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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D&Graphics 2008년 3월호 인터뷰 기사

IT & Programming/AutoCAD & Civil3D 공부

by 그림아이 2022. 1. 19.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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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4년이나 되었네요. 고캐드에서 활동하다가 오토캐드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감사하게도 캐드앤그래픽스에서 연재 제의가 왔고 2007년부터 매월 오토캐드 강좌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캐드앤그래픽스에서 저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제의해와서 회사 근처 커피숍에서 기자님들을 만나 인터뷰했었습니다. 지금 보니 참 젊었었고, 아직 신혼 때라 표정도 밝고 좋네요. 옆에 와이프도 같이 있는 상태에서 인터뷰한 것이라 긴장은 별로 안 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연재를 정확히 10년 채우고 120강좌를 끝으로 마무리 했습니다. 책 2권으로 출판도 했었고 덕분에 참 좋은 경험을 했고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개인 블로그에서 여기로 가져왔습니다.

 

인터뷰-1
인터뷰-2

인터뷰 텍스트 전문

 

토목, 캐드...도전이 있어 즐거운 인생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러나 그 시간을 채워나가는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진우컨설턴트 토목설계 담당 맹영완 과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200% 활용하는 사람이다. 새벽 5시면 하루를 시작하는 맹 과장은 매일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느라 여념이 없다.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며 살기보단 새로운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도약하는 맹영완 과장. 그런 그의 모습이 아름답다.

 

맹영완 과장과의 인터뷰는 이색적이었다. 딱딱한 사무실이 아닌 커피숍에서, 혼자가 아닌 아내와 함께였다는 점도 그랬고 토목설계 담당자의 손에 들린 책이 '박노자의 만감일기'였다는 점도 그랬다. 만남에 앞서 방문했던 그의 블로그(그림아이: http://blog.naver. com/tajideux)에서도 느꼈듯,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냉철하지만 따뜻한 눈과 가슴 깊은 곳에 식지 않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마 토목설계 담당 과장이라는 것을 몰랐다면, 사회학자라 추측했을지도 모르겠다. 토목을 전공하던 대학시절 사회학 강의를 듣느라 다른 학점이 모자랄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사회학 사랑이 얼마나 큰지 짐작이 된다.

 

오토캐드, 인생의 터닝포인트
그런 그가 어떻게 토목공학을 전공하게 되었을까.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다. 학창시절 그의 꿈은 수학교사였지만 부모님의 반강제적 권유로 토목공학을 지원하게 됐다는 것. 자신의 꿈과 다른 방향으로 진로가 정해지자 괜한 반항심에 대학 1∼2학년 때는 전공공부를 등한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캐드와의 운명적 만남이 그의 삶을 180도 바꿔 놓았다.
"컴퓨터 동아리에 들게 됐어요. 사실 컴퓨터를 배운다는 목적보단 신선한 만남을 기대했죠. 토목과 200명 학우 중 여학우는 단 2명 뿐이었으니까요.(^^) 건조하고 거친 일상에 활력소가 필요했던 거죠. 하지만 모이면 하는 일이 술 마시는 것 뿐이었어요. 지치더군요. 하루는 선배에게 진지하게 이야기했어요. 뭐 하나만 가르쳐 달라고. 배우고 싶다고. 그 때 그 선배가 오토캐드를 알려준 거에요."
1990년대 초반, 캐드라는 전공이 따로 있던 것도 아니고 그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사람도 없던 시절, 그는 그렇게 오토캐드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제도 수업시간에도 캐드라는 걸 사용하지 않는데 과연 필요할까. 그런 걸 사용하는 세상이 오긴 오는 걸까. 친구들은 끝끝내 믿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믿었다. 그렇게 오토캐드라는 산을 등정하기 시작했다. 업체에서 버린 CD를 구해 영문 매뉴얼을 이것저것 눌러보며 공부했다. 동아리방이 집이나 다름없었다. 군대를 다녀온 후에도 그의 행보는 계속됐다. 250만원이란 거금을 들여 컴퓨터를 구입했고 관련 책들도 샀다. 더 이상 외울게 없다 느낄 만큼 열심히, 꾸준히 공부했다. 레포트 제출 때도 오토캐드로 그래프를 그렸고, 도로선형수업의 과제는 3D입체로 화려하게 그려냈다. 물론 점수는 0점이었다. 그런 노력이 인정받지 못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연습했고 실력을 쌓아갔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취업준비생이 되었고 그는 이력서에 자신있게 적었다. 오토캐드를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한다고. 그 것은 자만이 아닌 자신감이었고, 열정이었다.

 

거침없이 세상으로 나가다
첫 직장은 안전진단회사였다. 딱 6개월 일하고 그만두었다는 그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번 시작하면 쉽게 포기하거나, 중도에 그만두지 않을 것 같은 그가 단 반년만에 회사를 그만두다니.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몰랐지만 당연히 오토캐드를 사용할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실상은 달랐죠. 매일같이 교량이 튼튼한지 구조점검을 하러 다니는 거에요. 오토캐드 근처에 갈 수도, 갈 일도 없었죠. 집에 못 들어가는 날도 허다했어요. 전국의 교량이란 교량은 다 제가 점검하러 다녔을 거에요.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라는 그의 설명에 그제야 이해가 갔다.
그는 그 길로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 들었다. 그리고 현재 다니고 있는 진우컨설턴트에 면접을 보게 됐다. 오토캐드를 그렇게 잘하냐는 질문에 자신있게 그렇다고 답했다. 그런데 갑자기 영문으로 된 글을 읽으라고 주더란다.
"더듬더듬 읽었는데 정말 진땀나더라고요. 공대생 영어실력이 뭐 그리 좋겠어요. 그렇게 면접을 끝내고 집에 오는 데 그간 뭐 했나 싶었죠. 안 되겠구나 싶었어요. 오기가 생기더군요. 캐드도 영어도 한번 제대로 해보이겠다 결심했죠."라며 맹 과장은 그 때의 심정을 토로했다.


새벽은 새벽에 눈 뜬 자만이 볼 수 있다
그의 열정과 잠재성을 회사도 알아본 것일까. 몇 주 후 함께 일하자는 전화가 왔다. 그의 일터는 주한미군부대 안에 있다. 업무에서 뿐 아니라 늘상 마주하는 사람들이 외국인이다. 그러다 보니 영어실력은 필수였다. 그는 꼼꼼하고 욕심많고 철저한 사람이다. 완벽주의자라 느껴질 만큼 말이다. 영어공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영어공부의 절심함을 느낀 후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것도 새벽반을 2년 동안 말이다. 부지런함과 끈기가 없다면 쉽지 않은 일이다. 이직률 높기로 유명한 분야임에도 8년 동안 꿈적하지 않은 것도 그의 그런 성격 때문이지 않을까.
맹과장은 "성격탓도 있겠지만 회사 분위기와 구조가 큰 이유가 됐죠. 이 곳에서 근무하다보니 미국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많이 닮아가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삶을 즐기죠. 한국회사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죠."라며 "우리나라는 기술자와 캐드 업무가 나뉘어 있어요. 도면 만들다가 기술적인 문제가 생기면 도면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아요. 미국 캐드 사용자들은 야근도 없고 돈도 많이 받고, 편하게 일해요. 설계를 자주 바꾸는 일이 없으니까요. 사장단이 모여 기술회의를 며칠씩 해요. 그리고 도면을 만들죠. 도면을 만들다 무언가 바꾸라고 지시를 하게 되면 그들이 돈을 지불하는 시스템이에요. 굉장히 합리적이죠."라고 말한다.

 

살아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맹 과장은 하루도 소홀히 보내지 않는다. 쉼 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며, 진정한 'enjoy life'를 만들어간다. 그런 맹 과장의 가장 큰 원동력은 두말 할 것 없이 아내이다. 같은 회사에서 상사와 부하로 일하고 있는 그들은 하루 24시간 붙어 지낸다.
"영어학원이 끝나고 출근시간까지 1시간 여유가 남으면 둘만의 커피타임을 갖곤 했어요. 지금은 학원 대신 헬스를 다니고 있고, 다음 달부터는 함께 첼로를 배울 계획이에요. 제가 첼로 소리를 좋아하거든요. 사실 혼자였다면 이렇게까지 못했을 텐데…. 다 아내 덕분이죠. 저에겐 복덩이죠.(^^)"라고 말하는 맹과장의 얼굴엔 행복이 가득했다. 가히 국가대표급 애처가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평일에도 새벽부터 바지런히 움직이는 그들에겐 주말도 예외가 아니다. 오랜만의 늦잠을 즐기며, 중천에 뜬 해를 보며 게으름 피울만도 한데 토요일에도 새벽 5시면 하루를 시작한다. 그렇게 일찍 일어나서 하루종일 무얼 할까.
"일어나서 밥먹고 청소하고, 조조할인 영화까지 보면 아침 10시에요. 집에 와서 같이 컴퓨터 앞에서 공부도 하고 게임도 하고, 산책도 나가죠. 또 제가 '무한도전'을 굉장히 좋아해요. 다운받아서 같이 보며 한껏 웃죠."라고 그의 아내가 즐겁게 말했다. 이들에겐 ‘지겹다’‘심심하다’‘귀찮다’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생각한 대로 사는 사람, 삶을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풀뿌리 캐드, 넓은 세상을 꿈꾸다
삶에서도 일에서도 철저한 그는 현재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까.
맹 과장은 "미국에는 설계회사에 캐드매니저라는 직책이 있어요. 그들은 기술회의에 참석하고, 스케줄을 조율하고, 일을 분배하는 전반적인 관리자에요. 대부분 40∼50대인데 블로그 활동을 굉장히 열심히 해요. 오토캐드에 대해 무슨 할말이 그리도 많은지 매일 매일 다양한 정보와 소식에 관한 글을 올려요."라며 "그게 바로 제가 원하는 모습입니다. 제가 어느 위치에 있던 그들처럼 오토캐드에 관해 고민하고 때론 격론을 벌이며 성장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저 역시 끊임없이 공부해야죠."라고 말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맹 과장은 더 많은 세상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 그의 삶에 쉼표는 있을 지라도 마침표는 없다. 남들이 보면 피곤하게 산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살 것이다. 돈이 많아서도 남들보다 시간이 많아서도 아니다. 삶의 여유와 행복을 온몸으로 느끼고 사랑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아내는 말한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그래서일까. 경계마다 피어난 색색의 꽃들은 그의 삶에 깊이를 더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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