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딸은 2023년에 중학생이 됩니다. 글을 쓰는 지금은 2022년 말이고 아직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전입니다. 아직도 아이같고 귀엽기만 해서 중고등학교 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 부모로서 항상 걱정입니다. 과잉보호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저는 최대한 모든 응석을 다 받아주었고 해달라는 것은 다 해줬습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해외생활을 4년간 하면서 아이 인생에서 가장 귀엽고 예쁠 때 자라는 모습을 곁에서 봐주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아이의 유치원 졸업식과 초등학교 입학식도 못가본 것이 아직도 마음에 걸립니다. 매일 해외에서 화상 통화로 한시간씩 놀아준 게 전부여서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주고 싶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목욕도 매일 가만히 세워두고 제가 씻겨줬습니다. 아가 때 아빠 품을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를 잘 따랐고 아빠와 노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껌딱지처럼 딱 붙어서 아빠의 행동과 말투를 따라하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생각하는 방식과 가치관까지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아이의 성향은 유치원 때와는 달리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밖에 나가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것을 더 좋아하고 수학을 좋아하는 엄마와 아빠와는 달리 숫자에는 관심 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그렇다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림을 좋아하거나 피아노를 잘 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와이프가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 싶었는지 영어 학원과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했지만 2년 정도 하더니 코로나로 그마저도 그만두었습니다. 그런 성향은 이제 더 심해져서 웬만해서는 밖에 나가지 않으려고 하고 수학은 쪽지시험 기준으로 반에서 평균 점수 정도 받아오는 것 같습니다. 와이프는 지금 단단히 벼르고 있습니다. 겨울방학에 학원을 보내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본인이 공부하겠다 마음을 먹지도 않았는데 역효과만 날 것 같아서 저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그래도 엄마의 등쌀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다녀야한다는 현실은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딸을 걱정하지 않기로 했고 그 믿음을 굳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진 믿음은 아이가 초등학교2학년이었던 2018년 가을에 하남 검단산에서 보여준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은 그때 검단산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한국에 돌아와 지금의 직장으로 이직한지 얼마 되지 않아 단풍 구경으로 검단산에 간 적이 있습니다. 와이프가 주말에 배드민턴을 치러 가고 바빠서 아이와 둘이 검단산에 가서 단풍 구경 잠깐 하다가 파전과 도토리묵을 먹고 올 작정으로 집을 나섰습니다.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되는 거리라 부담없이 나선 길이었습니다. 그때는 아이도 무슨 생각이었는지 선뜻 같이 가자고 해서 저도 의아했습니다. 주말에는 저도 피곤하니 쉬고 싶었는데 아이가 간다고 하니 기특하기도 하고 파전에 막거리 생각도 좀 나고 해서 겸사겸사 갔습니다. 절대로 무리할 생각은 없었고 20~30분쯤 걷다 보면 단풍 구경 실컷 할 테니 곧바로 내려와서 먹을 생각만 했습니다. 아이도 산 주변은 간 적이 있어도 높이 오르거나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안전을 책임진 제가 무리하게 올라갈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검단산 초입에서 화장실 한 번 다녀와서 오르기 시작했고 단풍이 그야말로 절정이었습니다. 계획대로20~30분 정도 걷다가 쉬면서 단풍 만져보고, 솔방울이나 밤송이도 만져보고, 도토리도 주었다가 다람쥐들에게 던져주고, 예쁘게 사진도 찍어주고 하면서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제 됐으니 내려가자고 했더니 아이가 계속 가보겠다고 하는 겁니다. 속으로 재미있나 보다고 생각하고는 조금만 더 올랐습니다. 오르막길이 계속 되자 힘들어 하길래 저는 또 내려가자고 권했습니다. 아이는 계속 올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위험하다고 했더니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숨이 차서 못 쫒아갈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벌써 중간 지점을 넘어섰을 때 잠시 쉬면서 아이에게 아빠는 괜찮지만 너는 위험하니 내려가자고 다시 설득했는데, 그때 아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 검단산 정상에 올라갈거야. 만약 못 올라가면 앞으로 난 TV도 안 볼 거야.” 아이가 엄마랑 아빠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이 TV였는데 그걸 포기할만큼 본인이 뭔가 목표로 한 것을 처음 봐서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미 충분히 높이 올라왔어. 반드시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돼. 산이라는 건 그냥 오르면서 즐기는 거야.”라고 했지만, “아니야. 오늘은 끝까지 올라갈 거야.”라면서 멈추질 않았습니다. 이 정도면 제가 말리는 것보다 오르는 것을 도와주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정상까지 가면 사발면과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검단산 정상에 가면 음료수와 컵라면 등을 파시는 분이 계셔서 먹고 내려오자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가 많이 좋아하더군요.
그렇게 정상까지 3시간 정도를 올랐습니다. 점심 먹으려고 나선 산행인데 오후 4시가 넘어서 정상에 올랐습니다. 인증샷을 여러 장 찍고는 약속대로 사발면과 아이스크림을 사줬습니다. 둘이서 맛있게 먹으며 내려오는데 아이가 달라 보였습니다. 저는 그때 와이프에게 이런 내용의 카톡을 보냈습니다. “우리 딸 정말 대단하다. 몰랐는데 우리 딸한테 강단이 있어. 아무리 내려가자고 해도 자기는 꼭 정상에 오르겠다고 해서 정상에 올랐어. 만약 못 오르면 앞으로 TV를 보지 않겠대.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혼자서 그렇게 결심을 하더라고. 얘는 그냥 냅두면 알아서 잘 할 것 같아.” 그렇게 산을 내려오니 어둑어둑해졌고 파전과 도토리묵을 먹으면서 아이는 사이다로, 저는 막걸리로 기분 좋게 건배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때 검단산에서 결심했습니다. ‘내 딸을 믿자. 때로는 느리고 답답해도 끝까지 믿고 기다려주자. 이 아이는 그래도 되는 아이다.’라고 말입니다.
아이들의 성향에 따라 자꾸만 잔소리하고 채근해야만 그제서야 움직이는 아이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 아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본인이 증명해 보였습니다. 본인이 설정한 목표를 어떻게든 해내고, 해냈을 때는 자신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내지 못했을 때도 역시 적절한 패널티를 주려고 하는 모습은 저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잔소리해도 할까 말까한데 혼자서 그렇게 결심하고 다짐하다니 놀라웠습니다. 저는 이런 아이라면 믿고 기다려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길을 잃고 헤매거나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물을 때 방향만 알려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언제까지나 딸을 믿고 지켜 볼 생각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좋은 대학 못가고 돈 많이 못 벌면 어떻습니까. 부족해도 행복하게 웃으며 살면 됩니다. 세상 사람들 다 그렇게 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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