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중대재해 사고백서 : 2023 위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발행 : 2023. 11.
□ 형식 : pdf 424 page
□ 제작 : 고용노동부, 안전보건공단
□ 자료 다운로드 : 중대재해 사고백서(2023 아직 위험은 끝나지 않았다)
날이 잔뜩 흐리고 눈발이 날리던 2022년 1월의 어느 날. 전남 지역 최고의 아파트가 될 A기업의 주상복합아파트 입주 예정자 이종일 씨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해당 아파트의 신축공사장에서 붕괴 사고가 일어난 것. 이로 인해 6명의 작업자가 매몰됐다는 뉴스 속보가 연신 흘러나왔다. 어릴 적 TV로만 보았던 붕괴 사고가 자신이 입주할 아파트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붕괴는 39층 꼭대기 층에서 시작돼 23층까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고, 매몰된 6명의 작업자는 결국 차디찬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 과정이 한 달여 동안 전국으로 생중계되었고, 붕괴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마음을 졸여야 했다. 이 사고는 최초 붕괴와 연쇄 붕괴로 나눠 볼 수 있다. 최초 붕괴는 39층 아래 전선, 수도 배관이 지나가는 피트(PIT)층 바닥이 꺼지면서 일어났고, 이후 낙하한 콘크리트를 하부층이 견뎌내지 못하며 무려 16개 층의 연쇄 붕괴로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건설사 측이 설계를 임의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안전성을 철저히 검토하지 않았고, 콘크리트 강도를 확보하지 않은 등 안전을 위한 필수 사항을 준수하지 않은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한다. 대형 건설사에서 야심차게 짓고 있었던 주상복합아파트의 붕괴, 2022년 대한민국에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사고가 발생한 것일까? 이를 막을 안전 시스템은 정녕 없었던 것일까?
2022년 10월 15일, 아침 해가 밝아오고 있었다. 이가형 씨는 퇴근을 한 시간여 앞두고 익숙한 손놀림을 바삐 하던 중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뭉친 소스를 걷어내기 위해 가형 씨가 식품혼합기에 잠시 손을 뻗은 순간, 눈 깜짝할 새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회전하던 날에 가형 씨의 오른팔이 끼어 식품혼합기에 그대로 몸이 말려 들어가고 만 것이다. 재해가 발생한 라인의 옆라인은 사고 후에도 작업을 강행하려 했다는 것이 알려지며 B기업 브랜드에 대한 전국적인 불매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게다가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사고가 발생한 B기업의 계열사에서 기계설비에 근로자의 신체가 끼는 사고가 있었다.
‘제빵업계의 대표 주자’라고 불릴 정도로 업계 영향력이 큰 대기업이 위험성평가를 통해 여러 차례 위험을 인지하고도 사고를 막지 못했던 이유가 뭘까. ‘아차’ 하는 순간 벌어지는 사고, 식료품 제조업 사고 1위 끼임 사고를 막기 위해, 여론의 뭇매를 맞은 B기업의 모그룹은 이후 무엇을 바꿔가고 있을까.
순식간의 일이었다. 굴착 작업을 하던 3명의 근로자가 쏟아져 내린 토사에 휩쓸려 매몰되었다. 설을 앞두고 총 1,000명이 넘는 연인원이 동원되어 혹한의 날씨에도 구조 작업을 벌였지만 굴착 작업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인력과 퇴사를 이틀 앞둔 예비 신랑은 한순간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속수무책으로 일어난 사고, 그런데 이들이 작업하던 현장이 애초에 굴착 작업을 하기엔 붕괴 위험이 높은 곳이었을 뿐 아니라 작업 전 다양한 사고의 시그널까지 있었다면?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전무후무한 사고가 일어났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틀 만에 발생한 첫 사고 사례이자, 그룹 오너가 기소된 첫 사례로 일선 경영책임자들뿐 아니라 각계각층이 이후 재판 결과를 주목하고 있기도 하다. 대체 이 위험한 생산 작업은 왜 멈춰지지 못했던 걸까. 인재(人災)를 부른 관행을 사라지게 할 안전장치는 없는 것일까.
올해 마흔아홉 살 유학수 씨는 유능하고 성실한 작업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그를 찾는 사람이 많았다. 몸을 쓰는 건설 현장에서 작업자들에게는 스포츠팀 같은 팀워크가 필요한 까닭에 유능하고 성실한 작업자를 모두가 원했다.
2022년 5월 14일 토요일,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 건물 증축 공사 현장. 그날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날이었다. 월요일부터 시작할 5층 철골 작업을 위해, 자재들을 미리 올려놓기로 했다. 2m가 넘는 철골 자재를 1층에서 5층까지 원활하게 옮기기 위해 안전난간을 해체하고 작업이 시작됐다. 현장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불과 몇 분 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거라곤 그곳에 있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추락 위험이 있는 곳에서 작업 시, 추락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안전난간, 추락방호망, 안전대가 대표적이다. 작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안전난간을 해체해야 한다면 추락방호망을 설치해야 하며, 그마저도 어렵다면 최소한 작업자가 안전대를 착용토록 해야 하지만 이 작업장에서는 어느 하나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소규모 건설 현장에서 일어난 비극, 그는 왜 안전난간을 해체하고, 안전대도 없이 작업에 나선 것일까? 더는 없어야 할 곡예 시공, 이를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은 정녕 없는 것일까?
올해 마흔셋 양양 씨는 중국에서 온 건설근로자이다. 고국에는 9살, 7살 난 아들 둘과 아내가 있다. 한국에 서 몇 년만 고생하면 고향에 돌아가 작은 가게 하나 차릴 정도의 목돈은 모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혈혈단신 한국을 찾았다. 코리아 드림을 꿈꾸면서 말이다. 그가 일하던 공사 현장은 서해안의 유명 해수욕장 바로 앞에 지어지고 있던 지하 3층, 지상 4층 근린생활시설. 이 건물에는 인피니티 풀을 포함한 총 4개의 수영장이 들어설 예정이었고, 건물이 지어지기만 한다면 이 일대의 명소로 떠오를 것이 분명했다. 2022년 3월 중순, 구조물 공사 공정률이 91%가 넘어갈 때쯤 양양 씨는 목수 반장과 함께 1층 수영장 보 거푸집 높이를 수정해 달라는 작업 지시를 받았다. 전날 도면대로 수영장 보 거푸집을 설치했는데, 몇 시간 만에 높이 수정 요청이 온 것. 나사를 돌려 높이를 조절할 수 있다고 판단한 목수 반장과 양양 씨는 흔쾌히 수정 작업을 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누구보다 성실했던 양양 씨는 유명을 달리했다. 황망한 죽음이었다. 사실 거푸집과 관련된 작업은 건설 현장에서 위험한 작업에 속한다. 그 때문에 반드시 도면을 검토하고, 작업계획서를 작성한 후 관리감독자의 감독하에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 현장에서는 어떤 안전 지침도 존재하지 않았다. 작업 지시는 오로지 도면과 구두로 이루어졌다. 안전에 관해서만큼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E기업 근린생활시설 건설 현장. 도대체 왜 최소한의 안전 지침도 지켜지지 않은 것인지 짚어 본다.
2021년 10월, 경남의 한 에어컨 부품 공장에서 일하는 윤학범 씨는 얼굴이 노랗게 변하는 황달 증세로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는 간 수치 이상. 당장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간 수치가 높게 나왔다. 사실 작업장 내에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직원이 여럿 있었다. 만성 피로, 황달, 복통… 결과는 모두 간 수치 이상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이라고는 아무리 생각해도 코로나 백신밖에 없었다. 다들 비슷한 시기에 코로나-19 백신을 맞았고, 실제로 백신 접종 후유증의 하나로 간 기능 일부 저하 손상이 보고된 바 있다. 하지만 직업 환경의학과 의사의 생각은 달랐다. ‘한 작업장에서 여러 사람이 황달 증세에 간 수치가 높다고? 아무래도 뭔가 이상한데….’ 중대재해처벌법 첫 기소 사례인 F기업 16명 급성중독 사고, 그 빙산의 일각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2022년 2월 9일, 두 여성의 인생을 바꾼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경북에 위치한 자동차부품 제조사 사내하도급업체에서 작업을 하던 50대 성은희 씨에게 한 물체가 날아들었다.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작업의 편리를 위해 쓰고 있던 수공구였다. 휴대폰보다 살짝 무거운 정도의 186g 플라스틱 수공구는 7m나 날아가 은희 씨의 머리 왼쪽을 가격했다. 이 수공구를 사용한, 은희 씨의 동료인 베트남 국적의 응이(nghi) 씨 역시 그날을 평생 잊지 못하게 됐다. 자신이 작업하다 잠깐 내려놓은 수공구 때문에 동료가 목숨을 잃게 될 줄이야.
누구도 원한 상황이 아니었다. 날아오는 물체에 사람이 맞아 일어나는 비래(飛來) 사고는 작업을 하던 해당 근로자가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다른 근로자가 예상치 못하게 치명적인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사전에 안전 시스템이 잘 갖춰진 작업환경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한다. 재해가 일어난 사업장의 도급업체는 수급업체 근로자가 임의로 사용한 공구 때문에 일어난 사고까지 책임질 수 없다지만, 정말 그럴까? 이 비극적인 사고를 막을 방법은 정말 없었을까?
어떤 작업 현장에서든 베테랑의 존재가 중요한 이유는 숙련도에 있다. 현장에서 겪은 수많은 경험은 상황을 예측하고 작업 시간을 단축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근로자의 능숙함과 상관없이 중량물을 다루는 곳에서는 철저한 절차 준수와 안전관리감독이 필수다.
2022년 3월, 국내 철근 공급 분야에서 손에 꼽힐 정도의 인지도를 자랑하는 I기업, 그곳의 수급업체 근로자가 1.2t 무게의 방열판에 허벅지가 깔리는 사고가 일어났다. 60대의 조영식 씨는 베테랑 근로자였다. 그는 재해가 일어나자마자 동료들에게 발견되어 의식이 있는 채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대동맥 파열 쇼크로 결국 저녁 무렵에 사망하고 말았다. 날벼락처럼 벌어진 사고, 그 위험을 정말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을까? 법원은 I기업 대표에게 징역 1년이라는 실형을 선고하며 엄중한 책임을 물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기업의 대표가 실형 선고를 받은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대체 그날,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베테랑 근로자가 방열판을 피할 수 없었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2022년 한 해 동안 산업현장에서 36명의 근로자가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많은 이들이 사다리에서의 추락이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한다. 흔히 추락사라면 고층 건물에서의 추락을 떠올리기 쉽지만 2~3m 높이에서도 충분히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사다리 재해 사고 통계를 분석해 보면 사망자의 73.9%가 균형 상실로, 43.6%가 2~3.5m의 사다리에서 작업 중 재해를 당했다는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2022년 1월 1일부터 아파트 설비과장으로 일을 시작한 양인호 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도 2.5m 높이의 사다리였다. 친형이 운영하는 시트지 도소매 가게에서 일하던 박현석 씨는 사다리에서 내려오던 중 30cm 높이에서 미끄러지며 넘어져 사망했다. 그의 또 다른 형이 사고 장면을 목격, 삼형제는 이날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맞이했다. 이처럼 산업현장에서 사다리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사다리 안전지침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특히 사고가 잦은 A형 사다리의 경우 사다리 위에서 작업하려면 안전모를 착용하고, 2인 1조 작업 지침을 지켜야 한다. 이 기본적인 지침이 현장에서 왜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것일까? 2022년 사다리 재해 사례를 통해, 사다리 사용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사고를 예방할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인지 짚어본다.
2022년 4월, 전국 각지에서 한 달 동안에만 근로자 3명이 지붕 공사 현장에서 추락으로 사망했다. 지붕 공사 현장에서는 대체로 지붕재를 교체하거나, 건물 철거를 위해 지붕재를 제거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노후화된 지붕재는 사람의 하중을 견딜 수 없는 경우가 많아 근로자는 자칫 한 발 떼었다 찰나의 순간 추락하게 된다는데…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지붕 위 아찔한 추락 사고.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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