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는 존댓말이 없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셀 수도 없이 들어왔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들었고, 모두 똑같이 생각할 것입니다. 영어를 단 한마디도 못하는 노인 세대들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의 저면에는 아마도 ‘미국 사람들은 자신의 부모한테도 You (당신)라고 부를 정도로 근본 없는 상놈들이다’라는 인식이 깔려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른을 공경하고 존댓말을 사용하는 우리 민족의 우월성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심지어 저도 제 딸아이에게 제가 배운 대로 ‘영어에는 존댓말이 없다’고 얘기해줬습니다. 미국 엔지니어들과 일도 해봤고, 영어를 잘했던 저도 그럴 정도였으니 아마 거의 모든 한국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대한 미국인(?) 타일러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제는 종영된 ‘타일러의 진짜 미국식 영어’라는 라디오 방송의 한 코너에서 타일러가 영어의 존댓말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타일러는 방송에서 “한국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영어에는 반말이 없고 모두 존댓말 뿐입니다. 옛날에는 반말과 존댓말이 혼용되다가 이제는 존댓말만 남은 것입니다. 한국어로는 완성된 문장이 아닌 단어만 말해도 의미가 통하지만, 영어에서 단어만 말하면 명령어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불편하더라도 반드시 문장 전체를 만들어서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어에서의 명령어는 한국어보다 어감이 훨씬 더 강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영어를 40년 가까이 배우면서도, 그리고 미국인 엔지니어들과 원어민 선생님들과 대화하면서도 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타일러 얘기의 진위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는 제 자신이 왜 그런 생각을 못해봤는지 반성을 했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듣고 배운대로만 생각했을 뿐,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는 얘기입니다. 왜냐하면 영어에서는 반말과 존댓말이 구분되지 않으므로 당연히 반말이라고만 생각했을 뿐입니다. 반대로 모두 존댓말이라고 생각해도 되는데 왜 반말이라고 인식을 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Please, Could you, Would you 등의 정중한 표현이 존재하므로 이외에는 반말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나 추측됩니다. 하지만 명령어의 어감이 매우 센 편이므로 표현의 수위를 낮추기 위한 목적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200여년 전에 처음 서양인을 만났을 때, 서양인 특유의 제스처와 나이가 많고 적음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사회적 지위가 없는 것에 놀라 오해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부터라도 생각을 고쳐먹겠습니다. ‘영어에는 반말이 없다’라고 딸아이에게도 다시 말해줄 생각입니다. 그리고 제 생각이 틀렸었다고.
글로벌화는 다른 나라 문화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저도 나름 ‘다름’을 인정하고 그들의 문화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제가 알고 있던 지식들 중에 잘못된 편견이나 오해가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습니다. 우리 민족의 우수함에 대한 자부심이나 애국심은 어느 정도 필요하겠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크게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생각이 지나치면 국수주의나 극우 사상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그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혐오하고 증오하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21세기 인류는 눈부신 경제와 기술 발전을 하고 있는 와중에 거의 모든 국가들에서 극우 세력이 득세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20세기 초 세계 1차 및 2차 대전 당시 상황과 닮아가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되는 요즘입니다. 제발 평화로운 일상이 지속되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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