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네이버 지식인에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프로 바둑기사들 중에,
1. 수입이 가장 많을것 같은 기사는?
2. 가장 좋아하는 기사는?
3. 그 이유는?(2번의 이유)
4. 해외 기사중에 좋아하는 기사는?
5. 한국의 바둑 세계 독점 추세가 계속 되고 있는것에 대한 자신의 의견은?
저는 아래와 같이 답변했었습니다. 시간이 벌써 18년이 지났지만 제 생각에는 큰 변화는 없습니다. 바둑 기사 이름들만 좀 업데이트된 것만 빼면 같습니다. 길지만 나름 재미있게 썼으니 정독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동네 바둑 3급 수준이지만 나름 바둑에 관심이 많은 사람 중 하나입니다. 질문하신 내용을 순서대로 아는대로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철저히 제 생각과 지금까지 바둑 관련 책과 뉴스에서 본 것을 정리하겠습니다.
1. 수입이 가장 많을것 같은 기사는?
우리나라 최고의 기사들은 이창호 9단, 유창혁 9단, 조훈현 9단, 이세돌 9단 등입니다. 인기도 최고인 분들이지만 실력 또한 세계 최강의 국보급 기사들입니다. 제가 만약 정치를 하거나 높은 지위를 가졌다면 이 분들을 인간 문화재로 승격해 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언급하지 않았다고 다른 분들 중엔 없는 것은 아닙니다. 순서 없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은 것이니 개인적인 팬 여러분들께는 양해 바랍니다.
수입 얘기 전에 대충이라도 소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창호 9단은 두 말 하면 입 아픕니다.
유창혁 9단은 자타가 공인하는 공격의 1인자 입니다.
조훈현 9단 역시 두 말 하면 입 아픕니다. 이창호 9단의 스승이죠.
이세돌 9단은 얼마 전 9단 (2003년 기준)으로 특별 승단한 요즘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바둑이 인기를 끌고 있는 나라는 한국, 중국, 일본, 대만이며 다른 나라들도 기원들이 있긴 합니다만 그냥 기원만 있다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현재 국내기업이 주최하는 기전은 총 18개. 그중 일류들만 나서는 세계대회는 3개입니다. (2003년 기전이며 지금은 조금 늘어났긴 하지만 크게 늘지는 않았습니다.)
국내 기전도 기전이지만 아무래도 세계대회가 상금면에선 월등합니다. 질문하신 목적이 정말 수입이라면 답변 드리기 정말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수입까지 저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지도대국료, 출판에 따른 수입, 해설, 강연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수입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님께서 만약 상금에 의한 수입만을 알고 싶으시다면 역시 이창호 9단 입니다. 올해는 아직 저도 통계가 안나와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작년까지 거의 10년간 상금랭킹 1위자리를 놓쳐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작년엔 랭킹 1위 자리를 내주었는데 그 이유가 모든 세계 기전 결승전이 올해로 이월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창호 9단은 20여년간 전성기를 구가한 전설같은 존재입니다. 아무튼 이창호 9단은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2. 가장 좋아하는 기사는?
주저없이 이창호 9단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3. 그 이유는?(2번의 이유)
얼마 전 이창호 9단은 초유의 기록을 하나 세웠습니다. 바로 최연소 1,000승과 그랜드 슬램입니다. 바둑에서의 그랜드 슬램은 현재 세계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것입니다. 이전에 이 기록을 세운 사람들이 누군지 아세요? 바로 유창혁 9단과 조훈현 9단입니다. 하지만 이창호 9단의 기록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창호 9단이 이 기록을 세우기 전엔 세계 대회가 몇개 없었거든요. 그 후로 몇 개 더 생기면서 그것마저 우승해 버린 사람은 이창호 9단뿐입니다. 그랜드 슬램에서 최초는 아니겠지만 질적으로 틀립니다.
우리나라 바둑이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이유 중 중심에 있는 분이 이창호 9단입니다. 그리고 바둑의 역사를 얘기할 때 종종 이렇게도 얘기합니다. 이창호 9단이 있기 전과 그 후. 왜 이창호 9단이 대단하며 우리가 그토록 열광하고 있는지 바둑을 조금만 둘 줄 아는 사람은 모두가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창호 9단이 나타나기 전, 그러니까 1980년대 중반까지 이창호 9단이 입단하기 전으로 돌아가보면, 그 당시 바둑은 중국과 일본의 양강구도였고 우리나라엔 조훈현 9단과 서봉수 9단이라는 걸출한 분들이 우리나라 바둑계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었습니다. 말이 양강구도지 사실 일본의 독무대였습니다.
모두 잘 아시겠지만 프로 바둑이라는 개념을 가장 처음 만든 나라는 일본입니다. 바둑의 시작은 중국이지만 가장 먼저 체계화 시켰다는 점에서 일본이 앞서 가고 있었습니다. 다께미아 9단을 중심으로 한 우주류가 득세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옛날 바둑 책들은 일본의 책들을 번역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바둑에 대한 자존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우리나라 역시 원로 기사들 대부분이, 아니 거의 전부가 일본 유학파 출신입니다. 유학을 하지 않았더라도 일본에서 전해진 책들을 보며 연구하고 공부하신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서봉수 9단이 토종 기사라는 애칭이 붙기도 했었죠. 그 당시 유일하게 유학하지 않은 9단이었습니다.
하지만 드디어 이창호 9단이 입단을 하고 최연소 세계대회 재패의 기록 등 여러 가지 우리나라 기록들을 모두 갈아치우며 당당히 나타난 이후로는 세계 바둑의 흐름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조훈현 9단의 애제자로 그 분의 집으로 들어가 수행한지 몇년 만에 스승을 이기고 독립해서 나오게 됩니다. 바둑의 역사가 새롭게 쓰여지는 시점이 그때 였습니다. 조훈현 9단으로 하여금 담배를 끊게 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조훈현 9단이 이창호 9단 아니었으면 그 좋아하던 장미 담배 끊고 바둑에 전념했겠습니까? 그 덕분인지 이후로 조훈현 9단 역시 성적이 좋아졌습니다. 우리나라 중심으로 바둑의 교과서가 새롭게 쓰여지는 엄청난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이창호 9단이 그때 세운 41연승의 대 기록은 앞으로도 한동안 깨지지 않을 것입니다. 항상 새로운 신수를 들고 나와 이전의 교과서들을 비웃곤 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창호류의 바둑, 이창호류의 포석 및 정석이란 말이 통용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예전에 33 에 들어오면 조남철 9단도 못 막는다 라는 바둑계의 우스갯 소리가 있었는데 이 말조차도 이창호 9단도 못막는다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중국의 바둑 전문 학교가 1000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그 학교 현장을 취재하러 간 기자가 본 것은 다름아닌 수많은 중국 바둑 연구생들이 이창호 9단의 기보와 실전 비디오를 보며 공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수많은 젊은 기사들의 꿈은 이창호 9단을 이겨보는 것이랍니다. 이창호 9단이 두면 바로 정석이 되어 버립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이창호 9단을 좋아하는 이유를 몇 가지로 설명하자면,
첫째, 돌부처. 포커 페이스. 별명에서 보시는 것처럼 좀처럼 흔들림 없는 철저히 냉정한 모습입니다. 승부에서 지던 이기던 개의치 않습니다. 그래서 별다른 슬럼프도 없습니다. 요즘 성적이 신통치 않습니다만 그것 역시 이창호이기에 그렇지 간간이 우승은 계속 하고 있는 중입니다.
둘째, 조훈현 9단도 모르는 신수. 이창호 9단의 바둑을 생중계로 본 사람들은 모두 알겁니다. 이창호 9단이 바둑을 두면 현장에서 해설은 거의 90% 이상은 노영하 9단과 조훈현 9단이 합니다. 이때 이창호 9단이 한 수를 두면 그 두분이서 한참을 둬봐도 이해를 잘 못합니다. 옆의 검토실에서도 역시 이해를 못해서 쩔쩔 매다가 몇 수 더 진행되고 나서야 "아! 이래서 여길 뒀었군요." 하는 말을 많은 사람들이 충격적으로 들었습니다.
셋째, 컴퓨터보다 더 정확한 끝내기. 이창호 9단은 바두에서 여러 경우의 기사들 중 항상 예외로 치부됩니다. 보통 바둑은 포석과 정석 그리고 중반 전투를 연구 한 후에 끝내기를 공부하게 되는데 이 끝내기란 것이 오묘해서 아직도 어떤 정의나 방법이 내려지지 않은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창호 9단은 예외로 끝내기부터 득도를 하게된 유일한. 아니 앞으로도 이런 기사는 없을 기사입니다. 바둑 생중계를 보면 다 지고 있던 바둑에서, 옆의 검토실에선 중국 또는 일본 기사들이 대국을 검토하다가 이겼다고 환호성까지 지르고 있는 상태에서 정확히 반집을 계산해 이겨버리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예전엔 보통 반집은 운이라는 바둑 격언이 있었는데요. 이 말 역시 이창호 9단 이후로는 '반집도 실력이다'라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집계산을 해서 반집이라도 이기고 있으면 절대 무리하지 않는 것이 이창호 9단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공격적인 성향을 띄고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성적은 별로입니다만 수많은 바둑 관계자들은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연구중이기 때문이죠. 여기서 이세돌 9단을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지금의 이세돌 9단은 유창혁 9단의 공격과 이창호 9단의 끝내기를 합쳐놓은 듯 합니다. 우리나라 바둑계의 엄청난 수확입니다. 자랑스럽고요.
넷째, 끊임없는 연구. 유명한 일화중에 한가지를 소개해 드리면, 조훈현 9단과 함께 살면서 공부를 하던 그 옛날 처음으로 이창호가 조훈현을 이긴 역사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그 날 집에 돌아온 조훈현은 말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이창호는 성격답게 조용히 이층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갑니다. 집안 분위기때문에 조용히 있던 조훈현 9단의 부인은 자다가 이상한 소리에 문득 잠에서 깨어나 방문을 열고 위층으로 올라가보니 불이 켜진채 이창호가 자신의 방에서 혼자서 바둑을 두며 연구를 하고 있더랍니다. 전율이 일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남편을 이긴 제자가 그렇듯 공부를 하는데 어땠겠습니까. 문제는 아직도 연구중입니다. 요즘은 공격에 대해 깊이 공부를 하고 있는 듯 합니다. 잠시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지켜봐 주십시오.
다섯째,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이창호 9단. 2001년 가을 그 사건(?)을 기억하세요? 한국기원서 열린 제6회 LG정유배 프로기전 결승 2국에서 이 9단은 돌 하나로 두개의 축을 방어하는 진신두를 놓아 최명훈 8단을 81수만에 불계로 이긴 일이 있었습니다. '진신두' 이 수는 중국의 옛 고전으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신비로운 전설의 수로 알려져 있었는데요. 이 수가 반상에서 나타난 사건입니다. 바둑계의 일대 충격이었고요. 왜 이창호 9단이 세계 최강인지를 다시한번 전 세계 모두에게 각인 시켜준 일이었습니다.
그 옛날 임진왜란때 이순신 장군만 보면 일본 군사들은 오줌을 쌌다고 하죠? 지금 이창호 9단이 그렇습니다. 여러 사람 은퇴시켰죠. 은퇴하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바둑 대회에 얼굴 안비추는 기사 몇 있습니다. 아무튼 이창호 9단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이며 바둑 역사에도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며 자식들에게도 자랑스럽게 말해줄 겁니다. 그가 한국인임이 더없이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재산입니다.
이창호 9단은 인터뷰할 때 기자가 가장 애를 먹는 사람 중 최고인데요. 그 중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기자 왈 "이창호 9단은 이제 더이상 이룰 것이 없는것 처럼 보이는데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나요?" 이렇게 묻자. 우리의 이창호 9단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상대방이 단 한수도 실수하지 않는 바둑에서 이겨보는 것입니다." 라고요. 이 말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상대방이 못둬서 이겼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승리가 상대의 실수 덕분이라며 겸손함을 표현한 것이고 상대의 실수가 없어도 이길 수 있도록 더욱 공부하겠다는 말입니다.
4. 해외 기사중에 좋아하는 기사는?
해외 기사들 중엔 없습니다. 우리나라 기사들만 좋아해도 여력이 없습니다. 대신 불쌍하고 안쓰러운 해외 기사는 있습니다. 중국의 마샤오춘 9단입니다. 세계 랭킹이 손에 꼽히는 세계 최고의 기사 중 한사람이었는데 이창호 9단에게 연패를 당하고 다 이긴 경기를 어처구니없이 역전패를 당하는 등 철저하게 무너져 회복도 못하고 이창호 9단이 나오는 기전은 피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5. 한국의 바둑 세계 독점 추세가 계속 되고 있는것에 대한 자신의 의견은?
최근 우리나라 바둑은 세계 대회를 20연패 이상을 하고 있습니다. (2003년 당시 대한민국의 바둑은 그야말로 극강이었습니다. 이후 2010년 들어 이창호 9단의 나이가 30대 후반이 되면서 쇄락해가고 이세돌 9단이 치고 올라왔으나 이창호 9단의 전성기만큼 독보적이진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약 10년 넘게 중국의 독무대가 펼쳐졌고 간간이 우리나라의 우승 소식이 들려올 뿐 대부분 중국이 휩쓸고 있습니다. 2020년부터 신진서 9단이 압도적인 실력으로 우승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우리나라의 우승 소식이 많아지고 있으니 반가운 일입니다.)
이러기 위해선 몇년간 계속해서 우승해야만 하는데 바로 우리가 지금 그걸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 기록에서 가장 독보적인 존재가 바로 이창호 9단이구요. 요즘 이창호, 유창혁, 조훈현. 이 세사람이 성적이 안좋아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이세돌 9단이 후지쯔배에서 해주었습니다. 원인은 여러 가지이며 모든 사람의 견해가 틀릴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는 한국 바둑이 강한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우리에겐 이창호 9단이 있죠. 우리에겐 있고. 그들에겐 없죠.
둘째, 두터운 선수층.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교육열 잘 아시죠? 바로 그 교육열이 한 몫 합니다. 조금만 가능성이 보이면 무조건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뭐라고 하는게 아니라 바로 그게 원동력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엄청난 경쟁. 위에서 언급해드린 교육열만으로도 힘든것이 바로 질적 수준일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바둑을 두더라도 질적인 수준이 뒷바침이 안돼면 불가능합니다. 중국을 보시면 됩니다. 헤아릴 수 없는 학생들이 공부를 하지만 수적인 부분으론 설명이 안됩니다. 우리나라 한국 기원의 연구생들은 10개의 등급으로 매겨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은 2개였는데 좀 늘었는지는 모르겠네요. 아무튼 실력에 따라 등급을 매겨 그 엄청난 인고의 세월을 오로지 노력과 연구로 버텨야 합니다. 한단계 한단계 10계단을 올라야만 입단의 영광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힘들 것입니다.
넷째, 현재 최강의 선배들. 여러 세계적인 선배들의 존재 자체가 모두에게 정신적으로 힘이 됩니다.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힘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다섯째. 젊은 기사들의 자세. 이세돌 9단이 3단에서 한동안 머무르면서 승단 기전에 고의로 참가하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다. 바둑계에서 꾸중을 좀 들었지만 그의 이유가 걸작입니다. 승단을 하게 되면 단수가 낮은 기사들과 대전할 기회가 없어져 공부할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이었습니다. 9단들을 예로 들면 안그래도 1년간 대국 수가 100국이 넘곤 하는데 단수가 낮은 기사와 두면 실력면에서나 체력적인 면에서 도움이 되질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둑 대회를 하더라도 9단들과 두려면 한참을 올라가야 한번 둬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단자들이 입을 모아 얘기하는 말이 요즘 젊은 기사들과 둬보면 항상 새로운 수를 경험하게 된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선한 자극제가 되는 것이죠. 아무튼 이런 이세돌 9단과 같은 자세야 말로 공부하는 자의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발칙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바둑의 발전 면에선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우리나라의 세계 최강의 자리는 깨지기 힘들겁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려 강조하지만, 우리에겐 이창호 9단이 있고. 그들에겐 없습니다.
이야기를 끝내며, 잠시 추가하지면 2021년 현재 대한민국의 바둑의 미래는 매우 밝습니다. 이세돌 9단의 은퇴 이후 박정환 9단의 나이가 많아지면서 걱정을 했으나 박정환 9단의 실력이 날로 늘고 있고, 신진서 9단이 너무 압도적이며, 변상일, 신민준을 포함하여 여러 신예 기사들의 실력이 날로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창호 9단이 세상을 호령하던 시절을 다시 한 번 누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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