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프로 선수이므로 돈도 중요하고, 많은 대중의 관심을 받는 공인으로서의 명예를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만큼 책임과 높은 수준의 윤리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불편함도 감수해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영예로운 것은 바로 “영구결번”입니다. 팬들과 구단이 모두 인정하는 레전드 중의 레전드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해당 구단에서 영구결번이 되면 이후 선수들은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번호를 달지 못합니다. 그만큼 그 번호를 계속해서 되새기고 기억하며 존경하자는 의미입니다.
영구결번은 누가, 어떻게 결정할까요? 사실 제대로 된 기준이 없는 것이 사실이고, 기준을 만든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팀과 팬을 위한 헌신을 정량화해서 기준으로 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아무리 해당 구단과 팬들이 원해도 다른 구단의 팬들이 인정하지 못하면 사실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선수여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원하는데 너희들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반대로 팬들이 저 정도면 영구결번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되는 선수들을 구단에서 영구결번 해주지 않는 선수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름 기준으로 삼는 것이 현재까지 영구결번 선수들의 커리어와의 비교일 것입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장효조와 김성한 정도는 당연히 영구결번으로 지정해줘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타팀팬 입장에서 봐도 그렇습니다. 기준이 선동열, 최동원, 이승엽이면 이 세상 어떤 선수가 영구결번이 될 수 있을까요? 기준에 대한 논란은 누구도 세울 수도 없고 오랫동안 논란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누가 봐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선수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쨌든 현재까지의 영구결번의 기준은 구단과 팬들이 원하고, 누구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선수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40년간 엘지트윈스의 팬으로서 노송 김용수 (41번), 적토마 이병규 (9번), 용암택 박용택 (33번)의 영구결번에 대해 대단히 만족스럽고 항상 기억하며 감동과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팀과 팬을 위한 헌신이라는 기준에 가장 완벽하게 부합하는 선수들이기 때문입니다.
2022년 현재 지금까지 한국 프로야구의 영구결번은 총 16명입니다. 앞으로 저는 영구결번 선수들의 통산 기록에 대해 한 명씩 다룰 예정입니다. 순서는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연도 순으로 정리했습니다.
모든 공식 기록은 KBO 공식 홈페이지를 참고 했고, 세부 정보는 나무위키와 위키피디아를 참고하여 보강했습니다.
KBO 공식 홈페이지 선수 조회
오늘은 그 여섯번째 시간으로, 대한민국 프로야구 영구결번, 연습생 신화, 한화 이글스의 장종훈 선수입니다. 장종훈 선수의 간단한 정보 먼저 확인하겠습니다.
선수 정보
이름 | 장종훈 | 생년월일 | 1968년 4월 10일 |
출신교 | 용담초 - 세광중 - 세광고 | 소속 팀 | 빙그레 이글스 한화 이글스 |
포지션 | 유격수 | 투타 | 우투우타 |
영구결번 번호 | 한화 이글스 35번 |
장종훈 선수가 한국 프로야구에 남긴 통산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고로 더 다양한 기록들이 있지만 최대한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요약 버전으로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클래식 스탯만 다룰 예정이니 이점 또한 양해 바랍니다.
한국 KBO 통산 기록 (정리 요약 버전)
연도 | 팀명 | 타율 | 경기 | 안타 | 홈런 | 타점 | 도루 | 사사구 |
1987 | 빙그레 | 0.270 | 95 | 76 | 8 | 34 | 1 | 39 |
1988 | 빙그레 | 0.241 | 108 | 83 | 12 | 57 | 3 | 53 |
1989 | 빙그레 | 0.254 | 112 | 65 | 18 | 46 | 6 | 40 |
1990 | 빙그레 | 0.290 | 120 | 119 | 28 | 91 | 8 | 80 |
1991 | 빙그레 | 0.345 | 126 | 160 | 35 | 114 | 21 | 91 |
1992 | 빙그레 | 0.299 | 125 | 129 | 41 | 119 | 14 | 119 |
1993 | 빙그레 | 0.295 | 97 | 100 | 17 | 58 | 12 | 67 |
1994 | 한화 | 0.267 | 80 | 65 | 10 | 34 | 5 | 38 |
1995 | 한화 | 0.326 | 126 | 137 | 22 | 78 | 8 | 74 |
1996 | 한화 | 0.266 | 90 | 77 | 15 | 57 | 8 | 48 |
1997 | 한화 | 0.293 | 121 | 125 | 22 | 76 | 15 | 67 |
1998 | 한화 | 0.275 | 118 | 120 | 17 | 66 | 3 | 48 |
1999 | 한화 | 0.284 | 126 | 132 | 27 | 86 | 4 | 62 |
2000 | 한화 | 0.264 | 127 | 118 | 28 | 81 | 1 | 63 |
2001 | 한화 | 0.273 | 120 | 100 | 15 | 54 | 11 | 49 |
2002 | 한화 | 0.248 | 101 | 75 | 12 | 42 | 2 | 26 |
2003 | 한화 | 0.243 | 83 | 50 | 6 | 24 | 1 | 23 |
2004 | 한화 | 0.255 | 70 | 39 | 6 | 27 | 0 | 10 |
2005 | 한화 | 0.091 | 7 | 1 | 1 | 1 | 0 | 0 |
19시즌 통산 | 0.281 | 1,952 | 1,771 | 340 | 1,145 | 123 | 997 |
사실 숫자만 놓고 보면 과연 영구결번으로 할만한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기준으로 숫자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무도 가질 수 없는 장종훈만의 불멸의 기록이 있습니다. 바로 당시 최다 홈런, 최다 타점, 최다 안타 신기록들입니다. 우리나라의 거포 유격수의 시작을 알린 타자가 바로 장종훈이며 그가 칠 때마다 모든 것이 최초의 기록이 되었습니다.
최초 40홈런 돌파, 최초 100타점 돌파, 최초 100득점 돌파, 타격부문 3, 4, 5관왕을 내리 3년간 차지했으며, 안타 160개로 당시 최다 안타 신기록까지 그가 치는 순간들 모두가 신기록 행진이었습니다. 저도 당시 야구를 볼때마다 장종훈만 나오면 허탈해지곤 했었습니다.
장종훈 선수는 이런 화려한 선수 경력에도 불구하고 시작은 초라했습니다. 당시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조건 대학교에 간 뒤 프로야구로 가게 되는데 장종훈은 대학도 가지 못하고 프로야구에서도 그에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고교야구 시절 이렇다할 활약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장종훈의 실력을 알아본 한 사람이 빙그레 이글스에 추천을 했고 입단 테스트를 받고 신고선수 자격으로 연습생으로 입단하게 됩니다. 이렇게 힘겹게 입단한 장종훈은 연습과 훈련에 매진하게 되고 하루에 스윙 연습을 6천번 이상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그의 연습생 신화가 시작되었고 1987년부터 주전 자리를 차지하더니 1990년부터 1992년까지 화려한 그의 전성기가 펼쳐지게 됩니다.
제가 장종훈을 기억할 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엄청난 파워와 타구 스피드였습니다. 연습으로 만들어 낸 결과였을 것입니다. 배트의 스윗 스팟이라 불리는 곳에 공을 정확히 맞히는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대부분 거포 유격수라고 하면 이종범이나 김하성을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홈런과 파워면에서는 최고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장종훈은 그야말로 거포 유격수였고 만화에서나 봤던 4번타자 유격수였습니다.
또 한가지 기억나는 것은 장종훈과 관련한 뉴스를 볼 때마다 신기록 얘기였습니다. 그가 칠 때마다 홈런, 안타, 타점은 항상 신기록이었습니다. 그만큼 당대 선수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장종훈의 은퇴 직전 마지막 경기가 2005년에 있었는데 마지막 타석에서 홈런을 기록하게 됩니다. 마지막까지 장종훈은 장종훈 다웠습니다.
엄청난 연습량과 노력에도 그는 타고난 신체를 가졌습니다. 별다른 부상이 없었고 19시즌을 뛰고 은퇴합니다. 매번 하는 얘기지만 1980년대는 혹사의 시대였고 관리의 개념이 없던 시절이어서 30살만 넘으면 은퇴하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장종훈은 무려 19시즌을 뛰었고 1999년 한화 이글스의 우승까지 이끌고 화려하게 은퇴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장종훈은 영구결번이 되었고 모두의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연습생 신화로 모든 야구인들과 팬들에게 희망을 준 그의 홈런 치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저는 “영구결번이란, 숫자로 기록을 남기고, 팬들에게 기억을 남기며, 노력, 열정, 헌신으로 많은 스토리를 남김으로써 히스토리가 된 선수들”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기록도 사실 따지고 보면 숫자 하나하나에 스토리가 있습니다. 결국 스토리가 남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종훈 선수는 그렇게 엄청난 기록과 팬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과 추억을 선사하며 한국 프로야구 사상 여섯번째 영구결번 선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그를 기억할 것입니다. 이제는 후배 선수들이 그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지만, 연습생 신화라는 별명처럼 팀과 팬을 위해 자신의 모든 투혼을 쏟아부은 선수로 기억될 것입니다.
장종훈 선수의 기록과 스토리는 여기까지입니다. 다른 세부 정보들은 나무위키나 위키피디아를 이용하시면 되며, 저는 단순 복사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한국 프로야구 영구결번 선수들 목록과 프로야구 관련 재미있는 정보들을 보시려면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프로야구 특집] 한국 프로야구 영구결번 - 8. 정민철 (한화 이글스 23번, 통산 기록 포함) (0) | 2022.0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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