘기입니다. 아이는 공부에 흥미가 없거나 자기 주도 학습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하는데 학원에 보내면 역효과만 납니다.
다섯째, ‘서울대 나오지 못한 낙오자’라는 패배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서울대를 나왔거나, 서울대에 가지 못한 사람들 뿐이라는 발상이 문제입니다. 저는 반대로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부모가 서울대를 못 나올 정도로 공부 못하고 실패했는데 아이들은 왜 가야 할까요? 서울대를 가지 못하면 사람 구실 못하나요? 대한민국 국민 중 5천만명 정도는 서울대를 못 나온 사람들인데 세상은 잘만 돌아갑니다. 부모들은 서울대 근처도 못 가봤으면서 아이에게 눈만 뜨면 서울대 얘기하며 공부를 강요하는 것은 그저 자신의 피해의식, 열등의식, 패배의식을 아이에게 주입시키는 것밖에 안 됩니다. 서울대 못 나와도 자신들은 사는데 큰 지장 없으면서 아이들에게는 큰일 날 것처럼 얘기하면 안 됩니다. 물론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고 불평등해서 서울대 나오면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서울대를 못 나왔다고 ‘루저’라고 생각하며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여섯째, 지금의 교육은 제4차 산업혁명에 맞는 교육이 아닙니다. 제가 공부했던 80년대에는 산업화 시대에 맞는 교육 제도로 국력이 부강해졌는지 몰라도 이제는 그런 세상이 아닙니다. AI와 로봇으로 대변되는 제4차 산업혁명을 우리 교육이 반영하고 있는지 의문이지만, 사교육은 더더욱 거리가 멉니다. 시험 점수 높이는 데에만 특화된 사교육 시장에 2021년 기준 23조원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학부모들이 1년 동안 사교육에 쏟아 부은 돈의 총합이 23조원이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큰 아이들이 해외에 나갔을 때 경쟁력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사교육으로만 공부했는데 더 이상 사교육이 없는 환경에서 자기 주도적으로 일하고 공부할 수 있을지 심히 걱정됩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대학 공부와 직장 업무를 위한 또 다른 사교육을 찾아 다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교육 제도를 보면 놀라운 점들이 참 많습니다. 무조건 베끼자는 것은 아니지만 큰 틀에서 그들의 교육 철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합니다. 전 세계 중고등학생들 모아 놓고 수학 문제를 풀게 하면 우리나라 학생들이 항상 1, 2위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세계적으로 과학과 기술 분야가 가장 뛰어나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기초 과학 분야는 오히려 낙후되어 노벨 물리학상이나 화학상은 받아본 적도 없거니와 인공지능 분야는 현재 거의 낙제점에 가깝습니다. 교육으로 모두가 스트레스를 받지만 성과 마저도 없으니 더 큰 문제입니다. 차라리 유럽처럼 어릴 때부터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라도 없었으면 인생이라도 즐겁게 살 텐데 모두가 힘든 구조입니다.
선진국 교육 제도의 철학은 딱 한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공부할 사람만 공부하자는 겁니다. 어차피 공부가 좋아서 서울대 가고 훌륭한 학자가 될 사람은 어떤 제도를 도입해도 공부할 테니 상관없지만, 최소한 공부에 재능과 흥미가 없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군대의 모병제와 유사합니다. 가기 싫은 남자들까지 모두 군대 갈 필요 없이 가고 싶은 사람만 가자는 것입니다. 심화 교육은 원하는 사람들만 받게 하고, 이외의 공교육은 최소한의 지식과 인성 위주의 교육만 모두가 받도록 해야 합니다. 게다가 뒤늦게 재능을 발견하거나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도 언제든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해외의 교육 제도를 다룬 다큐멘터리들이 유튜브에 많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Ken Robinson의 “Do schools kill creativity?”라는 TED 강의를 좋아합니다. 우리는 성적이 좋아지도록 하는 사교육이나 공교육에 대해 얘기하는데 이 사람은 아이들의 ‘창의력’에 대해 말합니다. 아마 들어보시면 구구절절 맞는 말인데 우리나라 실정에는 전혀 맞지 않는 이상적인 얘기들도 있고, 당장 적용하고 싶은 것들도 많습니다. 벌써 16년 전 영상이고 조회수가 2,200만회가 넘었습니다. 하지만 교육의 본질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소중한 강의이니 꼭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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