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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엔지니어] 아이 교육에 관한 나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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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라는 것이 진정 아이들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인데 우리 사회는 아직도 성공의 정의가 부와 권력을 갖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사이에서 대부분 현실적인 면이 더 가치가 매겨지는 것이 교육 제도의 한계인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도 돈이 많았다면 여느 학부모들처럼 사교육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을 것입니다. 여러 방면에서 저도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교육에 관해서는 조금이라도 달라지려고 노력 중입니다. 물론 제가 실패하고 다른 사람들이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투입 대비 경제적 효용이 매우 떨어지는 사교육에 얼마 되지 않은 제 돈을 쓰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학생으로, 학부모로, 성실한 납세자로 대한민국에서 살아오면서 우리나라 교육 제도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점은 지금까지의 모든 논란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빠져있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을 위한다는 위선을 잠시 걷어내면, 아이들이 원하고, 아이들이 좋아하고, 아이들이 행복해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고민을 별로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만약 진심으로 고민한 결과가 사교육이라면 고민의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이를 낳기 전부터 가졌던 교육에 관한 신념은 “내가 책을 읽는데 옆에 와서 같이 책을 읽지 않으면, 내가 잘못한 것이고 그런 아이는 돈을 아무리 써도 공부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먼저 제가 모범을 보였는데 아이가 따르지 않으면 제가 뭔가 잘못해서 아이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제가 나이를 먹고도 공부하는데 옆에서 같이 공부하지 않으면 돈 들여 공부시켜 봐야 서로 힘들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보다 정확히, 가르친다는 표현보다 몸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자격증 공부를 해서 취득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매일 책을 읽고 영어를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즘은 수능 수학 시험 문제를 출력해서 끙끙대며 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는지 안 보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조용히 공부만 합니다.

 

저는 이런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잔소리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잔소리는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의 스트레스입니다. 책 좀 읽으라거나 공부하라고 소리치지 말고 부모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면학 분위기를 조성해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함께 참여하도록 기다려줘야 합니다. 둘째, 공부하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태어나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들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당연히 잘 모릅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단순히 공부해라라거나 공부 잘해라라는 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며칠 동안 끙끙대며 연습장에 새까맣게 풀어가며 수학 문제를 푸는 모습과 영어 단어를 여러 번 반복해서 쓰고 읽으며 외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냥 보여주기만 하면 됩니다. 아이에게 잘 보라고 말하는 것도 하면 안 됩니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공부는 저렇게 하는구나 하며 저절로 체득하게 됩니다. 셋째, 공부는 자신의 선택임을 알게 해줘야 합니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세요. 누가 옆에서 공부하라고 해서 공부할 때와 자신이 뭔가 간절하고 원할 때 공부하는 것을 비교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학교 다닐 때 그렇게 공부 안 하던 사람들이 사회에 나갔다가 다시 대학에 가거나 자격증 취득을 위해 공부하는 이유는 바로 공부는 자신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옆에서 공부하라고 해도 공부가 잘 안 되는 이유는 본인이 선택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선택하게 해줘야 하느냐고요? 그건 제가 말하고 있는 논리에 맞지 않습니다. 아이가 선택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공부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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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가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으면 공부가 얼마나 외롭고 고독한 일인지 알 수가 없고, 부모가 더 이상 독서나 공부하기 싫어서 아이를 직접 가르칠 수 없으니 돈을 퍼부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이가 공부하면서 얼마나 외롭고 힘든지 부모에게 말해봤자 혼나거나 이해를 못해주니 아이는 점점 고립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화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잘 생각해보세요. 아이가 힘들다고 하면 대화의 끝은 결국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 참고 힘내라는 것 아닌가요? 부모가 아이와 공감할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해 놓고 답은 이미 정해진 대화를 하면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감금이고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럼 그렇게 키운 제 딸 아이는 공부를 잘할까요? 사실 못하는 쪽에 훨씬 가깝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딸 아이의 모습은 건강하고 웃으며 가족과 함께 행복해 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다가 숙제나 공부한다면서 잠시 자리를 비우고 나머지 시간을 함께 할 뿐입니다. 결국 제 와이프도 공포 마케팅에 넘어가서 수학 학원을 알아보더니 딸 아이가 학원 하나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도 못마땅하지만 와이프의 의견도 존중하는 차원에서 딸 아이를 설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학원 가서 놀다 와도 되니까 스트레스만 받지 말고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숙제를 하고 있으면 제가 가서 언제 끝나냐고 묻고 얼른 같이 놀자고 조릅니다. 아이의 숙제나 독서가 끝날 때까지 물론 저도 공부를 하며 기다립니다.

 

딸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저는 이렇게 말해준 적이 있습니다. “아빠는 수학이 좋아. 좋아도 너무 좋아. 지금도 취미 삼아 수학 문제를 풀고 있잖아. 유클리드 기하학, 프린키피아, 미적분, 2차 편미분 방정식 등등 아빠는 너한테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아주 많아. 그런데 아빠는 말이야. 네가 먼저 물어보지 않으면 먼저 가르쳐주지 않을 거야. 공부란 원래 그런 거야. 네가 궁금해 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묻고 질문하는 것이 공부의 시작이자 끝이야. 그것만 기억하면 돼. 공부 같은 거 못해도 돼. 남들을 이기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면 돼.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보니까 공부가 필요하면 그때 하면 돼. 그때 하는 공부가 진짜 공부야. 그러니까 놀 수 있을 때 놀자.”

 

언젠가 말했지만, 저는 검단산에서 봤던 아이의 결단력, 추진력, 인내력을 믿기로 했습니다. 저는 그거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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