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강신주의 감정수업

일상이 여정이 되는 순간/책 리뷰

by 그림아이 2022. 1. 9. 02:00

본문

반응형

감정수업

본 리뷰는 2014년에 작성되었습니다.

 

드디어 해냈다. 장장 600 페이지에 달하는 책 한 권을 다 읽었을 때의 기쁨이 참 오랜만이다. 게다가 동시에 같이 읽던 책이 거의 400 페이지였으니 한 달에 1,000 페이지를 읽은 것이다. 그 사이에 리비아 현장으로 온 것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음에도 해냈다는 성취감에 너무나 기분이 좋다. 정해진 분량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진도가 안 나간다는 느낌을 받은 적도 별로 없었다.

 

정말 재미있는 책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지만 이 책이 이렇게나 오래 걸린다는 느낌을 준 것으로 보면 꼭 분량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처음 마주한 스피노자의 철학적 사유에 낯설어 하며 적응하기 위해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자인 강신주 교수가 편집장의 도움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스피노자의 감정에 대한 철학적 정의에 맞는 문학 서적을 인용하여 넣어두는 치밀함과 세심함으로 더욱 완벽한 철학서를 완성한 덕분에 읽는 내내 읽고 생각하고를 반복해야 했고 이로 인해 시간이 더욱 많이 걸렸던 것 같다.

 

이전까지 스피노자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저 좋은 글귀 중에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파기 시작했다.”라는 스피노자의 말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 전부다. 그렇다고 이 책을 모두 읽은 지금 스피노자에 대해 많이 안다고 할 수도 없다. 다만, 스피노자의 여러 감정들에 대한 정의는 대단히 날카롭고 정확하며 깊은 내공이 엿보인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스피노자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책을 골라봐야겠다. 지금껏 철학적으로는 서양 사상이 동양 사상을 따라올 수 없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스피노자를 보면서 꼭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증법적 사유와 자연 과학 덕분에 계몽주의와 실용주의가 일찍이 자리잡은 덕분에 분야가 많이 달라져 있어서 그렇지 동양이나 서양이나 철학적 사유의 깊이는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예전에 이외수의 감성사전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분야도 다르고, 무게감도 다르고, 접근 방식도 많이 달랐지만 어쨌든 스피노자의 감정에 대한 정의는 감성사전과 많이 닮아 있다. 아마 이러한 방식의 철학서가 많은 작가들과 철학가들에게 많이 애용되는 것이었나 보다.

 

인간의 감정은 참으로 복잡다단하다. 어쩔 때는 단순하면서도, 어쩔 때는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하지만 보통 우리는 감정을 느끼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감정은 그냥 어떠한 내적, 외적 환경과 원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지 이론적으로 생각하여 결심한 후 생겨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감정을 말로, 그리고 글로 표현하는 시도가 바로 문학과 철학일 것이다. 만약 노래로 표현하면 음악이 될 테고, 그림으로 표현하면 미술이 될 테고, 춤으로 표현하면 무용이 될 것이다. 예술이란 바로 인간의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감정을 특정 매개체를 통해 전달하는 행위이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감정들을 엄청난 사유의 깊이를 더한 후 글로 표현했다.

 

책은 48가지의 감정에 대한 정의와 그에 걸 맞는 문학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모든 감정들의 저변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대 명제처럼 깔려 있다. 인간에게 있어 사랑이라는 감정은 역시 영원한 숙제이자 모든 감정들을 통제하고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가 보다. 위대한 철학자들에게도 사랑이란 영원한 주제인가 보다. 예술가들에게도 그렇듯이 말이다. 본문 중에도 나오지만 사랑으로부터의 영원한 해탈은 마지막 숨을 내뱉은 후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우린 영원히 사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매번 똑 같은 사랑 노래에도 저절로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면 그게 바로 결정적인 증거일 것이다.

 

이 책은 iPad를 통해 e-book으로 읽었다. 리비아로 무겁게 책들을 가져올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책장을 넘기는 손맛을 느낄 수 없고 마음껏 밑줄을 그을 수 없어 조금 아쉽지만 엄청난 휴대성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책의 본문 중에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 하이라이트를 해둔 부분들을 정리해본다.

 

사랑 (amor)이란 외부의 원인에 대한 생각을 수반하는 기쁨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탐욕 (avaritia)이란 부에 대한 무절제한 욕망이자 사랑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박애 (benevolentia)란 우리가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친절하려고 하는 욕망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빙점 (氷點)이 동시에 융점 (融點)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시각의 차이다. 물컵에 물이 반 정도 차있는 것을 보고, 염세주의자들은 물이 반 밖에 안 남았다고 하지만 낙관론자들은 아직도 물을 반이나 더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을 조금만 달리 해보면 이렇게 빙점이 융점이 되기도 한다. 이게 바로 혁신의 시작이다.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는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얻는 법이니까.

항상 진리다. 가르치는 사람은 뭔가를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배워서 그것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아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728x90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