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있는 2023년 1월 9일 월요일, 오늘 새벽 1시 반쯤 핸드폰에서 우렁찬 소리와 함께 긴급재난문자가 수신되었습니다. 메시지의 내용은 “[기상청] 01월 09일 01:28 인천 강화군 서쪽 26Km 해역 규모 4.0 지진발생 / 낙하물로부터 몸 보호, 진동 멈춘 후 야외 대피하며 여진 주의”였습니다. 한참 자고 있던 중에 깜짝 놀라서 일어나 확인하고는 이내 다시 잠들었습니다. 식구들 핸드폰이 동시에 울려 대니 정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본에서 지진을 경험해봤던 터라 규모 4.0이고 인천 쪽이라고 하니 안심하고 잠들었습니다. 안전불감증이 다시 저를 지배한 것 같습니다. 정확히 언제 쯤부터 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 이런 긴급재난문자가 도입된 지는 약 4~5년 정도 된 것 같고, 그 동안 대부분의 긴급재난문자는 코로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해외 생활을 하다가 한국에 와서 제 핸드폰에서 그런 소리가 나는 것은 코로나 사태가 처음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긴급 재난 발생 시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을 벌고, 대비할 여지를 줌으로써 국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사회 안전망 시스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긴급재난문자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는 의무를 가진 국가가 국민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서비스 중 하나이고, 이런 사회적 시스템이 가능하기 위한 기술적인 뒷받침도 충분히 갖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긴급재난문자에 대해 좋은 제도라서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하면 모르겠는데 마치 세상에 없던 서비스를 우리나라가 처음 만들어서 제공하는 것처럼 홍보하거나 그렇게 알고 계신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서 말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일본에 처음 갔을 때인 2014년에 일본 오카야마 공항에 내리자마자 일본 유학생 출신이었던 함께 동행한 직원이 제 핸드폰에 유레쿠루 (ゆれくる)라는 앱을 설치해줬습니다. 우리 말로는 흔들린다는 말이라고 하는데, 뭐하는 앱이냐고 물으니 지진 경보를 울리고, 일본 전역의 지진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앱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 생활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앱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저는 당시에 지진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여느 한국인들과 같이 안전 불감증이 충만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뭐 그렇게 까지 해야 되나 싶어서 설치만 해놓고 잊고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밤낮으로 핸드폰에서 알림 소리가 나고 메시지가 뜨길래 결국 설정을 바꿔야만 했습니다. 제가 위치한 곳 인근에서 규모 4.0 이상만 울리도록 설정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들어가서 확인하지 않는 한 메시지를 먼저 보내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유레쿠루는 완전히 잊고 살게 되었고 뉴스에서 큰 지진 소식이 있으면 들어가서 확인하는 정도만 했습니다. 다행히 제가 있는 곳은 규모 4.0 이상 지진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책임지고 있던 히로시마 현장을 준공하고 일본의 가고시마 지역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2016년 4월초에 반가운 손님 한 분이 제가 있던 가고시마 근처인 구마모토로 출장을 온다고 해서 만나러 간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직전 히로시마 현장에서 함께 일했던 시공사 직원이어서 현장에서 워낙 친하게 지냈던 추억이 많아 한걸음에 달려갔습니다. 제가 있던 곳에서 북쪽으로 약 150Km 정도 떨어진 곳이 바로 구마모토여서 차를 몰고 가서 저녁에 오랜만에 거나하게 술 한 잔 하며 회포를 풀고 다음날 구마모토 성(城)으로 관광까지 함께 한 후 신칸센 역에 내려주고는 150Km를 다시 달려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일주일 정도 후인 2016년 4월 16일 퇴근하고 저녁을 먹고는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저녁 9시 반쯤 갑자기 핸드폰에서 처음 들어보는 사이렌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제 핸드폰에서 이런 소리가 나는지 처음 알았을 정도로 크고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였습니다. 그리고 핸드폰을 보니 일본어로 메시지가 하나 떠 있는데 내용이 충격적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어를 공부 중이어서 읽고 쓰는 것을 조금 할 줄 알던 터라 바로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정확한 문장 전체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략 내용은 이랬습니다. “1분 후에 진도 5의 지진이 옵니다. 대비하세요.” 저는 이게 뭔 소리인가 어리둥절했습니다. 지진이 난 것도 아니고 날 것이니 미리 대비하라는 것인데 어쩌라는 것인지 황당했고, 진도 5인지는 어떻게 알고 미리 알려주는지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1분쯤 후에 정말 거짓말처럼 집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2층짜리 임대용 조립식 주택의 2층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씩 좌우로 흔들리더니 점점 강도가 세지고 책상 위에 세워둔 500ml짜리 생수병이 넘어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4~5분쯤 흔들리고는 멈춰서 밖에 나가보니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있었습니다. 함께 근무하던 직원의 얘기를 들어보니 1분 후에 지진이 온다고 하면 일본인들은 그때 건물 밖으로 나오거나 책상 밑으로 대피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평소에 훈련이 잘 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뉴스를 보니 속보로 구마모토 지역에 규모 6.5, 진도 7의 지진이 발생해서 엄청난 피해가 예상된다고 했습니다.
본사에 보고하고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얘기해주고 떨리는 마음을 겨우 진정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지진은 이제 시작이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여진을 경험했습니다. 밤새 진도 2~4의 여진이 계속되었고 일주일 동안 여진의 횟수가 500회를 넘을 정도로 위력이 대단했습니다. 3일째 되었을 때는 멀미도 나고, 어지럽기 시작했으며,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는 정말 속이 울렁거려서 아무것도 못 먹을 정도까지 가서야 여진이 사그라들었습니다. 공식 자료를 찾아보면 당시 사망자가 273명이고 부상자가 2,809명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당시 일본에서 봤던 뉴스들에서 얼마 전에 가서 즐겁게 웃으며 사진 찍었던 구마모토 성이 일부 붕괴되고, 구마모토로 진입하는 도로들과 신칸센 철도까지 산사태로 운행이 중단되는 등 구마모토는 완전히 고립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정말 아찔한 경험이었습니다. 일주일만 늦게 갔어도 지진의 피해자가 될 수 있었고 제 운명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직도 등골이 오싹합니다. 그리고 기억나는 것은 지진이 나고 다음날 아침에 정신 차리고 비상 식량이라도 사야겠다 싶어서 출근길에 편의점에 들렀더니 모든 제품이 품절되어 편의점이 거의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지진이 나자마자 편의점에 달려가서 빵과 생수 등 비상 식량들을 사재기한다고 하는데 저는 안일하게 생각했었던 모양입니다. 구마모토가 고립되니 가고시마로 들어오는 물류 이동까지 마비된 상태여서 비상 식량만이 문제가 아니라 식료품과 생필품 모두를 걱정해야 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일이고 뭐고 식료품과 생필품을 구하러 필사적으로 돌아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저는 일본에서 지진 경보 시스템, 긴급재난문자, 일본인들의 재난 대응 등을 모두 경험하고 크게 깨닫고 돌아온 후에 만나는 사람들마다 긴급재난문자 얘기를 해줬고 모두 신기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반드시 도입했으면 한다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리고는 몇 년 후 우리나라도 긴급재난문자가 수신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것이지만 사회 안전 시스템에서 꼭 필요한 제도이니 좋은 것 같습니다. 여기에 좀 더 세분화해서 지역별, 동네별로 세분화해서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가령 ‘인천 강화도에서 규모 4.0의 지진이 발생했으니, 서울 강동구에서는 규모 2.0 지진이 예상된다.’와 같이 말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저처럼 ‘인천에서 4.0이니 멀리 있는 나랑 상관 없겠네’라며 무시하거나, ‘우리 동네는 지진 없이 지나갔나 봐. 근데 왜 보낸 거야?’라며 거짓말 하는 양치기 소년처럼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기왕 시작한 일이고 벤치마킹한 것이라면 제대로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안전불감증에 빠진 전 국민을 새벽 1시 반에 깨울 거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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