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당시 직장 상사 중에 정말 희한한 캐릭터 한 분이 계셨습니다. 지금도 가끔 연락하며 지내기는 하지만 여전히 신기한 캐릭터임에는 분명합니다. 일단 말이 너무나 많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습니다. 그냥 말의 양이 많을 뿐 들을 얘기는 없습니다. 그 분 자신도 인정하는 바라 뒷담화도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사사건건 논리를 따지고 장황하거나 사실이 아닌 경우 파고 드는 캐릭터였으니 그 분과 제가 대화하면 주변에서 배꼽잡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 유명한 사건 하나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지금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미스테리한 일이었습니다. 잘 읽어보시고 도대체 이 미스테리의 정체는 무엇인지 같이 고민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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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는 직장에 C대리가 있습니다.
나와 직책은 같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이 사람은 말이 참 많습니다.
단 한순간도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을 하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담배를 한대 피울때도, 술을 한잔 할때도...
쉴새없이 말을 합니다.
가만히 지켜보면 정말 대단합니다.
누구든지 모르고 들으면 그 얘기에 몰입되어 듣게 됩니다.
하지만 잘 들어보면 말이 되는 소리는 단 한마디도 없습니다.
확인 불가능한 말들을 많이 합니다.
내가 논리적으로 따지거나 합리적인 얘기로 설득시키면 분에 못이겨 얘기를 관둡니다.
C대리가 하루 중에 말을 안할 때는 나한테 당해서 삐쳐있을 때입니다.
1년 전쯤 영원히 풀리지 않을 미스테리같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날은 무지 더웠던 날로 기억이 됩니다.
회사에 출근을 한 후 모닝 커피 한잔을 들고 창가에 서 있었습니다.
말 많은 C대리가 여기저기 만나는 사람마다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었고
다들 난리가 났었습니다. 어떤 이는 환호성까지 지르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궁금했지만 나설 필요는 전혀 없었습니다.
어차피 나한테도 올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담배를 한개피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주었고 한대 피워물고는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채
나에게 말을 했습니다. 별로 긴 말도 아니었습니다.
C대리 : "야!!! 너 어제 축구봤어?"
그림아이 : "축구요? 아니요. 늦게 들어가서 못봤는데요."
C대리 : "그걸 못보면 어떡하냐. 어제 난리 났었어."
그림아이 : "무슨 일 있었어요?"
C대리 : "어제 생중계로 축구했는데 우리나라가 잉글랜드를 1:0으로 이겼어!!!"
모두가 놀랄만 했습니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우리나라 축구가 잉글랜드를 이기다니요.
정말 황당했고, 기분마저 잠시 좋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고, 금세 이성을 찾았습니다.
내가 하나하나 따져 묻고 인터넷 검색까지 해가며 진실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들을 다 밝혀냈습니다.
문장을 다시 가져와보면...
"어제 생중계로 축구했는데 A매치에서 우리나라가 잉글랜드를 1:0으로 이겼어!!!"
첫째, 축구를 하긴 했는데 그날을 기준으로 어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께 내가 스포츠 뉴스에서
보았던 중계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그 중계는 심지어 생중계가 아니었습니다. 몇일 전에 했던 경기를 녹화방송 했던 것이었습니다.
셋째, A매치가 아니었습니다. 청소년 대표가 비공식 평가전을 가졌었습니다.
넷째, 우리나라와 잉글랜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와 아일랜드였습니다.
다섯째, 1:0으로 이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1:1로 비겼었습니다. 1:0으로 이길 때 TV를 껐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1:0으로 지다가 간신히 동점골 넣고 비긴 경기였습니다.
얼마나 황당한가요.
이 사람이 맞은 거라고는 축구를 했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아직도 이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보고 그런 말을 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본인은 아직도 분명히 보았는데 어떻게 된건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절대로 풀리지 않을 미스테리로 남겨질 것 같습니다.
참 신기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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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신가요? 이해가 되시나요? 이 사람은 도대체 뭘 본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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