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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엔지니어] 짜증난다는 말은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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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난다는 말은 하지 마라

 

얼마 전에 종영된 방송 중 ‘알쓸인잡’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이라는 교양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봤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김상욱 교수와 김영하 작가가 나와 더 재미있게 봤던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말과 글을 접하면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어떻게 저렇게 방대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지도 놀랍지만, 그것을 일반 대중들에게 알기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출연하는 방송, 두 사람이 출판한 책은 거의 모두 챙겨보는 편입니다. 두 분의 말과 글에서 제가 느낀 것만 정리해도 한참동안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알쓸인잡’ 방송 중에서 김영하 작가가 했던 말을 주제로 글을 쓰려고 합니다. 김영하 작가가 학생들이나 후배 작가들에게 “짜증난다는 말은 하지 마라”고 조언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방송을 보며 이해한 작가님의 취지는 ‘짜증난다’는 표현 자체가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못하고 끝내버리는 의미를 갖고 있어서 말이나 글에 ‘짜증난다’는 표현을 사용하면 그 자체로 대화가 단절되어버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정확하고 예리한 통찰력입니다. 누군가가 ‘짜증난다’고 말하고 나면 주변 사람들이 순간 조용해지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짜증난다’는 말에는 ‘내가 지금 몹시 화가 났으니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는 경고성 메시지도 함께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김영하 작가가 이런 조언을 하는 대상은 모두 글을 쓰는 사람들이거나 글을 잘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말과 글에 ‘짜증난다’고 하지 말고 다양한 감정 표현을 하라는 뜻입니다. 무릇 작가란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글로 묘사할 줄 알아야 하는데 ‘짜증난다’는 말로 범위를 좁히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감정 표현이 풍부한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게다가 감정을 글로 묘사하는 데에는 자질이 매우 부족한 것 같습니다. 책을 좋아해서 남들이 쓴 감정 표현을 읽는 것은 괜찮은데 제가 직접 표현하려고 하면 잘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당황하다’와 ‘황당하다’의 차이를 설명해보라고 하면, 두 감정이 다르다는 것은 분명히 알겠고 어떠할 때 느끼는 감정인지도 잘 알겠는데 한두문장으로 간결하게 차이를 설명하기 힘든 편입니다. 한참 시간이 걸리고, 말을 더듬고, 온갖 제스처를 써가면서 애를 쓰겠지만 정리해서 말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이러한 단점이 영어를 공부할 때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다양한 감정 표현을 영어로 말하는 연습을 원어민 선생님과 할 때, 한국어로도 설명하기 힘든 감정 표현을 영어로 하려니 더 힘들었습니다. 다양하고 풍부한 표현을 놔두고 happy, sad, angry, funny만 쓰려고 하니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70년대부터, 유교문화에서, 남자로 살다 보니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 절제하고 인내하는 것이 미덕인 양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모르게 혼잣말이든, 사람들과 섞여 있든, ‘짜증난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언어도 일종의 배설이라는 점에 동의하고 싶지 않지만, 저도 모르게 내 몸 안의 나쁜 기운들을 배설하듯 뱉어버리는 말을 참 많이 쓰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는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신경 쓰며 해야겠다는 점과,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단순히 ‘짜증난다’고 하지 않고 상황에 맞는 감정 표현들을 사용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좀 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감정의 온도 차이와 정도의 차이에 관심을 가져볼 생각입니다. 작가가 되고 싶어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제 나이와 사회적 위치에 맞는 언어를 사용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저도 김상욱 교수나 김영하 작가처럼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고 싶어서 항상 노력은 하지만 안돼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기회가 우연히 왔는데 제가 준비가 안돼서 기회를 놓쳤다는 후회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것은 저의 삶의 철학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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