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의 둔촌 주공아파트 분양 공고가 발표됐습니다. 단지의 정식 명칭은 '둔촌 올림픽파크 포레온'이라고 합니다. 강동, 송파는 제가 태어나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동네이고 아직 집을 사지 못해 몇 년 동안 관심을 갖고 지켜봐 왔는데 드디어 발표를 했습니다. 그 동안 재건축 인허가, 건설사, 조합 등에서 수년간 잡음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건국 이래 최대 재건축 규모이고 엄청난 입지 조건 등에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습니다. 최대 35층까지 짓는다고 하니 분양 물량도 많습니다.
그런데 분양 공고가 나오고 가격을 보니 허탈하고 비참해지기까지 했습니다. 59 제곱미터의 분양가가 10억원이고, 84 제곱미터의 분양가는 13억원입니다. 분양가가 이렇다면 실제로는 20억원까지 갈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공고를 보자마자 포기했습니다. 아니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은 면적이라도 10억원을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9억원을 넘으면 중도금 대출이 나오지 않아 저같은 일반인들은 9억원 미만에만 청약을 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정권이 바뀌면서 12억원으로 기준이 상향 조정 되었더군요. 그래서 59 제곱미터의 분양가가 10억원이 된 것 같습니다. 정권 교체로 인해 제대로 혜택을 받은 것이죠.
올해 전 세계는 인플레이션에 의한 금리 인상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금리가 올라 작년까지 최고치를 기록하던 집값도 폭락 조짐을 보이고 있고, 실제로도 거래 물량이 거의 없어 10억원 하던 아파트가 6억원에 거래되었다는 뉴스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와중에 10억원짜리 분양가에 감히 청약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7% 이상일텐데 6억원에서 8억원 정도의 빚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그렇게나 많을까요? 아직은 모르겠지만 다른 곳은 미분양 사태가 속속 나오고 있지만 이곳은 워낙 관심이 집중된 곳이라 미분양 사태는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우리나라에는 돈이 많은 사람들이 많더군요.
저는 3인 가족 기준 청약 점수가 만점인 64점입니다. 저는 청약을 하면 무조건 당첨되는 줄 알았습니다. 작년에 3번 정도 9억원 아파트에 경험삼아 도전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내와 상의하고 일단 넣고 보자고 결정했고, 당첨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청약점수의 당첨 커트라인이 69점이었습니다. 4인 가족의 청약 점수 만점이 바로 69점이니 저는 경쟁이 안 되는 게임에 들어갔던 것이었습니다. 올해는 집값이 폭락하면서 당첨 가점도 50점대로 떨어졌다고 하니 저는 청약을 넣으면 무조건 집을 살 수 있는 환경은 조성되었습니다. 그런데 분양가를 보면 저는 이번 생에는 집을 살 수 없는 모양입니다. 청약 점수는 높은데 더 높은 사람들이 많고, 돈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니 그야말로 사면초가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한 푼도 받지 않고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집을 살 수가 없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집을 못 샀다고 배가 아파서 그런다고 생각하셔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부모로부터 불법이나 편법 증여 없이 세금 잘 내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은 10년 내에는 집을 살 수 있는 나라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혼하고 사시는 분들 1년에 천만원 적금 붓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아시죠? 만약 요즘 물가를 고려하고 맞벌이를 한다고 치면 아끼고 또 아껴서 1년에 3천만원, 10년에 3억원 정도를 모아 대출 1억원 정도 받고 집을 살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상식적인 사회 아닐까요?
집값이 오르는 것은 그 집주인이 똑똑하고 뛰어나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요인으로 상승하는 것이니 상승에 대한 불로소득을 세금으로 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얘기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빨갱이'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마치 자기들이 잘해서 돈을 번 것인 양 행세합니다. 집값이 언제까지 오를까요? 이미 폭락은 시작되었지만 분양 공고를 보면 아직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사실 집이란 것도 감가상각으로 시간이 가면 값이 내려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오래된 집은 구조적 안전 면에서도 값을 높게 쳐주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집값은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다같이 오릅니다. 국가와 시장에 돈이 많은 것입니다. 현금들이 많으니 수요가 경쟁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 고금리 시대는 앞으로도 수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국에는 집값이 지금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의 예측은 언제나 틀렸었고, 그래서 아직 집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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