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는 MBTI 열풍입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행에 민감해서 항상 뭔가가 '열풍'입니다. 또 그런 뭔가를 항상 찾고 있고, 거의 반드시 찾아내며 놀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MBTI는 흔히 성격유형검사라고 하는데 정확하게는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 (Myers-Briggs Type Indicator)라고 합니다. 요즘에는 세부 유형까지 추가되었지만 어쨌든 16개의 성격 유형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보통 알파벳 4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첫 번째 알파벳은 외향 (Extroversion) 또는 내향 (Introversion), 두 번째 알파벳은 감각 (Sensing) 또는 직관 (iNtuition), 세 번째 알파벳은 사고 (Thinking) 또는 감정 (Feeling), 네 번째 알파벳은 판단 (Judging) 또는 인식 (Perceiving)을 의미합니다. 두 가지씩 4개로 구성되니 경우의 수가 2의 4승으로 16가지의 결과로 나타낼 수 있는 원리입니다.
오랫동안 한국인들은 12간지의 '띠'로 분류해왔고 열풍이었습니다. 말띠의 성격은 어떻다더라, 돼지띠와 뱀띠가 만나면 궁합이 어떻다더라는 식으로 생각해왔습니다. 자신의 출생 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이용한 사주팔자는 보다 경우의 수가 많고 복잡합니다. 어쨌든 결국 띠와 사주는 모두 자신의 결정이나 선택의 여지가 개입되지 않고 태어나자마자 이미 인생이 결정되어 있다는 논리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며 비합리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지만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엄연한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혈액형으로 성격과 성향을 분류하는 것에 열광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4개 밖에 안 되는 유형으로 전 세계인을 분류하는 것이 말도 안 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맹신하기도 했었습니다. 제 친구 녀석 하나도 재미로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에게 맞다고 알려진 혈액형의 여자친구만 찾아다니기도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A형이 소심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렇다면 A형이 가장 많은 우리나라는 소심한 민족이어야 합니다. 혈액형도 역시 띠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선택과 결정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MBTI는 오롯이 자신이 질문에 답을 한 것이므로 뭔가 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요즘 MZ세대들에게는 보다 합리적인 문화로 받아들여지기 좋은 놀거리인 것으로 봐야 합니다. 결국 본질은 우리 모두는 어느 시대나 사람들을 분류하기를 좋아했다는 점입니다. 워낙 복잡하고 변수가 많은 사람들의 성격과 성향을 표현하거나 분류하기가 어려우니 만나기도 전에 이미 알고 싶은 욕망이 앞서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띠, 혈액형, MBTI 모두 자신에게 해당하는 결과를 읽었을 때 맞다고 느끼는 착각을 심리학 용어로 바넘효과 (Barnum effect)라고 합니다. 일반적이고 모호해서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성격 묘사를 특정한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성향을 의미합니다. 저는 20여년 전부터 책에서 알게 되어 띠나 혈액형으로 유형을 분류하기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바넘효과에 대해 얘기해 준 적이 많습니다. 그러면 다들 재미로 보는 것인데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습니다. 아마 MBTI도 마찬가지로 바넘효과에 대해 얘기하면 똑같은 반응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순서대로 호랑이띠, AB형, INTJ입니다. 아마 이 결과만 보시면 역시 그럴 줄 알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계실 것입니다. 그런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전 세계 인구가 이제 80억명인 세상입니다. 16개로 사람들을 모두 분류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분류해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인간의 성격과 성향은 16가지가 아닌 80억 가지로 분류되는 것이 가장 합리적입니다. 그러니 만나보고, 얘기해보고, 힘들 때 그 사람이 어떻게 판단하고 헤쳐나가는지를 곁에서 지켜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사람이 가진 고유의 성격과 성향입니다. 재미로 보신다고 하시지만 진정 재미로만 보시고 계신지 가슴에 손을 얹고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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