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MBC 청룡 어린이 회원이었던 죄(?)로 42년째 LG 트윈스의 팬으로 살고 있는 평범한 대한민국 아저씨입니다. LG 트윈스는 지금까지 2번 우승 했었습니다. 1990년과 1994년이었으니 마지막으로 우승한 지가 내년이면 30년이 됩니다. 약 10년간의 길고 길었던 암흑기까지 견뎌내면서 LG 트윈스는 분명 강팀으로 거듭난 것만은 확실합니다. 작년에 아쉽게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었지만, 강팀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작년까지 LG 트윈스는 몇 년간 투수 왕국을 구축하는데 혼신의 힘을 쏟았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차명석 단장과 류중일 감독, 류지현 감독, 최일언 투수코치, 경헌호 투수코치의 노력과 헌신이 결정적이었다는 것을 LG 트윈스의 팬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류현진, 김광현, 양현종 같은 리그 최강 선발이 없어도 막강 불펜진과 마무리를 보유한 팀을 만들었습니다. 선발이 5이닝을 책임지지 못해도 모든 불펜진들이 승리조로 봐도 될 정도로 막강했습니다. 타격이 뒷받침되지 못했을 때도 1:0, 2:1, 3:2 등으로 이긴 경기가 많았던 이유도 모두 막강 불펜 투수들과 셋업맨 정우영과 마무리 고우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작년 같은 경우에는 이호준과 모창민을 타격코치로 데려오면서 완벽한 투타의 조화가 이루어졌습니다. SSG 랜더스가 워낙 막강했었기 때문에 페넌트레이스에서 2위에 그쳤지만, 전력만 놓고 보면 역대 최강이라고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87승과 승률 0.613을 기록하고도 1위를 못한 최초의 팀이 되어버린 안타까운 시즌이었습니다. 거기에 완벽한 투타 조화에도 불구하고 세밀한 디테일이 부족했던 탓에 가을야구라는 포스트시즌 단기전에서 쓰라린 실패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LG 트윈스는 이제 누가 봐도 강팀이 된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투수 왕국은 단기간에 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쉽게 무너지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타격도 절정에 올라 작년 시즌 내내 팀 홈런 1위가 LG 트윈스라는 믿지 못할 얘기들을 들었던 행복한 시즌이었습니다. 그러니 더더욱 아쉬웠고 디테일한 면만 채우면 되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염경엽 감독이었습니다. LG 트윈스가 부족했던 디테일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화룡점정 (畵龍點睛)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타격코치 이호준과 모창민을 제외하고 모든 코치들이 개편되어 기대반 걱정반으로 지켜봤습니다. 이제 10게임 치른 지금 시점에서 저는 걱정이 먼저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엘지팬들이 시즌 초에 설레발을 잘 친다고 해서 ‘엘레발’이라는 말도 있던데 저는 정반대로 진심으로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투수왕국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팀 방어율이 급격히 높아졌고, 불펜들이 하나 둘씩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롯데와의 사직 경기에서도 12:8로 이기긴 했지만 투수들이 8점을 내준 것은 지난 몇 년간 LG 트윈스가 보여준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습니다. 개막 하자마자 KT위즈와의 2연전도 문제였습니다. 첫 경기는 11:6으로 지고, 두 번째 경기는 10:9로 이겼습니다. 두 경기에서 무려 20점 실점을 할 정도로 투수들이 무너졌습니다. 누구 하나의 문제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구속이 저하되고 변화구들이 밋밋하게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제구도 작년과는 달리 잘 되지 않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일시적인 문제라면 일부 투수들에게만 해당이 되어야 하는데 거의 모든 투수들이 다 그렇습니다.
둘째, 작전 야구의 어수선함입니다. 이 부분은 아직 팀 컬러로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차피 겪어야 할 부분이므로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작전이 쏟아지니 주루사도 많고 도루 실패도 많습니다. 상대 투수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같은 팀 선수들도 정신이 없어 보입니다. 어쨌든 시즌 초반이라서 잠시 어수선해 보이는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걱정은 됩니다. 선수들 모두 타격에 집중하지 못하고 작전에 신경을 더 쓰다 보니 팀 타율은 그렇다 쳐도 팀 홈런은 꼴찌를 기록하고 있어 작년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LG 트윈스에게 부족했던 세밀한 디테일 야구를 갖추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관문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셋째, 선수들의 부상이 심상치 않습니다. WBC에 6명이라는 가장 많은 선수를 출전시킨 LG 트윈스지만, 개막 전부터 고우석이 부상으로 결장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오지환, 백승현, 이민호도 현재 부상으로 결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불펜 투수들에게 부하가 걸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유격수의 공백은 김민성이 훌륭하게 메우고 있지만, 고우석, 백승현, 이민호의 부상은 불펜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게다가 작전 야구로 모든 야수들이 주루와 슬라이딩이 많아져 부상 위험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시즌 중반으로 갈수록 햄스트링 부상과 슬라이딩 도중 수비수와 부딪히며 부상을 입는 선수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것도 역시 디테일 야구를 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모쪼록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야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욕심입니다.
넷째, 정우영의 구속과 구위 저하가 심상치 않습니다. 최연소 100 홀드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울 정도로 KBO리그에서 독보적이었던 정우영의 구위가 이제는 만만하고 밋밋해 보입니다. 150Km/hr가 넘는 구속도 140 중반으로 떨어졌고 제구도 엉망입니다. 마무리인 고우석은 부상이라 못 나오니 그렇다 쳐도, 정우영은 아픈 것도 아니고 경기에 출전도 하고 있는 상태인데 떨어진 구속과 구위를 회복할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투수들이 전반적으로 모두 구속과 구위가 하락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정우영의 하락세가 가장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다섯째, 박해민과 염경엽 감독 사이가 걱정됩니다. 지난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주루를 하고 있던 박해민을 향해 염경엽 감독이 쌍욕을 하는 장면이 방송사 카메라에 잡힌 적이 있었습니다. 박해민은 유명한 슬로우 스타터라서 시즌 초반에는 타격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수비와 주루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 선수인데 염경엽 감독이 쌍욕을 할 정도로 뭔가 잘못한 일이 있나 싶었습니다. 무슨 일이었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분명 걱정이 되는 부분입니다. 다 큰 성인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경기 중에 욕지거리를 하는 염경엽 감독의 행동도 걱정거리 중 하나입니다. 경기라는 것을 치열하고 진심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하는 바이지만, 그렇게까지 욕을 해가면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고, 과연 얻을 수는 있는지 의문입니다.
어쨌든 이런 우려와 걱정들에도 불구하고 성적은 잘 나오고 있는 편이긴 합니다. 시즌 초반이라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아직까지 결과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과정이 좋지 않아 드는 조바심 섞인 배부른 소리로 치부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인정합니다. 이런 걱정들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적과 디테일 야구까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그리고 제발 선수들이 큰 부상없이 무사히 시즌을 마치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그랬지만 올해도 우승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작년이 우승하기에 최적기였던 것 같은데 올해는 SSG 랜더스, KT 위즈, NC 다이노스와 함께 4강 구도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3팀은 모두 선발 자원들이 막강한 팀들이어서 한마디로 계산이 서는 야구, 그리고 선이 굵은 야구를 하는 팀들입니다. 이에 반해 LG 트윈스는 켈리와 플럿코 외에 이닝 이터가 없는 선발 투수 문제가 시즌 끝까지 발목을 잡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고우석이 복귀했을 때 작년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면 어느정도 안심은 되지만 결국 선발 투수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가 되어버렸습니다.
모쪼록 시즌이 끝나고 이 글을 다시 읽었을 때 이런 걱정들이 쓸데없고 불필요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23년 LG 트윈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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