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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엔지니어] 이제야 나를 제대로 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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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형제가 없습니다. 외동 아들로 자랐고 외로움에 익숙한 편입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나라의 남아 선호 사상 때문에 어디 가서 형제가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외아들이라고 답하면 누나나 여동생도 없냐고 재질문을 받았습니다. 받아도 너무 많이 받아서 나중에는 누군가 형제에 대해 물으면 '돗떼'라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다들 웃으며 재질문은 안 합니다. 참고로 '돗떼'는 담배 한 개피가 남았을 때를 일컫는 은어로 통용됩니다. 일본어의  'とっておき' (돗떼오키)에서 온 말이고 '소중히 간직해 둠

'이라는 의미입니다. 흡연자들에게 '돗떼'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다시 살아 오셔도 주지 않을 만큼 소중한 것이는 우스갯 소리가 있을 정도입니다. 아무튼 저는 형제 없이 자랐고, 항상 누나 한 명은 있었으면 했습니다. 아마 형제가 있었다면 최소한 외롭지는 않았겠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살다 보니 남보다 못한 형제들이 생각보다 참 많더군요. 그래서 이제는 그런 아쉬움은 없지만 가끔씩 집안 경조사나 부모님 수술비 등 혼자서 경비를 다 감당할 때는 정말 형제 생각이 간절합니다. 와이프만 해도 처남과 처제까지 3명이 매월 회비를 적립해서 그 돈으로 가족 여행 갈 때마다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하면 무조건 최소한 두 명 이상은 낳겠다고 다짐했고 와이프도 아이가 많은 게 좋다고 했는데 결국 또 외동딸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람 일이라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이를 낳고 이듬해 둘째를 임신했지만 유산을 경험한 이후로 다시는 우리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결혼해서 외롭지도 않고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어릴 때 저는 혼자 자랐고 외로움에 익숙한 정도가 아니라 어쩔 때는 외로움을 즐기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남에게 의존해서 살기 보다 자립해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집은 경제적으로 힘든 상태였기 때문에 부모님의 지원을 바라고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남들이 갖고 있는 편견처럼 형제가 없으니 혼자서 부모님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았을 것이라는 것은 저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물론 두 분은 나름의 최선을 다하셨고 많이 부족한 경제적인 능력 안에서는 어떻게든 해주시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곧잘 할 때도 저는 부모님께 손 벌리기 싫어서 학원도 안 다니며 혼자 공부했습니다. 대학교도 부모님의 강요로 제가 원하는 수학과를 선택하지 못했고, 간신히 토목공학에 적응해서 대학원을 가려고 보니 아버지가 저 취직할 때 됐다고 일손을 놓으시더군요. 그래서 대학원도 포기하고 일단 돈 부터 벌자고 사회에 나왔던 탓에 아직도 대학원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있습니다. 물론 직장생활과 병행해서 대학원 생활도 할 수 있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설계 회사를 다니면서 저녁에 대학원 생활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들은 모두 야근하는데 혼자만 학교로 향하는 것은 용기뿐만 아니라 나 혼자 살겠다는 이기심까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가장 역할을 하고 있는 와중에 학비로 지출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었고 숙제와 공부에 쏟는 시간도 역시 부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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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다른 방법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새벽에 영어 공부를 하고 저녁에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덕분에 나름 인정도 받았고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이겠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 항상 남아있습니다. 미련을 갖지 말고 앞만 보고 달리자고 마음 먹고 한동안 잊고 살다가도 잠시 멈춰서 달려온 길을 돌아보면 열심히 살아서 기특한 나 자신과 '도전해볼 걸 그랬나' 하는 후회와 미련들이 함께 보입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면 저는 과연 부모님의 강요를 이겨내고 원래 하고 싶었던 수학 선생님이 될 수 있었을까. 부담스러운 비용과 시간을 모두 투자하고 회사에서 뭐라하든 일단 나부터 챙기자고 대학원에 갈 수 있었을까. 마흔살이 되기 전까지는 항상 이런 고민에 대해 그렇게 했으면 제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진 것 같습니다. 행위에 대한 결과는 그 누구도 모르는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영역이므로 거의 상상에 가깝습니다. 그런 선택을 했어도 학생들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좋은 선생님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대학원 나와 석사 학위만 받았을 뿐 좋은 엔지니어가 되지 못해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요즘 같은 생각을 하게 되면 선택의 기로에 섰던 당시 제가 가진 능력, 주어진 환경,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나 시선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보게 됩니다. 수많은 조건들이 실재하는 상황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또는 과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 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결론적으로는 다시 돌아가도 역시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전략적인 선택과는 거리가 있는 선택임에는 분명합니다만 속성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저의 선택으로 인해 누군가는 항상 행복해 하고 안심했다는 점이 가장 큰 선택의 동기였던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누군가는 분명히 불행해 하고 불안해 할 것이기 때문에 선택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결국 저는 항상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고,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역할만 맡았고, 그래야만 했던 것 같습니다. 선택의 순간에 저를 최우선으로 챙기지 못했다는 아쉬움보다, 주변 사람들이 저로 인해 안심하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얻는 안도감이 저에게는 더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야 저는 제 자신을 제대로 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게 약 50년 정도 걸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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