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에 썼던 글인데 지금도 생각이 다르지 않아 이곳에 옮겨봅니다.
세상은 수많은 속도의 차이로 인한 서로의 다름으로 흘러갑니다. 여기서의 속도란 운동에너지를 가진 시간당 이동거리를 나타내는 물리량을 뜻하는 단어는 아닙니다. 물론 그 의미에서 유추해낸 사고(思考)이긴 합니다.
매일 의미 없이 출퇴근 길에 지나가는 지하철 환승 통로에서 오늘 문득 걸음을 멈추고 수많은 사람들을 쳐다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길을 걸어가지만 저마다 각자 다른 속도로 길을 걸어갑니다. 어느 하나 같은 속도가 없습니다. 앞서서 뛰어가는 사람이 있고, 경쟁하듯 잰 걸음으로 급히 걸어가는 사람도 있고, 조금 빠른 사람도 있고, 보통 속도로 걷는 사람도 있고, 조금 느린 사람도 있고, 아주 느린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가만히 서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같은 길에 같은 목적지를 가졌으면서도 수많은 속도가 존재합니다. 이들이 가진 속도의 차이는 분명 개개인의 성격과 환경과 상황 때문에 생겨났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유 속도라고 믿겠지만 그들의 속도를 지배하는 것은 어쩌면 사회적 약속일 확률이 높습니다. 늦으면 안된다는 무의식적인 강박관념이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약속시간 보다 일찍 출발해서 나온 사람들 사이에도 분명 존재하는 것이 이 속도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목적지를 향해 저마다 다른 속도로 걸어가지만 결국은 도착하고야 마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뜻합니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가고 지나온 발자취는 그들 각자의 역사로 남습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다른 속도를 가진 그들이 느끼는 각자의 역사는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남들보다 먼저 뛰어와 기다린 사람과 아주 천천히 걸어와 다음 열차를 타는 사람은 자신의 역사에 대해 분명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또는 속도의 차이를 가지고 있더라도 결국 같은 열차를 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차이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이 빨리 걸어가는데 앞에서 늦게 가는 사람이 방해가 될 수도 있고, 천천히 가고 싶은데 뒤에서 등 떠밀어 어쩔 수 없이 빨리 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바쁜 세상 왜 천천히 다니는지 이해 못하는 사람과, 뭐가 급하다고 저렇게 빨리 가는지 이해 못하는 사람으로 양분(兩分)해서 생각하면 흑백논리에 빠지기 쉽습니다. 위에서 말했지만 수많은 속도의 존재로 인한 수많은 차이들이 생겨납니다. 이 수많은 차이를 가진 개개인이 한 사회를 구성하고 한 국가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의 지도자들과 정치인, 지식인들이 이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차이에 대한 배려를 해준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조금 깊게 들어가보면, 이러한 다원주의 사회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속도의 차이에 대해 서로 인정하지 않으면 곧바로 논쟁이 되고 싸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로 그 싸움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피해서도 안됩니다. 그리고 이런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갖지 않으면 나태해지고 도태되기 십상입니다. 사회 부적응자들이 끊임없이 양산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연유에서 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은 욕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빠른 사람과 느린 사람 모두를 욕하긴 쉽습니다. 모두가 서로를 욕하고 헐뜯지만 그것만큼 자신의 존재감과 우월감을 나타내기 쉬운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행태는 무지(無知)에서 나옵니다. 빠른 사람이 느린 사람이 왜 느린지에 대해, 느린 사람이 빠른 사람이 왜 빠른지에 대해 잘 모르면 욕부터 하게 되어 있습니다.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의 서로 다른 역사를 느낀 개개인들의 시각은 과거사에 대한 평가로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일제 시대에 대해 같은 시간과 공간을 보낸 한∙일 양국의 역사 의식의 차이는 극명하게 이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그들이 걸어온 역사는 정당하고 올바른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발을 밟고 어깨를 밀치며 걸어간 그 길을 우리는 그들이 밀쳐준 덕분에 조금 빨리 걸어가게 되었다고 감사할 수 있을까. 우리가 짓밟힌 역사에 대해 그들에게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것만큼 정당한 일이 또 있을까.
역사의 가치는 결과로 보상해줄 수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수많은 속도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모두가 열차를 타러 가기 위한 목적지는 같다는 것입니다. 흩어져 있다가도 축구 할 때나 일본에 대항할 때는 전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모두가 뭉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같은 나라에서 다른 생각들을 하며 같은 곳을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속도의 차이를 사회 혼란이라 생각한다면 이 글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주길 바랍니다. 속도의 차이는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이고, 이성적 사고의 결과입니다. 지금 우리의 속도 차이에 의한 다름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우며 건강한 사회라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아주 잠시 서로 생각이 다를 뿐입니다.
굳이 속도를 함께 맞추려하지 말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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