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와이프랑 딸아이와 함께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을 보고 왔습니다. 한 마디로 경이롭다는 말 밖에는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역대급 명작이었습니다. 러닝 타임이 3시간이 넘다 보니 저녁 8시 반에 영화를 봤는데 12시가 넘어서야 집에 왔습니다. 1편의 감동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서 좀 더 비싸지만 3D로 봤습니다. 이런 영화를 2D로 보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영화는 몰라도 아바타는 반드시 3D로 봐야 감동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보는 내내 영상미에 입이 떡 벌어졌고, 1편보다 더 넓어진 세계관과 자연을 거스르는 인간의 탐욕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사실 행성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환경의 재앙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자원 개발을 위해서라면 서슴치 않고 뭐든지 파괴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잔인하게 사냥하는 그들의 모습이 현재의 우리와 똑같습니다. 행성만 지구에서 판도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1편의 배경은 모두 숲이고 열대 우림이었습니다. 시작하자마자 행성의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에이와 신의 거대 나무들의 스케일에 압도 당했었는데, 2편은 시작하자마자 일단 숲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파괴해버리면서 시작합니다. 1편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라는 것을 알리면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깨알같이 곳곳에 1편에서 감탄했던 장면들을 다시 가져와 보여주니 너무 반갑고 좋았습니다. 그리고 두 주인공인 제이크 설리와 네이티리는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룹니다. 파괴된 숲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만 했고 모든 게 낯선 바다 부족의 일원이 됩니다. 결국 1편의 주요 키워드가 숲, 사랑이었다면, 2편의 주요 키워드는 가족, 바다, 성장 스토리입니다.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는 것에 대한 스토리가 배경이 되고 그 속에서 숲에서 사랑을 했던 두 사람, 아니 두 나비족이 가족을 이루고, 바다에서 적응하며, 아이들이 성장하는 얘기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저도 토목 설계를 오랫동안 해봐서 컴퓨터 그래픽에 대해 듣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제가 대학교 1학년 때인 1993년에 컴퓨터 동아리에 가입했었는데, 당시 저는 AutoCAD로, 한 선배는 3D Max라는 프로그램으로 교내 전시회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선배가 저에게 "3D Max로 구현하기 가장 어려운 게 뭔지 알아?"라고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모르겠다고 했더니 선배는 사람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그래픽 프로그램의 기술로는 인체를 섬세하게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기술이 점점 발전해서 토이스토리나 픽사의 애니메이션들이 점점 섬세하게 표현하기 시작하자, 이제는 불가능의 영역이 '물'이었습니다. 물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하는 것에는 많은 물리적 엔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겨울왕국2가 개봉하면서 기술은 또 한 번 진일보했습니다. 물과 바다의 움직임을 너무나 훌륭하게 묘사해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애니메이션의 영역이었습니다. 아바타는 제목처럼 배우의 연기도 아바타처럼 합니다. 온 몸에 센서를 붙이고 아무것도 없는 스튜디오에서 연기하면 컴퓨터에서 인물들의 캐릭터에 배경을 입혀 만드는 방식입니다. 제작 방법은 1편에서 이미 공개된 장면들이 많아 잘 알고 있었습니다. 2편에서 새롭게 보여준 바닷속의 다양한 생명체들의 모습과 물결의 흐름, 그리고 캐릭터의 몸에 묻은 물과 뚝뚝 떨어지는 물들까지 모든 것이 완벽 그 자체였습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어디까지가 실사이고, 어디까지가 CG인지 경계를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컴퓨터로 이렇게까지 자연스럽게 구현했는지 알 수가 없고, 보는 내내 '경이롭다'는 말만 떠올랐습니다.
영화가 영상 예술이라는 장르의 기초에 충실했고 완벽하게 부합했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와 세계관도 나무랄 것 없고, 배우들의 연기들도 너무 훌륭한데, CG의 영상미가 스토리, 세계관, 연기 등을 모두 압도해버리니 보는 내내 감탄만 하고 나오게 됩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아바타 1편으로 3D 기술을 선보인 지 벌써 10년이 넘었는데 아바타를 뛰어넘거나 최소한 견주어 비교할 만한 작품은 아직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바타2의 손익분기점이 2조원이라고 합니다. 1초당 제작비가 2억원 가량 들었다는 후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시도조차 못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기술은 다 갖춰졌는데 상용화가 안 된 것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린 이런 기술이 있는지조차 몰랐다는 게 더 놀랍습니다. 돈이 많이 들지만 이런 기술이 있긴 하다는 소식을 다큐멘터리나 뉴스에서도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이 제임스 카메론이니까 가능한 것 같습니다. 엄청난 제작비를 끌어 모을 수 있는 감독이고, 지금까지 터미네이터와 타이타닉으로 이미 흥행과 스토리텔링에 대한 검증이 끝났으니 하고 싶은 얘기를 돈 걱정 안 하고 마음껏 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저는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감독은 좋은 쪽으로 '미친 사람' 같습니다. 완벽에 대한 강박증이 심해서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의 영상미가 충격적입니다. 영상미가 뛰어나면 스토리라도 빈약하던가, 이런 세계관이라면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의 스핀오프 드라마로 100부작 이상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영상을 만드는 기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전문성도 남달라 보입니다. 뉴스를 보면 앞으로 3, 4, 5편이 나온다던데 도대체 이 사람은 우리를 어디까지 이끌고 갈 작정인지 모르겠습니다. "너희들은 가만히 앉아만 있어. 내가 가자는 데로만 가면 돼." 그런데 막상 따라 가보면 좋은, 이런 느낌입니다.
영화 한 편 보고 끝도 없이 할 얘기가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앞으로 며칠 동안 어제 느낀 감동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주변에 신나게 떠들 것 같습니다. 만약 누군가 이런 영화 또 만들어 줄 테니 앞으로 10년 동안 아무 영화도 보지 않고 기다릴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저는 기꺼이 기다리겠다고 답하겠습니다. 영화의 영상미가 보여줄 수 있는 '끝판왕' 영화이니 안 보셨으면 3D로 꼭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영화를 2D로 본다는 것은 영화를 눈이 아닌 소리만 듣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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