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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엔지니어] 꼰대들의 말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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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지만 우리 주변에도 '꼰대'라 불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감이 별로라서 끼고 싶지 않지만 아마 저도 '꼰대'에 속할 것입니다. 머리숱이 점점 옅어져 가고, 노안도 왔고, 무슨 말만 하면 옛날 얘기부터 하니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새롭게 접하는 경험보다 오래 전 경험했던 것들에 대한 기억이 더욱 많고 강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 세대로부터 옛날 얘기들을 전해 들을 때는 그게 모두 지혜이고 정보의 전달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오히려 어쩔 때는 책에서 배우는 것보다 어른들과 대화하면서 듣는 얘기가 더 정확하고 실감나는 경우들도 많았습니다. 복잡했던 한국의 근현대사를 모두 겪은 분들이기 때문에 일제시대, 한국전쟁, 3.15, 4.19, 5.16, 10.26에 관해서는 책에서도 제대로 다루지 않고 짧게 스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서 어른들에게 직접 듣는 것이 더 정보의 양이 풍부해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사실 위주의 팩트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주관적인 견해가 포함된 내용들까지 포탈사이트와 유튜브에 넘쳐납니다. 물론 그들도 21세기형 '꼰대'일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원치 않아도 억지로 듣게 되는 것이 아닌 듣거나 보고 싶어서 찾아 내서 듣는다는 차이가 있으니 정확한 의미의 '꼰대'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90년대 말 인터넷이 급속하게 보급되는 순간부터 저희 세대는 부모님 세대와 정보의 전달을 위한 대화가 단절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점점 가속화되는 느낌입니다. 저희 세대와 MZ 세대 사이의 간극은 더 크게 벌어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모르면 곧바로 스마트폰으로 찾아보면  되니 대화의 필요성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딸 아이가 저에게 뭔가 물어볼 때 저도 모르는 경우에는 스마트폰으로 찾아서 대답을 해주게 됩니다. 그러면 그 후에는 딸 아이도 물어봐야 어차피 아빠도 스마트폰으로 찾을 테니 내가 찾아보자고 생각하게 되는 식입니다. 누군가는 아이가 뭔가 물어보면 스마트폰으로 찾으면 되는데 왜 묻냐고 타박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대화는 점점 단절되고, 세대간의 간극도 점점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코로나 사태로 오랜 기간 동안 가족 단위로만 격리되어 생활하다 보니 MZ 세대들의 개인주의 성향이 더욱 심화되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모두 연결되어 있어도 직접 만나서 교류하는 일들이 예전만큼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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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가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되던 때가 2020년이었으니 20학번부터 제대로 학교 수업을 받지 못했고 학교 자체를 몇 번 가보지 못했습니다. 친구들도 온라인으로만 알고 다같이 모인 적이 몇 번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 20학번이 군대를 가지 않았다면 올해로 4학년이 됩니다. 아마 대학 문화가 급속하게 변화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20학번 이후로는 예전 대학 문화를 말로만 들었지 직접 해본 적이 별로 없을 테니 말입니다. 실제로 말로는 전해 들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는 동기들끼리 똘똘 뭉쳐 다녔고 50명 전원이 학교 앞 식당에서 개강파티나 종강파티를 했었습니다. 때만 되면 MT를 가고 단체 미팅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학교 잔디밭에 삼삼오오 앉아서 대낮부터 막걸리를 마시며 기타 반주에 노래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모두 캠퍼스의 낭만이라고 불렀고, 그게 모두 사람 사는 모습이라고 믿었는데 이제는 보기 힘든 풍경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저희 세대가 가장 독특한 것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유일한 세대라는 점입니다. MZ 세대, 특히 저희 딸 아이 정도 나이인 2010년 전후로 태어난 아이들은 완벽하게 스마트폰 세대입니다. 태어나서 처음 만져본 부모님의 핸드폰이 스마트폰이었을 세대입니다. 제 딸 아이가 병원에서 태어나자마자 첫 사진을 제가 저의 첫 아이폰인 3G 모델로 찍어줬고 이후로도 항상 제 아이폰을 갖고 놀았습니다. 저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꼰대'가 되어 말이 많은 이유는 아무래도 이렇게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다 경험해봤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나마 저희는 디지털 시대에 적응도 잘했고, 심지어 디지털 시대를 개척해 나간 공 (功)도 있는 세대이기도 합니다. 아마 그 원동력은 그 전에 아날로그 시대를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에 대한 관찰, 인간의 욕망, 인간의 행동 양식, 인간의 감정 등에 대해서 책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직접 체득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 관한 모든 것은 아날로그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아날로그 방식의 체험이 매우 소중합니다. 얼마 후 아이들은 자라서 짧지만 어렸을 때 경험했던 아날로그를 토대로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야 합니다. 이들이 열게 될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도 되지만 약간 두렵기도 합니다. 아날로그 경험의 부족함이 어떤 식으로 발현될지 저로서는 감히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어쨌든 이제부터 저는 아주 오랫동안 아날로그 시대 얘기를 하게 될 텐데 이런 얘기를 누가 들어줄 지 벌써 걱정입니다. 와이프는 벌써 지겹다고 야단이고, 딸 아이도 술 취했냐고 타박하니 제 말빨을 견뎌줄 다른 누군가를 찾아야겠습니다. 제발 그 대상이 인공지능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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