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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엔지니어] 짜장면 가격과 정비례하는 쪼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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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짜장면입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음식 하나를 고르라면 저는 주저없이 짜장면을 꼽습니다. 오죽했으면 중국집 딸이랑 결혼하는 게 소원이었을 정도였습니다. 원없이 짜장면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하고 철없는 생각에 그랬던 것이지만, 어쨌든 그 정도로 짜장면을 좋아합니다. 배고플 때 먹는 짜장면의 달콤한 맛과 쫄깃한 면발은 정말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유튜브로 중식의 대가인 이연복 셰프가 짜장면 레시피를 공개하며 집에서 짜장면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해 주셔서 저도 열심히 봤습니다. 정말 가능하다면 저도 집에서 만들어 먹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연복 셰프가 다 만들고 나서 마지막에 반드시 MSG 한 꼬집을 넣어줘야 우리가 아는 그 짜장면의 맛이 난다고 하시더군요. 어떤 분들은 MSG를 넣는다는 말에 실망하기도 했을 테지만 저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중국집에서 사먹는 짜장면의 맛을 집에서 낼 수만 있다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반드시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이렇게나 좋아하는 짜장면에 대한 저의 생각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10년쯤 된 것 같습니다. 여전히 좋아하긴 하지만 예전 같지는 않습니다.회사에서 점심 메뉴로 오늘 뭐 먹을지 고민할 때 저는 고민하지 않았었습니다. 무조건 짜장면이고 저 때문에 강제로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짜장면을 먹어야 했으니 직장 동료들이 저를 위해 희생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변화가 시작되면서 점심 메뉴를 고를 때 짜장면을 선택하는 빈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짜장면에 대한 무한 사랑에 균열이 생긴 이유는 바로 가격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기억나는 짜장면의 가장 낮은 가격은 얼마였나요? 저는 500원이었습니다. 아마 예닐곱살 정도로 기억되는데 어머니께서 500원짜리 지폐를 주시면서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 하나 사먹고 오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500원이 동전이 아니라 이순신 장군님이 그려진 지폐였습니다. 물가가 오르면서 짜장면 가격이 점점 오르더니 급기야 결혼 후 아내와 주말에 곱빼기 하나와 보통 하나에 만원으로 올랐을 때부터 짜장면에 대한 저의 생각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저에겐 짜장면 두 그릇에 만원까지가 심리적인 저지선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집에서 이것저것 배달음식 주문이 가능한 상황에서 비슷한 가격으로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으므로 선택지에서 점점 제외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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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을 시켜 먹기 위해 딸아이와 둘이 시키면 배달비까지 15,000원 정도, 와이프까지 셋이서 시키면23,000원 정도 됩니다. 탕수육 없이 짜장면만 그렇더군요. 요즘 어디 가서 냉면 한 그릇 먹어도 만원이 넘어가니 이해는 되지만 선뜻 주문하지 못하고 주저하게 되는 제 자신이 낯설기만 합니다. ‘내가 짜장면을 두고 고민하다니’ 그거 얼마나 한다고 고민이냐고 제 자신을 다그쳐 보기도 하고 눈 딱 감고 일단 먹고 보자고 달래도 봤지만 그게 잘 안 됩니다. 그래서 요즘은 짜장면을 한달에, 아니 일년에 몇 번 안 먹게 되는 것 같습니다.먹더라도 쟁반짜장이나 간짜장을 시켜서 양념을 다른 곳에 부어놓고 냉장고에 넣어두면 나중에 짜장 볶음밥을 해먹습니다. 그래야만 손해봤다는 생각이 덜 들더군요. 하지만 짜장면의 맛은 여전히 최고라고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 돈 많이 벌어서 먹을 때 돈 생각 안 하고 먹을 줄 알았는데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여유도 좀 있고 배포가 커야 하는데, 반대로 속이 좁아지고 씀씀이가 날로 작아지는 느낌입니다. 얼마 전에는 제가 출장 간 사이에 와이프가 딸아이를 데리고 어머니 모시고 식당에 가서 실수로 한우를 30만원 어치 먹었다면서 미안해 하더군요. 그렇게 비싼지 모르고 막 시켜서 먹었더니 그랬다면서요. 제가 평소에 얼마나 뭐라고 했으면 그랬을까요. 어머니 모시고 한우 먹고 왔는데 많이 나와서 미안해 하는 와이프를 보고 반성 많이 했습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습니다. 어차피 당분간 집은 사긴 글렀고 남들처럼 주식이나 코인으로 손해본 적도 없는데 가족들 먹고 싶은 거나 눈치 안 보며 먹게 해줬어야지 뭐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한테 쓰면서도 이렇게 눈치를 보는데 하물며 처갓집 부모님께는 시도조차 못했을 테니 오히려 제가 미안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물가도 오르고 사회적인 위치는 오르는데 점점 씀씀이가 인색해지고 속이 좁아지는 느낌입니다. 한마디로 쪼잔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표준어로는 ‘쩨쩨하다’ 또는 ‘인색하다’라고 해야 하지만 어감이 살지 않아 ‘쪼잔하다’라는 표현을 써봤습니다. 짜장면 값이 오르면 그에 맞게 통이 커지고 베풀 줄도 알아야 하는데 점점 쪼잔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아버지를 닮아가나 봅니다. 짜장면을 저만큼이나 좋아하시고 쪼잔함의 끝판왕이신 우리 아버지를 말입니다. 그렇게 발버둥치며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거라 다짐하고 살았는데, 결국 뛰어넘지 못했나 봅니다. 짜장면 값은 앞으로도 계속 오를 테고, 저도 정비례로 점점 더 쪼잔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가족에게만은 통 크게 쓰며 살겠습니다.앞으로 남은 인생, 발버둥 더 쳐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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