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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엔지니어] 어려운 것을 쉽게 설명하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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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는 김상욱 교수님을 참 좋아합니다. 과학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해박한 지식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 주시는 것을 보며 감탄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양자역학을 누가 들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고 부드럽게 설명하시는 모습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최근에는 그런 분들을 ‘커뮤니케이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김상욱 교수님은 ‘과학 커뮤니케이터’ 정도로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려운 개념들을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주시는 분들이 최근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김상욱 교수님을 TV에서 보면 말씀도 잘 하시고, 그분의 책을 읽어 보면 글도 잘 쓰시니 앞으로도 다방면에서 활동하실 것 같습니다.

 

의사나 변호사처럼 대우와 인식은 그리 좋지 못하지만 엔지니어들도 나름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입니다.이 때문에 가끔 웹상에서 회원가입할 때 직업을 회사원으로 적을지, 전문직으로 적을지 순간 고민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 엔지니어들도 우리만의 영역이 있고, 우리만의 언어인 전문 용어가 있고, 진입 장벽이 높은 편입니다. 그래서 ‘쉽게 설명하는 것’에 대한 요구를 회사 안팎에서 많이 경험하곤 합니다. 엔지니어가 아닌 사람들을 만나고 설득할 일이 종종 있을 때마다 답답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돌아서서 소주 한 잔 하며 말귀를 못 알아 듣는 사람들을 탓하지만, 결국 ‘쉽게 설명하는 능력’의 부족함을 자책하는 것입니다.

 

사실 엔지니어들끼리의 논쟁은 매우 단순합니다. 기술적인 부분으로는 싸울 일이 없습니다. 특히 이미 검증된 이론들과 공식들에 대해서 감히 문제 제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이미 답은 나와 있으나 경제적인 관점에서 충돌이 발생하기도 하고, 수준 차이로 누구는 답을 알고 누구는 모르기도 합니다. 대부분 돈 때문에 싸울 때가 많습니다. 어떤 공법을 적용해도 가능한 상황에서 여러 공법들의 장단점과 비용을 비교한 후 가장 저렴한 공법을 적용할지, 아니면 좀 더 돈이 들어도 안전하고 내구성이 좋은 것을 선택할지에 대해 회의가 길어지기도 합니다. 어쨌든 엔지니어들 끼리의 논쟁은 어찌보면 허탈하고 시시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엔지니어가 아닌 회사 상사나 공무원 또는 금융권 종사자들과 대화할 때는 그 답이라는 것을 아무리 쉽게 설명해줘도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다. 그분들 대다수가 의사결정권자라는게 더 큰 문제입니다. 따라서 설득이 안 되면 내 자신이 능력이 부족한 엔지니어가 되어 버리는 경험들을 많이 겪게 됩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이런 능력을 타고난 사람들이 따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엔지니어링 스킬은 저보다 부족한데 말은 청산유수라서 말로 사람을 홀리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습니다. 때로는 저보다 부족한 능력을 깔보기도 했지만, 제가 갖지 못한 능력을 가진 것에 대해서는 한없이 부럽기만 했습니다. 이런 능력은 타고나야 하는 것이고 기를 수는 없는 것인지 항상 궁금했습니다.

 

여름에 태풍이 한 차례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간 후, 전기 엔지니어인 지인 회사의 문과 출신 상사가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태양광 구조물의 설계 풍속 기준이30 m/s 인데 이번 태풍의 풍속이 50 m/s 라던데 왜 안 무너진 건지 설명해봐.” 말투가 모르는 것을 묻는다기 보다 왜 무너지지 않느냐고 따지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인이 저에게 다급하게 도움을 청하며 전화로 묻길래 저도 너무 당황스러워서 잠시 고민하다가 이렇게 답해줬습니다. “풍속은 10분간(또는 단위 시간당) 평균값으로 측정합니다. 그리고 풍하중은 기본적으로 주파수를 가진 파동입니다. 불다가 안 불다가 줄었다가 강해졌다가 하는 거죠. 그러니 풍하중의 지속시간이 중요한 것이지 단순히 숫자 하나로 표현해서 더 크면 무너지고 그러지 않습니다. 만약 태풍이 24시간 정도 한반도에 머물렀다면 건물이고 태양광이고 많이 무너졌을 겁니다. 쉽게 지진을 생각하면 됩니다. 지진파도 파동입니다. 규모 7짜리 지진 났다고 모든 건물이 다 무너지지 않습니다. 같은 이치입니다. 똑같은 태풍에 강도가 같은 구조물이라도 유독 한 곳에만 집중적으로 바람이 풍하중으로 작용하면 무너지는 것이고, 주변 건물에 의해 방해를 받거나 해서 파동의 영향이 적어 높은 풍속이 오랜 시간 가해지지 않으면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하중의 지속시간이 중요합니다. 파동은 아니지만 더 쉽게 이해하려면 몸무게 100 kg도 안되는 역도 선수가 잠시 200 kg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못 들고 있죠. 하중을 버티는 구조물의 강도는 그렇게 이해하시면 쉽습니다.”

 

그렇게 얘기해주고 나서 전화를 끊고 보니 저도 언젠가부터 예전보다 ‘쉽게 설명하는 능력’이 조금 나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일하고 있는 곳에서는 한 층에 100여명 중 토목 엔지니어는 저 혼자입니다.매일 함께 일하는 분들이 모두 경제, 경영, 법, 세무, 회계 등 문과 출신들이다 보니 너무 당연한 것을 황당하게 물어올 때마다 대응하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쉽게 설명하는 능력’이 좋아진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설명하는 능력’은 타고나지 않았어도 노력하면 어느정도는 기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저를 보면 금방 답이 나옵니다. 엔지니어라는 자존심으로 말만 잘하고 능력없는 사람은 엔지니어가 아니라고까지 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불킥을 1년 내내 해도 모자를 정도로 후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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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는 잘 모르는 분들께 설명을 잘하는 능력도 엔지니어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회사 내에서 회의를 하거나, 프레젠테이션을 하거나, 발주처나 고객을 설득하거나 할 때 ‘쉽게 설명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 있습니다. 일은 엔지니어가 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돈을 주는 분들은 거의 모두 엔지니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회사 내에서도 엔지니어가 아닌 분들과 많아 부딪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기술직들과 비기술직, 생산직과 영업직, 현장직과 관리직 등으로 나눠 언쟁과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 다반사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회사 내에서 사업부나 팀 간의 분위기가 매우 배타적인 곳이 많습니다.원팀 정신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자고 술을 진탕 마시고 소리 질러봐도 소용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입장을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전문직 종사자들이 좀 더 벽을 허물고 다가가는 노력을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의사, 변호사, 엔지니어 등 전문직들이 먼저 다가가서 쉽게 설명해야지,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모른다고 알기 위해 공부를 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노력을 등한시 한 것은 아닌지 반성하며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이제 엔지니어 업계에서도 ‘공학 커뮤니케이터’가 활동할 날이 머지 않아 오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예능과 교양이 뒤섞인 TV 프로그램 ‘알쓸신잡’처럼 토목, 건축, 기계, 전기 엔지니어들이 모여 수다를 떨다 보면 작품 하나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에겐 언젠가 도전해보고 싶은 과제이기도 합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사회 초년생 시절 엔지니어의 첫발을 내딛었을 때 제가 만든 기술 보고서를 보고 당시 과장님이 보시고 저에게 했던 말이 있습니다. “보고서는 초등학생이 봐도 이해할 수 있게 써야 한다.”라고 말입니다. 당시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누가 봐도 알기 쉽게 써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도 “과장님 이 기술 보고서는 초등학생이 읽으면 안됩니다.”라고 생각합니다. 기술 보고서는 그야말로 자격과 능력이 되는 사람들만이 읽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취지에는 공감합니다. 어렵게 설명해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거나 상대방을 주눅들게 해야 본인이 뭔가 대단하다고 착각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아무리 엔지니어들끼리 보는 자료라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마존의 CEO인 제프 베조스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Cleverness is a gift, kindness is a choice.” 우리말로 번역하면 명석함은 선물이고, 친절함은 선택이라는 말입니다. 즉, 똑똑한 것은 타고난 것이지만, 남에게 친절한 것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더 와닿게 의역하면, 머리 좀 좋다고 으스대지 말고, 친절한 것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니 다른 사람들에게 무조건 친절하게 대하라는 뜻입니다. 정말 멋진 표현입니다. 우리나라 식의 표현으로 고치면 겸손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는 것을 미국에서는 저렇게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 생활은 이리저리 재지말고 일단 먼저 친절하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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