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10명 남짓의 작은 설계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입니다. 몇 명 되지도 않은 곳이라도 여러 인간 군상들이 모여 사는 엄연한 사회였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상사 중 두 명이 양 극단의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그 두 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 분은 부장님이었는데 업무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났습니다. 그분과 일하면 재작업이 없이 깔끔했고 신입이 배워야할 점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인성이 그야말로 쓰레기였습니다. 요즘 표현으로 사내 갑질과 괴롭힘도 심했지만 무엇보다 직원들에게 돈을 빌려 갚지 않기로 유명했습니다. 주식을 하는 것인지 도박을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는 사람들은 모조리 돈을 빌린 뒤 갚지 않았습니다. 저도 아무것도 모른 채 빌려줬다가 2년동안 매달려서 간신히 받아낸 적이 있었습니다.
다른 한 분은 차장님이었는데 업무 능력이 형편 없었습니다. 그 분과 함께 프로젝트를 하면 매일 밤을 새워야 하고, 했던 일을 다시 하거나 틀려서 바로 잡는 데에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어떤 일이든 한 번에 깔끔하게 끝나는 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외부에 회의를 다녀와서 저에게 전달을 해준 내용이 확인해 보면 완전히 반대로 전달해준 적도 많았습니다. 일할 때마다 답답해서 고구마를 100개 동시에 먹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인성이 완벽했습니다. 직원들에게 너무 잘해줬고 우리가 힘들 때마다 술 한잔 사주며 친형처럼 잘 대해줬습니다. 항상 기대고 의지할 수 있어서 좋았고 나이 차이가 많아도 때론 형처럼, 때론 친구처럼 행복하게 잘 지냈습니다.
이런 분들이 사무실에 같이 계셨으니 사무실 분위기는 신기하게도 균형이 맞춰집니다. 업무가 잘못되면 쓰레기 부장님이 나서서 해결해주고, 야근에 힘들어하고 지쳤을 때는 천사표 차장님과 술 한잔 하면서 풀 수 있었으니까요. 그때 직원들끼리 한 잔 하면서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만약 직장에 딱 저 두 사람만 있다고 하면 넌 누구랑 일하고 싶냐?” 모두들 대답을 바로 하지 못했습니다. 쓰레기 인성과 형편없는 업무 능력 중 차악을 고르는 문제이니 쉽지만은 않았습니다.다른 얘기하면서 고민 좀 하다가 다시 질문을 꺼내서 얘기를 나눠보니 모두가 한 목소리로 부장님을 골랐습니다. 인성은 쓰레기여도 이제 막 사회 생활을 시작한 신입 엔지니어들이었으니 일단 일부터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안타깝지만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그분들보다 나이가 더 많아진 지금의 저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 봤습니다. 저는 그때와 완전히 다른 답을 내놨습니다. 지금의 저보다 상사든 부하 직원이든 일은 좀 못해도 인성이 제대로 된 사람과 일하고 싶습니다.이제 경력이 20년이 넘고 보니 일을 못하면, 제가 하면 됩니다. 까짓거 남들보다 일 많이 할 팔자를 타고났는지 저는 일이 많아서 불만인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나름 잘한다고 인정은 받고 살고 있으니 일은 잘하지만 인성이 쓰레기인 사람은 필요 없습니다. 더 배울 수 있으면 좋지만 못된 성격을 받아줘 가면서 참고 배울 나이는 이미 지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요즘 사회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아서 인성이 안 좋으면 일을 잘해도 어차피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이제는 쓰레기 인성은 차악이 아닌 최악이고 절대악으로 치부됩니다.
결국 타고난 성향은 바꾸기 힘들 겁니다. 하지만 친절, 예의, 배려는 자신이 하기로 마음 먹고 선택해서 조금만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간단한 능력입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세상입니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면, 친절, 예의, 배려가 중요하지 않았던 세상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지구에 인류가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항상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그렇게 잔소리를 했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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