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종용된 ‘알쓸인잡’을 제 유튜브 알고리즘이 자꾸만 저를 유혹하고 있어서 자주 보게 됩니다. 얼마 전에 봤던 방송에서는 유명한 일화가 하나 소개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크리스마스 날에 연합군과 독일은 전쟁을 멈추고 병사들이 캐롤을 함께 부르고 함께 축구를 하며 즐긴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포화가 빗발치는 전쟁 중에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사실이라고 합니다. 한쪽에서 캐롤을 선창하면 다른 한쪽에서 함께 부르고, 양측 대표가 나와 축구를 하고 나머지는 응원을 하며 술을 나눠 마셨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양측 사령부는 발칵 뒤집혔고, 당장 전투를 재개할 것을 명령했다고 합니다. 양측 사령부는 병사들이 적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길 바랐고, 평화를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인간의 심리상 전선으로부터 멀어지면 적개심은 커집니다. 당장 싸울 것처럼 으르렁대며 욕지거리를 하는 두 사람을 말리고 있다가 막상 붙여 보면 어색해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게다가 전쟁이라는 것은 결국 소수가 부추기고, 다수가 희생하는 게임입니다. 그래서 전쟁에는 항상 뛰어난 선동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부와 권력을 원하는 소수가 다수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소수에 의해 선동된 다수는 자신이 왜 싸워야 하는지 궁극적으로는 납득하지 못한 채로 목숨을 바쳐 싸우게 됩니다. 정치를 하는 위정자들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다수를 선동해서 적개심을 키워야만 자신의 권력이 유지된다고 믿는 속성 때문입니다. 미사일이든, 총이든, 칼이든 내가 저 사람을 죽여야만 하는 이유가 우리 가족, 국가, 민족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처음부터 싸우지 않으면 될 일입니다. 그래서 선동하는 소수는 전쟁이 없는 시기에도 계속해서 다수에 대한 선동을 멈추면 안 됩니다. ‘쟤는 원래 나쁜 놈들이다’, ‘먼저 때려야 우리가 산다’, ‘이대로 두면 우리 가족이 다친다’, ‘쟤들은 절대로 믿으면 안 된다’ 등으로 끊임없이 적개심을 키우고 유지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역사상 거의 모든 전쟁이 다 그랬습니다. 삼국시대에도 그냥 금 그어 놓고 각자 잘 살면 되는데 굳이 땅 좀 넓히려고 하거나, 옆 나라 식량을 빼앗아 보려고 왕과 정치인들이 선동한 것입니다. 백성들은 가족들 부양하면서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데 목숨 바쳐 싸우기까지 해야 하니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만든 영화가 바로 ‘웰컴투동막골’과 ‘황산벌’입니다. 두 영화 모두 자신들은 왜 싸우고 서로를 미워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싸웁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알고 보면 정치인들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각종 학연이나 지연으로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단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인 권력욕을 유지하기 위해 다수를 선동합니다. 선동하는데 가장 중요한 스킬은 대중으로 하여금 적개심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쟤들은 나쁜 놈들이니 나에게 표를 달라’는 식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매카시즘 (McCarthyism)’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빨갱이’로 몰아버리는 낡은 수법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통하는 것 같습니다. 1945년 해방된 나라에서 친일파들이 살기 위해 써먹던 방식을 아직도 써먹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전쟁이든 정치든 소수가 나서서 직접 싸우는 일은 없습니다. 그들은 싸우다 죽지도 않습니다. 권력이 영원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에게 선동된 다수가 대신 싸워주기만을 바랄뿐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생각이 다르다고 죽여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싸움은 피할 수 없다손 치더라도 제발 최소한 서로를 미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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