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전 국민이 카카오톡을 사용합니다. 예로부터 우리는 모두 연결되고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는 문화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뭔가 열풍이 불면 전 국민이 다 같이 동참하는 경향이 매우 강한 것 같습니다. 물론 예전보다는 개인주의적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는 있지만 그래도 카카오톡을 모두가 사용하는 것처럼 이런 집단주의적 성향이 완전히 없어지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과 비교에서 뒤쳐지고 싶지 않은 욕망도 한 몫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천만 명 이상 가입했던 네이트온, 싸이월드, 아이러브스쿨 등과 같이 수년간 인기를 끌다가 사라진 메신저 프로그램들도 있었고, 요즘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으로 지인들 뿐만 아니라 연예인들의 일상을 접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스마트폰 열풍에서 비롯되었으며 어린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모두가 스마트폰으로 카카오톡을 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지인들이 제 프로필을 가끔 살펴보는 모양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프로필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무관심한데 다들 뭐가 그리 궁금한지 지나가다 한 번씩 눌러보는 모양입니다. 저는 거의 10년 이상 동안 카카오톡을 처음 쓸 때부터 프로필 사진을 한 번 정도 바꿨고, 인사말 문구는 단 한번도 바꿔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 프로필을 본 사람들은 딱 두가지를 물어봅니다. “사진 왜 안 바꿔요?”와 “영어로 뭐라고 씌어 있던데 무슨 말이에요?”입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은 왜 바꿔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든 풍경이든 뭔가를 찍어서 예쁘게 편집 후 업로드하는 에너지가 저는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총각이었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싸이월드 시절에도 저는 가입도 안 하고 있다가 친구가 왜 가입 안 하냐고 묻길래 가입을 안 하는 것이 죄냐고 했더니 죄라고 답하더군요. 그래서 가입만 했습니다. 같은 이유로 인스타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입만 하고 사진 몇 장 올려둔 후로는 관리 자체를 안 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고 나름 잘 찍는다고 생각하지만 저에겐 순전히 자기 만족이고 가족들과의 추억으로 간직하려고 핸드폰에 정리해서 담아두는 것 외에는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페이스북에 관심있는 뉴스에 대한 저의 생각을 글로 공유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편입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제가 책을 읽을 때 메모해둔 것들 중 가장 감탄했던 문구를 적어둔 것인데 영국의 극작가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조지 버나드 쇼 (George Bernard Shaw, 1856~1950)의 묘비에 써 있는 글귀입니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이며 우리말로는 다양하게 번역되어 알려져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 보면, “내 언젠가 이 꼴 날 줄 알았다.”,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어영부영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등으로 번역된 것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저는 ‘갈팡질팡’과 ‘우물쭈물’은 뭔가 인생의 선택의 기로에서 선택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에 방점을 찍은 표현들이라고 생각해서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stayed around long enough’의 어감을 가장 잘 살린 표현이 저에게는 ‘어영부영 허송 세월’을 보낸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을 “어영부영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이해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이 표현에 감탄한 이유는 이 글귀가 묘비에 써 있고, 생전에 작가가 직접 묘비명으로 골랐다고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묘지를 찾았을 때 읽게 되는 글귀라는 것인데, 이렇게 유머스럽고, 시대를 초월하며, 인생을 통찰한 표현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시간은 금이다’라던지 ‘시간 낭비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 해.’ 라던지 ‘인생은 짧으니까 부지런해야 돼.’라고 말하면 곧바로 잔소리가 되고 듣는 사람도 한 귀로 흘려 버립니다. 그런데 이미 죽은 누군가가, 그것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인 사람이 묘비에 ‘거 봐. 대충 어영부영 살면 시간만 버리고 이렇게 죽게 되잖아. 그러니까 다들 열심히 살아야 해.’라는 얘기를 멋진 표현으로 남긴 것입니다.
저는 이 표현을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효과적인 잔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조지 버나드 쇼라는 작가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을 것입니다. 물론 그의 인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분명 있습니다만, 그의 묘비명처럼 허송 세월 보내며 대충 살다간 인물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더 열심히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 담겨 있고 유머를 적절히 섞을 줄 아는 여유로움도 가졌습니다. 저는 매장보다 화장을 선호하는 편이라서 묘비는 따로 준비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묘비에 적을 만큼 인생과 세상을 통찰하는 멋진 표현 하나는 남기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아직 생각해 둔 표현이 없는 40대 후반이니 좀 더 책을 읽고 내공을 쌓은 후에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저도 조지 버나드 쇼처럼 반드시 유머를 섞을 생각입니다. 그래야 오래도록, 그리고 널리 회자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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