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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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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녀 이야기

최근 회사 분위기가 너무 어수선하고 제가 맡은 일들이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바람에 많이 힘든 시기입니다. 거기에 고강도 조직개편으로 직원들의 유출까지 이어져 직장 생활 20년 중 가장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황당한 경험을 해서 글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무념무상으로 지하철을 탔습니다. 한 시간 정도만에 집 근처 지하철역에 도착하여 지하철에서 내려 10분정도 터벅터벅 걸어간 후 제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짝수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있었고, 제 왼쪽에는 홀수층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세 여자가 서 있었습니다. 보아하니 한 사람은 두 여자의 어머니, 나머지 둘은 자매인 것으로 보입니다. 어머니는 50대 후반, 자매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입니다. 자세히는 보지 못했으니 그냥 느낌이 그랬습니다.

 

목소리는 또 얼마나 큰지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 끼치는 것이 일상인 가족으로 보였고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어 보일 정도였습니다. 무슨 얘기인지 듣고 싶지 않아도 어쩔수 없이 강제로 듣게 만드는 짜증나는 마력을 지닌 듯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점심에 기차 화통을 세 모녀가 나눠서 삶아 먹었던 모양입니다.

 

이럴 땐 꾹 참아야 합니다. 남자 성인 한 사람은 여자 셋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에어팟으로 유튜브나 음악을 듣는 와중에도 큰 목소리가 뚫고 들어오면 제가 볼륨을 높여야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볼륨을 낮게 튼 제 잘못이라고 생각해야 삶이 편합니다.

 

대화의 내용을 들어보면 드라마 얘기를 30초 정도 하다가, 갑자기 남자 연예인 얘기 20초 정도 하다가, 갑자기 저녁에 뭐 먹을지 10초 정도 얘기를 합니다. 1분 정도 서서 기다렸던 것 같은데 참 말도 많고, 목소리도 크고, 대화에 두서가 없이 빠르기만 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는 짝수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있었고, 그분들은 홀수층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습니다.

 

갑자기 셋이서 두서 없는 대화를 멈추고 화제를 또 바꿔 대화를 합니다. 그 대화의 내용인 즉슨...

 

두 자매가 엄마 집에 처음 놀러 온거고 엄마가 마중 나가서 그 두 자매를 데리고 들어오는 중인 모양입니다.

 

엄마 : "홀수 층 앞에서 기다려야돼"

 

언니 : "몇 층인데?"

 

엄마 : "10층"

 

동생 : "그럼 짝수층에서 기다려야지. 버튼을 잘못 눌렀네."

 

언니 : "야! 10층이 어떻게 짝수냐? 홀수지!"

 

동생 : "뭔 소리야. 짝수지 어떻게 홀수냐?"

 

엄마 : "야! 내가 어제 짝수 층 탔다가 잘못 내렸어. 홀수 층 맞아"

 

동생 : "뭔 소리야. 아~ 미치겠네"

 

언니 : "언제 철들래. 너만 보면 갑갑하다. 진짜."

 

엄마 : "쟤는 맨날 저러더라"

 

저 : ... ???~~!!?@~!???

 

이분들 도대체 뭐하는 걸까요?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 듯 했습니다. 엄마와 언니는 분명 바보인데, 두 사람이 한 사람 바보 만드는 만행을 저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생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찰라에 벌어진 일이라 방법이 없었습니다.

 

결국 세 여자들은 홀수층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10층이 안 눌러지니 엘리베이터가 고장난 것 같다고 하길래 내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왜 고장이 났지? 하면서 11층을 눌러 계단으로 내려가자고 합니다. 그리고는 맨날 고장이라고 투덜댑니다. 동생만은 진실을 알고 있을 텐데 약간의 핀잔을 들어서인지 대꾸하지 않고 묵묵히 따라가는 모양이었습니다.

 

이런 황당한 일을 겪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나 진실은 소수일까?" 라는 것입니다. 다수가 진실을 진실이라 믿지 않을 때 소수가 말하는 진실이 겪는 수모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은 때에 따라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이라 믿는 소수가 떼를 쓸 때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언제나'라는 조건이 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가끔은 소수가 진실일 때도 있지만 다수에 의해 가려지기 쉽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정확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착각과 오해는 항상 발생합니다. 말과 글에 담긴 생각들의 차이를 줄여보자고 '숫자'라는 개념이 탄생했을 것입니다. 월급을 '많이' 줄게라고 할 때 '많이'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좀 더 객관적인 개념의 언어인 '숫자'가 탄생했다고 생각합니다. 피라미드 건설 당시 인부들에게 빵을 일당으로 나눠주기 위해 '분수'의 개념이 탄생한 것과 같은 이치겠지요.

 

그런데 '숫자'에 홀수와 짝수 같이 사람들이 편의상 만든 개념이 말과 글로 더해지니 또 다시 착각과 오해가 발생하는 모양입니다. 즉, 아무리 객관적인 개념이어도 사람들의 생각이 개입되면 언제나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방향으로 변화(또는 변질)되는 모양입니다. 홀수와 짝수는 서로 싸우지 말고 겹치지 말라고 만든 개념일 텐데도 결국 그러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세 모녀 덕분에 참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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