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인생의 황금기는 언제였을까 생각해봅니다. 아직 오지 않았기를 바라지만 지금까지 50년 가까이 인생을 살면서 개인적으로 최고의 순간을 혼자서 꼽아봤습니다. 몇몇 후보들이 떠오르지만 아무래도 한미글로벌이라는 회사에 어려운 면접 관문을 뚫고 입사한 것과 지금 이곳 대기업에 입사해서 일했던 처음 3년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일하면서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전에는 치열하게 공부하고 일하느라 감정없이 하고 있는 일에만 집중했는데,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엔지니어로서의 실력도 괜찮아지니 시야가 넓어지고 감정도 풍부해졌던 것 같습니다.
먼저 한미글로벌이라는 좋은 회사에 경력직으로 지원해서 3차까지 면접을 볼 때만 해도 저는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고 자신감도 있었지만 입사할 수 있을지 긴가민가 했었습니다. 결국 합격 통보를 받고 리비아와 일본 현장에 차례로 파견되어 해외 현장의 건설사업관리 단장까지 맡으면서 많이 배웠던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하면서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해외 현장 수당까지 합쳐지니 월급도 많았고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척박했던 환경이었지만 나름의 성과도 내서 회사로부터 인정도 받았으니 더욱 행복했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자격증을 취득하여 갖고 있던 프로젝트관리 전문가 PMP를 공부하면서 배운 것들을 실제로 실행에 옮겨보며 전략적인 사고, 리스크 관리, 의사결정의 프로세스화, 이해관계자 관리, 의사소통 채널 관리, 리더십 등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것들을 실제로 적용해보고 시행착오를 겪다 보니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한미글로벌의 김종훈 회장님의 “우리는 천국으로 출근한다”라는 저서가 베스트셀러로 오를 정도였으니 한미글로벌은 구성원들의 복지와 삶의 질 향상에 회사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좋은 회사입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 언젠가 나이 든 저를 다시 받아준다면 흔쾌히 돌아갈 생각도 있을 정도입니다.
두번째는 대기업인 이곳에 입사해서 처음 3년간의 기간입니다. 기간을 특정한 이유는 3년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기간은 완전히 180도 다른 지옥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입사 초기 대기업의 업무 방식, 보직, 타 부서와의 기 싸움, 타 계열사와의 협의 방식, 사내 정치 등 모든 것이 낯설었고 거의 신입사원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를 기술팀장이라는 보직이 주어졌고 엔지니어 3명과 한 팀을 이뤄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뼛속까지 엔지니어다 보니 누구든 엔지니어이기만 하면 지지않을 자신이 있었으므로 다른 것보다 처음 만난 사람들을 어떻게 팀을 이뤄 조화롭게 이끌어갈지 생각해봤습니다. 여기서도 역시 프로젝트관리 전문가 PMP에서 배운 것들을 기본으로 해서 실제로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깨달았던 한미글로벌에서의 경험을 합쳐 좀 더 전략적으로 고민했습니다.
가장 먼저 저는 관찰부터 했습니다. 팀 구성원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고, 어떤 경력을 가졌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이루고 싶어 하는지 등을 꼼꼼하게 관찰했습니다. 최대한 말을 아끼고 관찰한 뒤 궁금한 점들을 묻기 시작했습니다. “대통령의 글쓰기”의 저자인 강원국 작가님이 무언가에 대한 관심은 관찰과 질문부터 시작한다고 하셨던 말을 되새기며 관찰하고 질문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맡은 팀이 내야 할 성과들과 팀의 방향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구성원들에게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구성원들의 각자 성향에 맞게 업무를 배정했으며, 팀의 분위기도 천천히 다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저보다 8~10살 가량 어린 구성원들 세 명에게 처음부터 지금까지 존댓말로 대하고 있습니다. 나이 많다고 제가 갑의 위치를 점할 생각이 없다고 말해줬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처음에는 인간미가 없고 정이 없어 보인다고 불만도 있었지만 적응한 이후로는 만족한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리고 업무를 배정할 때 제가 기대하는 성과물이 무엇이고 어떤 수준을 원하는지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말을 해줬습니다. 저에게 성과물을 제출한 뒤에는 틀리지 않는 한 퀄리티에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다들 경력이 10년 정도 되었으니 자신들이 만든 성과물로 자신들의 팀장이 임원들께 보고했을 때 어떤 피드백을 받게 되는지 가감없이 보여줬습니다.제가 욕먹고 깨지는 것은 괜찮았습니다. 대신 언제든 제가 부재 중이거나 저를 대신해서 이 중에서 누군가가 팀장이 되어도 지장 없도록 수준을 상향 평준화 하고자 했고 저와 동일한 책임감을 모두 다같이 공유함으로써 같은 목소리로 한 팀이 되고자 했습니다. 게다가 제가 공개든 비공개든 회의를 하거나 저만 다른 팀과 술자리가 있으면 거기서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을 모두 공유했습니다.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갑의 위치에 서고 싶지 않았고 한 문제에 대해 각자의 생각은 다를 수 있으나 빠르게 취합되고 정리되면서 우리 팀의 방향성과 성향에 맞게 같은 목소리를 내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즉, “그래 내 생각은 다르지만, 우리 팀이라면 이렇게 하는 것이 맞지.”라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서로 신뢰하고 의지하게 되어 팀워크도 타 팀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좋아서 항상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업무의 성과도 대단했습니다. 저는 업무를 배정만 했는데 자기들끼리 따로 회의도 하고 뭔가 더 조사하고 연구해서 넣으려고 욕심들을 냈고 마치 자신들이 직접 보고하기 위한 자료를 만드는 책임감까지 보였습니다. 가끔 제가 휴가를 가거나 출장으로 부재 중일 때 대신 누군가가 보고를 진행하거나 보고서를 만들어도 제가 없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잘해냈습니다. 제가 없어도 되겠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고, 제가 원래 하려고 했던 목표가 바로 제가 없어도 되는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행복한 팀을 만드는 것이었느니 성공한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제가 정말 듣고 싶은 말이었는데 팀이 구성되고 서너달만에 이뤄낸 성과였습니다.
저의 성공의 비결은 단순합니다. 저는 해외 생활을 하며 리더십에 대해 생각했을 때 단 한마디로 정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베풀되 바라지 않는다.” 그게 진정한 리더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모셨던 평범한 리더들은 모두 “내가 이 정도로 해줬는데 넌 왜 그렇게 못해주느냐”는 불만들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자신은 잘하고 있고, 저 잘 되라고 자신의 것을 나눠주고 베풀어줬는데 기대를 만족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었을 것입니다. 현재의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베풀 때는 확실하게 조건없이 베풀어 주고 끝내야 합니다. 인간 관계에서 뭔가를 바라면 항상 불만이 생기게 되고 서운하거나 아쉬운 감정이 들기 마련입니다. 저는 구성원들이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자신이 현재 팀장의 위치에 있다면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을지 공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공감하는 능력이 팀 워크에서 나오고, 팀 워크는 자신이 충분히 존중 받고, 신뢰 받고 있으며, 언제든 팀에게 의지할 수 있다는 안정감을 느낄 때 비로소 배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저는 조건 없이 베풀어 주고 저는 비바람을 막는 작은 우산 정도의 역할만 하면 구성원들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을 저는 지켜보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과 함께 일했던 3년 동안의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들이 즐겁고 행복해 하는 모습만으로도 저는 이미 행복하더라고요. 그때를 떠올리기만 해도 저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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