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기는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지만 그 중에 저는 완전히 넋이 나갈 정도로 충격을 받아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일본에서 일하고 있었고 함께 일하던 직원이 누가 이길 것 같냐고 묻길래 이렇게 답했었습니다.
“컴퓨터가 바둑으로 인간을 언젠가는 이기겠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까지 나온 바둑 프로그램들 다 사보고 사용해봤는데 저한테도 지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기껏해야 아마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떻게 이겨요. 5대 빵으로 가뿐히 이길 거에요.”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1승 4패. 그나마 1승을 한 것도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완패였습니다. 저는 취미가 바둑입니다. 남들이 스타크래프트 컴퓨터 게임할 때 저는 옆에서 바둑을 배웠습니다. 동네 바둑이지만 아마 3급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고, 지금은 직접 두는 것보다 유튜브로 중요한 시합을 챙겨보는 정도만 하고 있지만 관심은 항상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옆에서 일하던 직원이 바둑이 취미인 저에게 물었던 것이었고 저는 너무 당연하게 이세돌의 승리를 예상했던 것이었습니다. 바둑 전문가들 모두 한 목소리로 저와 같은 예측을 했었고 그 예측은 어처구니 없이 빗나갔습니다.
언젠가 컴퓨터가 이길 줄 알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예고도 없이 찾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다음 기회에 인공지능에 대해 좀 더 글을 써볼까 합니다. 오늘은 당시의 충격에만 집중하고자 합니다. 저는 당시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질서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믿었던 직관력도 인공지능의 계산력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것은 도저히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그랬습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르헨트나를 이겼고, 일본이 독일을 이겼습니다. 두 게임 모두 2:1로 역전승으로 이겼습니다. 알파고에게 받은 충격을 축구에서 똑같이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나라도 월드컵 4강에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개최국 버프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후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으니까요.
아르헨티나와 독일 모두 시종일관 공격 일변도였고 볼 점유율도 8:2, 7:3 정도로 높았던 경기였습니다. 골을 넣어도 이번에 처음 시도된 인공지능 판독기를 통해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아 취소되기 일쑤고 골대를 맞추는 불운까지 겹치면서 수비 위주로 버티는 아시아 팀들에게 경기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시 저는 세상의 질서가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축구 한두 경기로 너무 호들갑 떠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시간 지나고 보면 호들갑이었다는 후회를 자주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축구에서 메시가 뛰는 아르헨티나와 독일을 아시아 팀이 이긴다는 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공을 가지고 여러 명이 팀으로 하는 스포츠는 변수들이 많습니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들이 변수에 의해 돌발적으로 발생하니 예상은 항상 빗나가고 그런 불확실성으로 인해 팬들이 열광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행복회로를 돌리기 쉽고 희망고문이 저절로 된다는 것입니다. 약팀이 강팀을 이길 수 있는 것도 스포츠의 매력입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월드컵에서 아시아팀이 아르헨티나와 독일을 연이어서 이긴다는 것은 아무리 스포츠라도 불가능하다고 샹각했습니다. 4년 전에 대한민국이 독일을 이긴 것과 같이 가끔 그런 일도 있으려니 할 수는 있지만 이렇게 두 게임이나 넘어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지고 보니 역시 영원한 것은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 현재 세계의 질서는 미국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과연 영원할 수 있을까요? 패권국이 바뀔 때의 혼란스러움을 과연 우리는 감당할 수 있을까요?
전쟁을 예로 들면, 각종 최첨단 무기를 가진 강대국을 상대로 소총과 대포만 가진 약소국이 전쟁 전체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국지전에서는 잠시 이길 수 있습니다. 약소국이 잘 할 수 있는 게임을 하면 됩니다. 이순신 장군처럼 싸우기 전에 이미 이겨있는 싸움을 하면 되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게임의 규칙 안으로 적을 데려오면 됩니다. 그게 바로 스포츠이고 월드컵인 것 같습니다.
알파고처럼, 그리고 축구처럼 변화는 한 순간에 찾아 오는 것 같습니다. 물론 시간도 오래 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패와 좌절을 맛봐야 했지만 결국 변화는 반드시 일어나며 알파고와 축구처럼 갑자기 우리 곁에 찾아 옵니다.
우리는 어떤 변화든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꾸준히 해야 합니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면 감당할 수는 있어야 합니다.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움에 우왕좌왕하면 도태됩니다.
그래서 저는 저에게 다시 묻습니다. 오늘 우리나라가 수아레즈가 뛰는 우르과이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이 했던 것 처럼 우리도 기적을 만들 수 있을까? 여전히 저는 희망은 갖되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저는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습니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이해가 되지 않아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도태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나저나 독일과 일본전에 대해 묻는 딸 아이에게 “에이~ 아무리 그래도 일본이 독일을 어떻게 이겨. 말도 안돼.”라고 호언장담했었는데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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