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 제가 쓴 노트 필기를 저도 가끔 못알아보거나, 내 노트를 빌려간 친구가 욕지거리를 하며 돌려주곤 했습니다. 저는 미리 경고했지만 친구는 그러려니 했었나 봅니다. 어릴 때부터 글씨를 잘 쓸 필요를 못 느꼈고, 잘 쓰는 방법을 찾으려 해본 적도 없었으며, 잘 쓰고 싶은 욕심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찍부터 타자 속도가 빨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악필을 숨기기 좋은 세상이 된겁니다. 그러나 나이를 한살, 한살 먹어갈 수록 글씨를 남들에게 보여줄 때마다 점점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소한 누구든 쉽게 알아만 볼 수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방법도 몰랐고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습니다.
이런 제가 해외 생활을 하며 일본에서 저녁마다 한시간씩 컴플렉스 탈출을 위해 글씨 교정을 혼자서 연습했습니다. 나도 글 좀 잘 써봤으면 했습니다. 약2년간 매일 저녁 한 시간씩 글씨를 그려가며 연습했습니다.그러나 회의 중 급하게 글을 적다 보면 저도 모르게 다시 예전 버릇이 나와 도루묵이 되어 버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때마다 다시 마음 잡고 글씨를 천천히 그리는 연습을 했고 2년 정도 연습하다가 다시 한국에 들어와 잊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주변 사람들에게 글씨가 예쁘다는 말을 가끔 듣습니다.
내가? 이게? 이해할 수 없었지만 기분은 좋았습니다. 저는 그 동안 제 손글씨가 교정된 줄도 모르고 살았던 모양입니다. 예전보다는 확실히 나아졌지만 그래도 어디가서 자랑할 수준은 절대로 아닙니다. 글씨 쓰는 속도도 확실히 느리고 아직도 교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게 어딥니까. 저 같은 수퍼 악필이 칭찬을 받다니 말입니다.
딸아이가 저를 닮아 악필이라 걱정이 많지만 잔소리는 하기 싫어 지켜만 보고 있던 와중에 아빠는 글씨가 참 예쁘다며 부럽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연습했던 교정책을 찾아 보여줬습니다. 나중에 아빠처럼 이렇게 고생 안하려면 지금부터 잘 써야 한다고 하니 대단하다며 교정책 사달라고 합니다. 물론 사줘봤자 금방 힘들어서 내팽개쳐질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기특한 마음이 예뻐서 사줬습니다.
2년간 연습했던 걸 다시 보니 일본 히로시마와 가고시마 촌구석에서 참 열심히 살았구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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