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글 쓰는 엔지니어] 취미로 수능 수학을 푸는 이유

본문

반응형

 

어릴 때부터 수학을 참 좋아했습니다. 아마 성격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했지만 뭔가에 한 번 빠지면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 말입니다. 친구들과 재미로 하던 야구도 그랬고, 바둑도 그랬고, 프로그램 언어 공부도 그랬습니다. 재미가 붙으면 잠을 자는 것보다 더 재미있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겐 수학이 그랬습니다.
 
학창시절 저의 꿈은 수학 선생님이었습니다. 한 번도 다른 꿈을 꿔 본 적이 없었고 당연히 저는 수학 선생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학으로 밥 먹고 사는 직업이 수학 선생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수학을 공부했다면 대학원과 박사학위까지 받고 연구자의 길을 갔을 수도 있고, 프로그램 언어나 통계학을 공부해서 IT 분야로 진출했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강요로 토목공학과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당시 담임 선생님이 바로 제가 인생에서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이었고 수학 담당 선생님이셨습니다. 저에게는 롤 모델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수학 선생님을 꿈꾸고 있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수학 점수로 전교에서 1, 2등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학력고사를 치르기 위한 진학 상담 때 어머니와 함께 선생님과 상담을 시작하자마자 어머니께서 학교는 모르겠고 토목과에 넣어 달라고 다짜고짜 요구하셨습니다. 저와는 단 한 마디도 상의 없이 저의 진로는 그 자리에서 그렇게 결정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토목이라는 단어를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습니다. 

 

반응형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어머니께서는 건설 노무자, 소위 노가다라 불리는 일을 하고 계셨던 아버지와 상의해서 결정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토목과 나오면 돈을 잘 번다고 하더라"는 게 이유였습니다. 당시 저는 감히 부모님에게 대들지 못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었고 동시에 가장 큰 인생의 전환점이었습니다.
 
물론 중간에 다시 수학 선생님을 꿈 꿀 수도 있었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10개월 정도 남는 시간에 수능을 준비해볼까 하는 고민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쉽지 않았던 것이 당시 저희 집의 형편이었습니다. 공부한다고 또 부모님께 손을 빌려야 하니 쉽지 않아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습니다. 건설 현장에서도 하고, 인쇄소에서 책을 나르는 일도 해보고, 예술의 전당에서도 일했습니다. 
 
그러던 중 IMF가 터졌습니다. 돈을 모아 학원비를 벌려고 했었는데 IMF 사태로 온 나라가 혼란스러웠습니다. 일찍 복학했던 친구들에게 학교의 상황을 전해 들었고 저도 일단 복학부터 하고 다시 생각하자고 마음 먹고 학교에서 직접 겪어 보니 IMF가 실감이 많이 났습니다. 군대 가기 전 술을 사주던 선배들이 취직했다가 회사가 없어지거나 구조조정을 당해서 학교로 돌아와 대학원을 다니거나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참담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사회로 나가는 것이 가능한지 잘 모르겠고, 하물며 수능을 다시 준비한다는 게 너무 철 없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마음 먹었습니다. "토목공학을 한 번 공부해보자. 공부해보고 도저히 맞지 않으면 미련 없이 수학으로 돌아가자."고 말입니다. 그렇게 복학한 첫 학기인 3학년 1학기에서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결심하고 잠을 안 자고 해보니 되더군요. 남들 3년 공부할 것을 저는 한 학기만에 공부하려니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어쨌든 도저히 못할 공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수학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다시는 꿈꾸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저를 잘 봐주셨던 교수님 한 분이 대학원에 오라고 하셨는데 집안 형편이 더 안 좋아져서 저는 얼른 집안의 가장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 부분도 정말 아쉬운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뭔가 되겠다고 생각한 장면에서 항상 현실의 벽에 부딪혔습니다. 그 벽을 깨야 하는데, 그 높은 장벽을 넘어서야 하는데 그것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IMF 여파로 취직도 힘든 시기에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쳤던 것 같습니다. "열심히 성실히만 살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이렇게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오면서도 저의 마음 한 구석에는 수학의 꿈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수학 공식도 거의 생각이 안 나고 어떻게 풀었었는지 도저히 기억이 안 나지만 수학 문제를 풀 때의 제 모습이 어땠는지 저는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수학 문제를 풀 때 힘들고 괴로워야 하는데 저는 너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문제 어디 또 없나 하며 돌아디니고 친구들 문제집을 빌리거나 해서 닥치는 대로 문제를 풀었습니다. 어렵고 새로운 문제를 만날 때 몸에서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이 마구마구 분출되었던 것 같습니다. 수학 문제를 풀며 세상 즐거워하던 제가 너무 그립습니다. 
 
그래서 수능 문제를 풀기로 했습니다. 저에게 꿈이었던 수학을 선물로 주려고 합니다. 물론 몇 문제 풀어보니 이제는 즐겁지 않고 괴롭습니다. 어떻게 풀었는지 도저히 기억이 안 납니다. 저는 스트레스 받지 않고 오픈북으로 풀기로 했습니다. 제가 공부하던 당시에 없던 인터넷이 있으니 정답 해설은 보지 않고 관련 공식만 검색해서 푸는 것은 제가 직접 해보기로 했습니다. 하루에 한 두문제씩 한두달이면 될 것 같습니다. 문제를 푸는 내내 예전에는 어떻게 풀었었는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문제를 풀며 즐거워하던 10대 시절의 제가 문득 떠오를 때마다 혼자서 웃곤 합니다.
 
저 자신에게 선물을 주며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 동안 고생 많았다. 먹고 사느라, 식구들 먹여 살리느라 지금도 고생이 많다. 하고 싶은 일 못하고 적성에 맞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도 버텨내느라 정말 고생이 많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 힘들면 잠깐 쉬어도 돼."
 

 

728x90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