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지율 스님이 KTX 철도공사에 반대하며 단식투쟁하던 당시 토목엔지니어로서 느낀 감정을 정리한 글입니다.
삼라만상 온 우주 어느 생명이 귀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 자신의 몸을 태우고, 찢고, 부러뜨려가며 대한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부르짖었던 선열들이 흘린 땀과 피 위에 지금 우리는 서있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오죽했으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주장을 펼칠까. 실로 비통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우리 민주투사들이 그렇게 바라던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지금 현재의 정치, 사회적 현상들은 지극히 민주주의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역시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가능한 생각들이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나는 몇 해 전에 이런 종류의 현상들을 예언한 바 있었다. 민주주의가 성숙되어가는 과정에서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중의 하나는 바로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란 한가지 관점을 여러 가지 시각에서 바라보는 입장을 말한다. 가장 쉬운 예로 진보와 보수가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각자 나름대로 민족과 나라를 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아가는 방향과 그들의 목적의식이 다를 뿐이다. 이처럼 하나의 사회현상에 수많은 의견들이 있을 수 있고, 이 중에서 다수결 원칙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방식을 바로 민주주의라 한다. 사회주의나 전체주의와 가장 큰 차이점은 소수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느냐이다. 원론적인 이 문제로 돌아가보면 대한민국의 현재는 지극히 민주주의적인 길을 걷고 있다.
내가 이런 원론적인 얘기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아무리 작은 한가지 사회현상이라도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몇 가지 실재하는 예를 들어 보겠다. 행정수도 특별법이 위헌 판결이 나던 날… 현재 노무현 대통령에 불만을 가진 보수 세력들은 일제히 만세를 외쳤고, 진보 세력들은 좌절 그 자체였다. 그건 정치세력에 국한된 것이고, 일반 서민들은 어땠을까? 수도권 사람들은 좋아했을 것이고, 충청권 민심은 불만에 가득 차있었다. 그것뿐일까? 나 같은 건설 노동자들이 일제히 술을 마신 날이었다. 그거 하나 믿고 기다렸던 수많은 건설 노동자들에게는 충격의 날로 기억된다.
다른 예로는 국가 보안법이 있다. 이 현안 역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중차대한 문제이다. 수많은 인권 유린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낡은 유물을 아직도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덕분에 그 생명을 끈질기게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호주제 폐지에 관한 예도 있다. 여성 인권의 대표적인 걸림돌인 이 사안에 대해 유림은 단식 농성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헌법 재판소에서 위헌의 이유로 인권침해의 여지가 있다고 밝힌 사안에 대해서 결사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또, 4대 개혁 입법에 관한 논란이다. 장기적인 경기 침체와 수많은 민생 현안들을 제쳐놓고 개혁입법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현 정부와 여권에 대한 비판이 날로 강도를 더해간다. 하지만 이런 개혁들이 경제문제와 민생 현안과 정말 아무런 연관성이 없을까? 개혁 입법 말고는 정말 아무 일도 안하고 있을까? 이에 따라 상승될 국가 신인도 재고에 따른 경제발전은 너무 무시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런 예들을 지켜보면서 성숙되고 건강해져 가는 우리 사회가 때론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각자의 주장을 한 자리에 모여 토론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가고, 그 모습들을 TV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도 무척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이런 사회 문화적 변화에 가장 큰 힘은 바로 국민 의식의 급성장이다. 난 개인적으로 그 이유를 전 국민의 학력 상승이라고 생각한다. 배울 기회가 많아졌고, 그 덕분에 많이 배운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국민 의식의 선진국화에 기여했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IT 강국으로의 진화도 역시 큰 몫을 차지한다. 앞으로도 수많은 현안에 대해 각기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논쟁을 벌이거나 투쟁하는 모습들이 많이 비춰질 것이다.
지율 스님의 단식 100일째를 맞은 지금 내가 더욱 슬픈 것은 나 자신이 건설 노동자로 몸담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우리 토목 분야의 건설 노동자들은 10년째 건설경기 불황의 길을 묵묵히 걸어 오고 있고, 얼마 전 행정수도 특별법의 위헌이라는 핵폭탄까지 맞은 지금 실로 비참한 나날을 겪고 있다. 토목 분야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10여년 전 환경 분야를 도입했고, 대학의 각 과들의 이름도 또한 “토목 환경 공학과”로 진화를 해왔다. 환경 분야와 가장 대립되는 분야인 토목에서 말이다. 토목은 건축과는 그 차원부터가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발주처가 정부라는 것이다. 건축분야의 발주처는 항상 민간 또는 민간 기업이다. 토목은 SOC, 즉 사회 간접자본의 일환인 경제, 사회의 인프라 스트럭처(Infra-structure)를 구축하기 위한 국책사업을 그 주 업무로 한다. 환경 문제가 항상 대두되는 이유는 이번 천성산의 문제처럼 도로를 내거나 철도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산을 넘어야 하고, 때로는 강을 건너기 위해 교량을 건설해야 할 때, 주변 환경에 적지 않은 피해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수많은 건설 자재들과 장비들로 인해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환경 문제 때문에 진화를 거듭한 토목 분야도 역시 친환경적인 공법들이 개발되고 환경 영향 평가라는 제도를 도입해서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토목은 항상 국책사업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와 직, 간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따라서 한 나라의 경기 침체와 장기 불황을 타개하는 가장 빠르고 기본적이고 훌륭한 방법은 바로 건설경기의 부흥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동산 시장이나 건설 경기에 힘을 실어주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번번히 국책 사업이 환경 문제로 가로막혔다. 새만금도 그랬고, 천성산도 그랬고, 행정수도 건설도 그랬다. 대한민국 좁은 땅에서 이제 더 이상 이런 거대한 국책사업은 더 이상 없을 것이란 예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되어 왔다. 통일 되기 전에는 말이다. 여기서 음모이론이 대두될 수 있겠다. 보수주의자들은 국책사업 중 건설분야의 중단이 실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연하다. 경기 침체가 장기간 지속될수록 자신들의 대권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므로 말이다.
아무튼 환경 문제는 중요하다.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천성산의 경우도 그렇다. 환경 영향 평가를 했고, 법원으로부터 공사 강행 명령도 받았다. 여러 가지 공법으로 생태계 파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충분하다. 그런데 이에 단식이란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몸을 버려가며 투쟁하는 지율 스님의 단식을 지켜보며 가슴 한구석이 아려오지만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차가운 이성으로, 현실로 되돌아가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몇 가지로 정리해 보겠다.
첫째, 국가의 정책을 개인이나 소수의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막을 수 있느냐의 문제. 이제 지율 스님의 단식은 막을 내렸으나 앞으로가 걱정일 수밖에 없다. 수많은 현안들에 대해 이번 사태가 본보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호주제 폐지에 대해 유림에서 이미 단식을 각오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예측해 보면 호주제는 폐지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국책 사업도 진행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연기된 천성산 공사 때문에 그와 관련된 건설회사 사장들이 나와서 연기할 수 없다고 단식하면 그건 또 어떻게 할건가. 국가는 정책이나 국책사업을 위해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우리 민주투사들이 이런 허울로 인해 목숨을 잃어간 것 아니었나? 그렇다고 스님을 죽게 내버려두자는 것이 아니다. 한 개인의 독단적이고 극단적인 방법이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이 슬플 뿐이다.
둘째, 공사가 연기되고 나서 버려질 우리들의 세금. 정부가 제안을 받아들여 스님께서 단식을 중단 했지만, 그 제안이란 환경 영향 평가를 공동으로 실시하자는 것이다. 환경 영향 평가는 공짜로 할까? 그리고 그에 따라 설계 변경이 있다면 그건 공짜로 할까? 연기된 채 건설 장비들이나 건설 자재들은 천성산 윗자락에서 치워질까? 해당 시공사들은 공짜로 기다려줄까? 건설 노동자들은 돈 안받고도 공짜로 산에서 기다려줄까? 건설 노동자들의 가족들은 누군가가 공짜로 밥을 먹여줄까? 아름다운 환경에 비해 현실은 너무나 어둡다. 신문 기사 상으로 추산한 추가 예산으로는 몇 조가 든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리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경제도 어려운데 막대한 세금들여 행정수도 이전한다고 비판했던 세력들이 이번 일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너무나 궁금하다. 만약 공사를 중단하고 지율 스님 살리기에 앞장 섰다면 너무나 이중잣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실로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셋째, 역사는 역사가가 평가하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과거사 진상 규명에 대해 적극 대처하겠다면서 이렇게 한마디 했다. 그렇다면 환경도 환경 전문가가 평가하고 건설 분야는 건설 분야의 전문가가 평가해야지 왜 정치권에서 공격의 수단으로 삼았을까?
넷째, 대통령과 정부의 무능? 미안하지만 건설 법령을 들여다 본 사람이라면 이런 얘기 못한다. 국책사업, 그것도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온 사업은 대통령도 이래라 저래라 못하게 되어 있다. 지율 스님이 처음에 청와대 앞에서 시위한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것이다. 고속철 건설에 대한 설계와 발주는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권 당시 결정된 사안이다. 이에 대해 현 정부는 아무런 영향력도 없고 간섭할 권한 조차도 없다. 그러니 답답할 수밖에 없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능력의 최대치는 바로 환경 영향 평가를 다시 해보자는 것뿐이고, 공사가 지연될 경우 세금을 더 쏟아 부어 주는 일 뿐이다. 한나라당은 이에 관련되어 자유롭지 못하다. 자신들이 실세일 때 설계했고 환경 영향 평가 없이 설계를 진행시켜 이 지경까지 사태를 몰았기 때문이다.
난 건설 노동자다. Civil engineer임을 단 한번도 부끄러워해본 적이 없다. 난 지구 위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고 자부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요즘 건설 분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닥에 떨어져 있고, 이공계 기피 현상과, 행정수도 이전 무산 등의 악재로 최악의 나날을 겪고 있다. 거기에 지율 스님의 모습을 보며 참담하기가 이루 말하기 힘들다.
삼라만상 어느 생명이 귀중하지 않을까.
하지만, 보존과 개발의 양 날개의 균형으로 세상은 돌아간다.
개발한다고 보존되지 않는 것은 아니며, 개발한다고 항상 생명이 꺼져가는 것만은 아니란 사실을 모두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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