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영화를 참 좋아합니다. 어릴 때부터 주말의 명화를 보면서 자랐고, 커서는 비디오를 빌려 쌓아 놓고 몰아서 봤으며, 지금은 극장에 가거나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로 영화를 즐겨 봅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예전에는 개봉하는 거의 모든 영화를 봤었는데 이제는 그럴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좋은 영화라고 생각되는 영화를 선별해서 본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좋은 영화인데도 놓치는 영화가 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에서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제가 워낙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와이프와 딸 아이도 덩달아 좋아하게 됐습니다. 와이프와 연애할 때 한동안 둘 다 너무 바빠서 보고싶은 영화들이 밀리면 주말에 몰아서 극장에서 보곤 했습니다. 한 번은 하루에 3개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CGV라는 멀티플렉스여서 상영관이 많았지만 주말에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예매 가능한 상영관만 예매를 했더니 아침, 점심, 저녁에 한 편씩 봐야 했었습니다. 영화를 보러 들어갈 때는 이른 아침이었는데 나오니 깜깜한 밤이었습니다. 중간에 시간이 빌 때는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오락실 가서 시간 때우면서 버텼습니다. 둘 다 피곤해서 녹초가 되어 버려 다시는 하루에 3개는 보지 말자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딸 아이는 처음에는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 극장에 데리고 가니 집중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고 영화라는 낯선 장르에 흥미가 있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아이를 키우다 보니 덩달아 아내와 저는 극장에 가는 일이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갑자기 마블 영화들에 관심을 보이며 전편을 보고 싶다고 해서 당시까지 약 20편 가량을 집에서 보여주고 와이프와 저도 같이 봤습니다. 드디어 영화에 흥미를 붙이더니 급기야 극장까지 먼저 가자고 조르며 영화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이제는 어떤 영화가 며칠에 개봉을 하니까 꼭 예매를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게다가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시간이 남을 때 혼자서 영화를 볼 정도입니다.
집에서든 극장에서든 영화를 많이 보다 보니 무슨 영화를 봤는지, 내용이 어땠는지 기억이 잘 안 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자신의 꿈이 작가라는 말을 듣고 어떻게든 글을 쓰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로 어디 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자 제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영화를 많이 보게 될 텐데 기록을 해 두자. 그리고 작가라면 영화를 그냥 재미로 봐서는 안 되고 글로 써서 남겨야 해. 그러니 영화 노트라는 것을 적어보자. 별점과 한줄 평을 적은 다음에 나중에 꼭 책으로 만들어서 보관하자." 그래서 우리 가족은 영화를 보면 영화 노트를 적습니다. 100편이 되었을 때 책으로 만들어서 집에 보관하고 있고 지금 200편을 향해 적어가고 있습니다. 6학년이 된 지금은 아이가 꿈이 작가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영화 노트를 적는 것에는 적극적입니다. 가끔 본인도 적을 거리가 없을 때는 "아빠 말에 적극 동의한다"라는 식의 아빠 찬스를 쓰기도 하면서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두 사람 모두 처음보다 비협조적이지만 아직까지는 그래도 괜찮습니다. 미뤄놨다가 나중에 한 꺼번에 적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어 기억을 되새기는 데 힘들어하는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어쨌든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우리 가족만의 추억이 될 것이고, 코로나 사태에 우리 가족은 이렇게 버텼다고 남들에게 말해줄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지금을 추억할 때 분명히 우리는 이런 얘기들을 할 것입니다. "코로나 때 뭐했어?" 그럼 두 가지 대답이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에도 난 이건 했어."와 "코로나라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일 것입니다. 둘 중 어떤 대답을 하게 될지 미리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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