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10월에 딸아이와 함께 서울 둘레길을 완주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완주 인증서도 받았습니다. 우리 가족만의 특별한 추억을 남길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건강해져서 좋았고, 오랫동안 살면서도 몰랐던 서울의 새로운 모습을 많이 알게 되어 더욱 좋았습니다. 이미 서울 둘레길과 관련하여 후기를 자세히 쓴 적이 있어서 똑 같은 내용을 담지는 않겠습니다. 간략하게만 정리하면, 서울 둘레길의 공식 총 거리는157Km입니다. 제가 딸 아이와 걸으며 잰 거리는185Km였습니다. 3년 동안 26번 나눠서 걸었고, 둘레길로 이동하고 집으로 가는 시간과 점심 먹는 시간까지 모두 합쳐서 162시간, 285Km를 걸었습니다.
딸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때 시작했는데 6학년이 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터지기 전에 시작했고 코로나로 어디 여행도 마음 편히 못 갈 때 우리에겐 서울 둘레길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힘들어하지 않도록 최대한 아이에게 맞춰주려고 노력했습니다. 1시간밖에 걷지 않았는데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면 조금 설득해보다가 안 되면 주저하지 않고 집으로 갔습니다. 오롯이 딸 아이의 의지와 컨디션에 맞춰줬습니다. 그랬더니 마지막엔 본인도 중학교 가기 전에 얼른 끝내기로 마음 먹고는 산길을 하루 15Km 정도씩 걸으며 강행군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서울 둘레길을 걷게 된 계기가 몇 가지 있었습니다. 오늘은 서울 둘레길을 걷게 된 계기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한양도성길을 완주하고 다른 도전 과제를 찾고 있던 중에 우연히 아차산에 가족끼리 주말에 놀러갔다가 서울 둘레길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딸 아이는 그때 아차산을 가지 말았어야 했다며 후회를 많이 하던데, 그래도 완주 인증서는 매우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습니다.
둘째, 딸 아이에게 정기적인 운동이 필요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2차 성징이 시작될 조짐이 보여 성장을 늦추는 주사를 매달 맞고 있었습니다. 2년간 매월 주사를 맞아야 했는데, 그 주사의 단점이 키가 크지 않는다는 것이어서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뭔가 운동을 해야만 했습니다. 딸 아이와 저는 그냥 아무 재미도 없는 하천길 산책이나 뜀박질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말 그대로 운동을 위한 운동은 재미가 없으니 지속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에게 한양도성길과 서울 둘레길이 딱이었습니다. 크지는 않지만 음악을 틀고 산길이나 하천길을 함께 걷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셋째, 딸 아이와 와이프를 분리시켜야 했습니다. 와이프는 잔소리가 너무 심해서 아이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와이프는 본인이 잔소리가 많은지를 본인만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정기적으로 분리시켜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 와이프와 저는 결혼 전부터 아이의 교육관이 같았습니다. 하지만 여자들은 시간이 지나면 주변에서 말들이 오가며 공포 마케팅의 먹기 좋은 먹잇감이 되어 버리더군요. 제가 공포 마케팅이라 표현한 것은 바로 사교육입니다. 우리 애가 이러다가 뒤쳐지는 것은 아닌지, 공부 못해서 왕따가 되는 것은 아닌지, 남들은 학원을 10개씩 보내는데 서너 개라도 다니게 해야 되는 것은 아닌지 등등 레파토리가 뻔합니다. 그렇게 해서 공부를 잘하면 이 세상 사람들 다 공부를 잘 할 겁니다. 교육관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어쨌든 아이가 눈에 안 보이니 와이프도 잔소리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습니다.
넷째, 딸 아이에게 금지하거나 제한적으로만 먹이던 것들을 다 먹이고 싶었습니다. 컵라면이나 사이다가 몸에 결코 좋다고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와이프는 마치 아이가 먹으면 독약을 먹는 것처럼 호들갑을 떱니다. 그렇게 못 먹게 하면 아이들에게 집착과 의존 성향이 더욱 강해집니다. 많이 먹이면 문제가 되겠지만 본인이 먹고 싶을 때 먹게 해주면 알아서 절제하는 법을 배웁니다. 저와 함께 있으면 뭐든지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으니 엄마랑 있을 때 참을 수 있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니 저와 단 둘이 있을 때도 사준다고 해도 안 먹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집착과 의존 성향이 생기지 않도록 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서울 둘레길을 걸을 때마다 보온병을 미리 준비해서 산 속에서 컵라면과 사이다를 함께 먹었습니다. 산에서 내려와 집에 갈 때는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저녁에 딸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삼겹살도 먹었습니다. 그 정도 보상은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딸아이에겐 그럴 자격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게임을 절대로 안 할 수가 있을까요? 못하게 하니까 자꾸만 더 빠져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게임기 사주면서 실컷 하라고 내버려 둡니다. 대신 본인이 할 일은 반드시 해놓고 하라고만 합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게임만 합니다. 그러다가 요즘은 게임을 하지 않습니다. 못하게 한 적도 없는데도 말입니다. 재미가 없답니다.
다섯째, 딸 아이에게 뭔가 시작하면 반드시 끝을 내는 습관을 길러주고, 오랜 시간 견뎌야 하는 끈기와 인내심도 길러주고 싶었고, 성취감을 맛보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함부로 뭔가를 시작해서 중도 포기하는 습관이 제일 안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중간에 포기할 수 있는 용기도 중요하지만 일단 어떤 식으로든 끝을 보도록 습관을 길러주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생각없이 무턱대고 시작했더라도 끝까지 할 수 있게 되고, 그냥 대책없이 시작부터 하지 않고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전략적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끝을 내야 하니 시작이 어려워지고, 어렵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의식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끝내고 난 뒤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받을 때의 기쁨과 성취감을 느껴 보면 다른 목표를 알아서 스스로 찾게 됩니다.
서울 둘레길을 걷게 된 계기를 다 쓰고 한 번 쓱 훑어 보니 모두 딸 아이를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하는 생각, 행동, 말, 글들의 모든 방향은 딸 아이를 향하고 있나 봅니다. 이게 바로 부모의 헌신이겠죠. 알아주길 바라지 않습니다. 조직 내에서 리더가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베풀되 바라지 않는다.” 저의 신념입니다. 리더로서, 그리고 부모로서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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