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이어 계속 하겠습니다. 제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2023년 3월 15일입니다. 지난 3월 8일에 개막한 202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WBC)에서 대한민국이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고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제 생각을 말해보겠습니다. 타자들의 타격 매커니즘과 주루 플레이, 수비 등의 문제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이 타자들의 문제에 대해 얘기하던데 그건 매우 지엽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우리가 언제 타격으로 이긴 적이 있는지 반문해보고 싶습니다. 이승엽 선수가 홈런으로 이겼다는 경기도 돌이켜보면 1:0, 2:1, 또는 3:2로 이기는 경기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화려한 타격전으로 상대를 이긴 적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팽팽한 투수전으로 가다가 홈런 한 방이나 적시타 한 방으로 이겼을 뿐입니다. 따라서 모든 문제의 근원은 투수들의 구속이 하향 평준화 되었다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류현진, 김광현, 양현종이 20대 초반 전성기 때 150Km/hr 정도의 직구와 칼 같은 제구력, 그리고 각자가 가진 체인지업이나 슬라이더 등의 구종 가치가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 (NPB)의 특급 선수들과 견주어 봐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그때가 이미 15년 정도 지난 시절 얘기입니다. 이후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 투수들의 구속은 눈부시게 향상되었고 160Km/hr는 던져야 강속구 투수로 인정받는 시대입니다. 듣자 하니 일본은 고교야구에 이미 160Km/hr를 던지는 투수들이 40명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한화이글스의 김서현 선수 정도가 160Km/hr를 던진다고 언론들이 대서특필하는 게 전부입니다. 평균 150Km/hr 이상 던지는 투수들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이번 WBC에서 양현종이 3점 홈런을 맞을 때 던졌던 직구의 구속이 143Km/hr였습니다. 일본의 오타니 선수의 변화구보다 느린 직구를 던져서 누구를 어떻게 상대하겠습니까. 일본과 맞대결할 때 일본의 중간 계투들은 왼손으로 155Km/hr를 던지는 것을 보고 놀라웠습니다. 우리나라의 왼손 투수들은 145Km/hr만 던져도 파이어 볼러 (Fire Baller)라고 부르는데 완전히 수준이 달랐습니다. 이것을 단순히 김광현과 양현종의 문제라고 보면 안 됩니다. 그리고 이 두 투수를 뽑을 수밖에 없는 감독이나 기술위원들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선택의 폭이 좁아 도저히 다른 투수들을 뽑을 수가 없는 지경인데 뭐 어쩌겠습니까. 저는 투수들의 구속 저하,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우리만 빼고 전세계 투수들의 구속 증가에도 우리만 정체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문제는 제구력 저하입니다. 이 문제는 몇 년 전부터 KBO리그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KBO 전체의 볼넷의 개수가 눈에 띄게 증가해왔고 모두가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숫자로 살펴보면, 2019년 KBO리그에서 나온 볼넷의 총 개수는 4,749개, 2020년엔 5,314, 2021년엔 5,892개로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22년이 되자 늘어난 경기 시간 때문에 관중이 줄고 있다는 엉터리 분석으로 스트라이크존을 확대해서 볼넷의 개수를 줄였습니다. 실제로 2022년에는 4,851개로 줄이는 효과를 거두었지만 그 결과로 관중이 늘었나요? 야구팬들이 정말 경기 시간이 늘어나서 경기장을 찾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인지 참 한심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구력이 좋지 않은 투수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여기에 스트라이크존을 확대하니 제구력은 점점 더 나빠질 뿐입니다. WBC에서 우리는 이미 확인했습니다. 호주전에서 볼넷 5개, 일본전에서 볼넷 9개를 내주었습니다. 투수들이 얼마나 제구가 엉망이었는지 볼넷 개수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스트라이크존 넓혀서 볼넷 줄여도 국제대회 성적이 이 모양이면 야구팬은 점점 더 줄어들 겁니다.
언제까지 선수들의 정신력 문제와 연습 부족을 탓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야구라는 스포츠가 가진 한계에서 오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런 ‘참사’는 한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야구는 장비도 필요하고, 선수들도 많이 필요하고, 넓은 공터도 필요한 진입장벽이 높은 스포츠입니다. 오래 전에 동네에서 야구하다가 옆집 유리창 깨먹어 가면서 즐기던 스포츠가 더 이상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축구는 반대로 평소에 K리그는 보지 않다가 국가대표 경기는 그나마 인기가 좋은 편입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성적을 내기 때문입니다. TV나 모바일로 영국 프리미어리그 EPL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야구도 아마 계속 이런 추세라면 평소에는 메이저리그를 보다가 국가대표 경기만 챙겨보는 세상이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국제대회의 성적이 좋을 때 얘기입니다. 야구라는 스포츠가 팬들로부터 완전히 외면당하지는 않을지 심히 걱정됩니다.
[글 쓰는 엔지니어]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다만, 모두에게 균등하게 온 것은 아니다 (1) | 2023.04.12 |
---|---|
[글 쓰는 엔지니어] 우리 시대의 변하지 않는 트렌드들 (혼밥, 장수, 무인) (0) | 2023.04.11 |
[글 쓰는 엔지니어] 202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WBC)을 보며 느낀 참담한 심정 1부 (0) | 2023.04.09 |
[글 쓰는 엔지니어] 프로젝트 관리 전문가 (PMP) 자격증을 취득한 이유 (0) | 2023.04.08 |
[글 쓰는 엔지니어] 영어의 반말과 존댓말 (6) | 2023.04.07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