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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엔지니어] 리비아에서 낯선 삶에 적응하기 9부 리비아 탈출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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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내전 당시 신문기사에서 발췌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현장 캠프를 벗어난 적은 딱 두 번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다른 현장 캠프를 방문하기 위해 차를 타고 2시간 가량 이동하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탈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딱 한 번 빼고는 현장 캠프를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저와 함께 근무하던 회사 직원들도 은행이나 비자 업무 등 중요한 업무뿐만 아니라 식료품과 생필품을 사다 나르는 일까지도 직접 수행하지 못하고 현지 직원들에게 의존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나이가 적지 않았지만 회사 직원들 5명 중 가장 나이가 어린 관계로 여러 잡일을 도맡아 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한국 영사관과의 연락 유지였습니다. 정기적으로는 아니고 현지 언론에 심각한 테러가 발생하면 영사관의 반응과 현재 상황 파악 등을 묻기 위해 가끔씩 전화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영사관은 생각보다 심각하지는 않고 사태가 진정되면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답했습니다. 우리들은 한국 영사관을 믿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상황이 호전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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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2014년 5월초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벵가지 시내에서 시위대를 향한 테러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리비아의 총리가 암살 당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게다가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교전이 있다는 얘기까지 들려왔습니다. 그때부터 벵가지에 있던 한국 영사관은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다들 정신이 없나보다 하고 트리폴리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 전화를 했지만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받아야 물어보든 말든 할 텐데 전화를 받지 않으니 너무나 답답했습니다. 당시 현장 캠프에는 중국 시공사 직원이 약 천여명이 있었고, 리비아 현지 직원 3명, 한미글로벌 직원 5명이 있었습니다. 본사에서는 상황 판단을 전적으로 현장에 맡겼고, 우리는 발주처를 대신해서 시공사를 관리 감독하는 업무를 맡고 있던 건설사업관리단이었으므로 현재 상황을 발주처였던 미국 AECOM에 보고하고 있었습니다. 현장 캠프는 그때까지 조용했습니다. 현지 언론에서 접하는 모든 사건, 사고 소식은 모두 트리폴리나 벵가지 시내에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막에 있던 우리 현장은 아직 아무런 영향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가장 황당한 것은 한국 대사관과 영사관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끔씩 날아오던 공지사항 같은 문자메시지도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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