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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엔지니어] 전문가들에게 자문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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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읽은 책 중에 송길영 바이브컴퍼니 부사장님의 "그냥 하지 마라"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송길영 부사장님을 좋아해서 그분의 강연이나 책을 열심히 찾아 다니며 읽고 듣는 중입니다. 이 책도 정말 너무 좋은 책입니다. 꼭 읽어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책 재미있게 잘 보고 있다가 중간에 “액상화 (Liquefaction)”라는 토목 용어에 반가웠습니다. 저의 전문 분야의 용어들이 나오면 너무 반가운 느낌부터 듭니다. 하지만 반가운 마음도 잠시였고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책에서는 액상화를 지진 후에 지반이 약해져 건물이 흔들리는 상태라고 적어놨습니다. 아닙니다. 액상화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어딘가 참고하지 않고 그냥 제가 알고 있는 대로만 적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액상화는 강우에 의해 포화도가 상승하거나 지진 등으로 인해 지반의 전단강도가 순간적으로 제로가 되어 지반이 마치 액체처럼 거동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2011년 우면산 사태나 지진이 발생했을 때 산사태 보신 적이 있으실 텐데 지반이 액체처럼 흘러내리고 토사가 다량으로 유출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싱크홀도 사실은 매커니즘이 동일합니다. 원인은 거의 모두 지반으로 다량의 수분 침투와 지진에 의한 순간적인 체적 변화로 인한 것으로 이로 인해 지반의 전단강도가 갑작스럽게 제로가 되어 지반이 물처럼 흘러 내리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영어도 액체를 뜻하는 Liquid에서 가져와서 Liquefaction이 되었고, 우리말 용어도 액체로 상이 변했다는 의미로 액상화라고 합니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하시면 안 됩니다. 지진으로 지반이 약해져 건물이 흔들리는 현상은 없습니다. 지반이 약해지면 부등침하 등의 침하가 발생하게 됩니다. 지진으로 건물이 흔들리는 것은 지진이 파동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지반이 아무리 강해도 건물은 흔들릴 수 있고, 오히려 흔들려야 유연하게 지진의 파동을 견딜 수 있습니다. 공 위에 서있는 사람이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상상해 보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공이나 자전거 위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유연하게 움직이며 무게 중심을 잡아야만 넘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무게 중심을 잡기 위한 움직임보다 큰 한계를 넘는 순간 건물은 무너지고, 공이나 자전거 위의 사람은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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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 엔지니어에게 용어에 대한 감수 받으셨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사실 감수라고 할 것도 없고 구글에 검색만 한 번 해봐도 알 수 있는 용어입니다. 전문용어를 다른 곳에서 인용하거나 비유적으로 일컬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보면 이번 일과 같이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유명한 분들일수록 잘못된 용어의 사용이 널리 퍼지기 쉬워 잘못된 정보가 그대로 굳어질 경우의 혼란이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액상화는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용어이므로 용어의 혼란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특히 다른 분야에서 건축과 토목 용어를 인용할 때 잘못된 정보들이 눈에 많이 띄는 것 같습니다. 엔지니어들의 책임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바로잡기 위해 모두 다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 눈감고 지나친다고 큰 일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들이 누적되면 나중에는 눈덩이처럼 커져 바로잡기 위해 많은 에너지와 비용을 들여야 합니다.

 

이 책을 읽으시거나, 이 블로그를 접하시는 모든 분들이 오해 없으시길 바라며 액상화로부터 보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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