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마다 홈트레이닝을 시작한지 100일이 다 되어갑니다. 회식이나 약속이 있는 날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외에는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집에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100일 중 거의 10일 정도 빠진 것 같습니다. 홈트레이닝이라 해서 거창한 운동 장비를 갖추고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일단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하면 심한 거부감이 먼저 들기 때문에 고려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10년 전에는 회사 앞에 헬스장에 장기 등록해서 매일 새벽에 가서 운동하고 출근을 하기도 했었는데 그 후 해외 근무 등으로 운동을 정기적으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핑계지만요.
운동을 안 하고 못하는 이유는 원래 다양합니다. 나이와 코로나 핑계를 대보기도 합니다. 운동을 안 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40대 중반부터 갑자기 살이 찌기 시작했습니다. 그보다 전부터 돌이켜보면, 군대 가기 전에는 58Kg, 제대 후에는 68Kg이었습니다. 결혼 전까지 68Kg을 10년 간 유지했는데 결혼하고 잘 먹었는지 72Kg까지 찌고는 또 다시 약 10년 간 유지했습니다. 179cm의 키에 이 정도면 나름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지난 4년간 7Kg이 쪘습니다. 올해 초에 몸무게를 재보니 79Kg을 찍더군요. 배도 나오고 살이 출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입던 옷들이 안 맞기 시작했습니다. 남자 상의 사이즈로 100과 허리 사이즈 32를 입고 있었는데 입다가 살이 찌니 입지 못하고 더 큰 사이즈로 모든 옷을 교체해야 하는 엄청난 자금 압박이 시작되었습니다.
운동을 하려고 마음은 먹고 있었지만 딱히 돈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운동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제일 싫어하는 한 가지가 바로 운동을 위한 운동이라는 것도 큰 이유입니다. 집 앞 하천길을 따라 걷거나 뛰면 되는데 걷는 것은 지방을 연소시킬 만큼 운동이 되지는 않는 것 같고 뛰는 것은 뛸 때마다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습니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었습니다. 그냥 생각을 비우고 뛰면 되는데 저는 재미없게 그냥 뛰는 게 적성에 맞지 않았습니다. 헬스장에서 뉴스나 음악 들으며 운동하는 것은 괜찮긴 한데 돈이 들고, 밖에서 뛰면 재미가 없고, 참 운동도 안 하면서 핑계는 많습니다. 게다가 핸드폰을 가지고 음악이라도 들으며 뛰려면 주머니에서 출렁거리지 않도록 뭔가 착용 장비가 필요하고 귀에서 이어폰이 떨어지지 않도록 밀착할 수 있는 뭔가를 또 사야 하는 등 뭔가 고민이 많고 복잡하더군요.
운동할 마음이 애초부터 없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별 핑계를 다 만들어서 결국 운동을 안 하게 만드는 힘, 바로 게으름일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돈 들여서 운동 안 하겠다고 헬스장은 가지 않는데 살이 쪄서 옷을 전부 다시 사야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죠. 운동이 재테크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밖에 나가서 뛰기라도 하지 않으면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게 되어 안 되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때 딸 아이가 오래 전부터 갖고 싶어했던 닌텐도 스위치를 사주게 되었습니다. 회사 복지 포인트로 생색 엄청 내면서 사줬습니다. 마치 제가 돈 주고 사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름방학인데 코로나라서 어디 가지도 못하니 에어컨 바람에 운동이나 하라고 사준 것이었고, 처음에는 스포츠만 사주고 가족이 다 같이 닌텐도로 배드민턴, 테니스, 배구, 축구, 볼링 등을 즐겼습니다. 그러다가 딸 아이가 링 피트를 사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링 피트가 정확히 뭔지도 모르고 하고 있던 스포츠가 재미있으니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고 사줬습니다.
링 피트를 사주고 첫날 캐릭터 만들어 해보고 나서 저는 하늘이 노랗고 온 몸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렇게 운동하며 땀을 흘린 것이 얼마만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재미가 있었습니다. 홈트레이닝 게임인데 정말 정교하게 잘 만들었더군요. 제 나이에 맞게 운동 부하를 설정하고 다양한 종류의 운동을 코치 받으며 할 수 있는 롤플레잉 게임입니다. 코스 하나가 5분~15분으로 다양하고 순서대로 해야만 관문을 통과해 최종 보스를 만날 수 있습니다. 중간중간 미션도 있고 레벨이 오르면서 운동 종류도 더 다양해지고 운동복도 바꿀 수 있습니다. 저녁마다 괴물들을 만나 쓰러뜨리려고 땀을 흘립니다. 괴물들과 싸우면서 운동을 하니 목표의식이 뚜렸했고 중간에 멈출 수가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결과는 약 두 달 정도 매일 하니 살이 5Kg이 빠졌습니다. 이젠 74Kg이고 한달째 몸무게는 정체기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이젠 살이 있던 곳에 근육이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온 몸이 쑤시고 아프더니 이젠 괜찮아졌습니다. 때로는 허리를 삐끗해서 한 동안 고생했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했습니다. 온 몸의 땀구멍이 열렸는지 매일 저녁마다 땀을 한 바가지 흘립니다. 운동하고 샤워를 하면 얼마나 시원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제가 혼자 운동 했으면 절대로 몰랐을 다양한 운동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근육 운동, 요가, 스트레칭 등 동작의 종류가 100가지를 훌쩍 넘는 것 같습니다. 어제 레벨이 124까지 올랐습니다. 처음에는 코스 하나만 해도 죽을 것 같더니 이젠 코스 3개 정도는 해야 운동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결국 딸 아이 덕분에 제가 혜택을 가장 크게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운동으로 건강을 되찾으면 머리도 맑아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매일 글을 쓸 용기도 생겼던 것 같습니다. 운동은 시작하기 전에는 왜 중요한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일단 시작만 하면 삶이 달라지는데 시작하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저도 언젠가 저와의 싸움에서 져서 다시 게을러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처럼 그리 쉽게 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와 싸우는 저도 이제 좀 강해졌거든요.
[글 쓰는 엔지니어] 1만 시간의 법칙과 운구기일 (運九技一) (1) | 2023.01.14 |
---|---|
[글 쓰는 엔지니어] 짜장면 가격과 정비례하는 쪼잔함 (0) | 2023.01.13 |
[글 쓰는 엔지니어] 동의어들을 묶어서 같이 외우면 안 되는 이유 (0) | 2023.01.11 |
[글 쓰는 엔지니어] 태양광에 대한 오해와 가짜 뉴스, 그리고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 (0) | 2023.01.10 |
[글 쓰는 엔지니어] 태양광에 대한 오해를 풀기 전에 이해부터 합시다 (0) | 2023.01.09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