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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특집] 한국 프로야구 영구결번 - 10.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11번, 통산 기록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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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프로 선수이므로 돈도 중요하고, 많은 대중의 관심을 받는 공인으로서의 명예를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만큼 책임과 높은 수준의 윤리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불편함도 감수해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영예로운 것은 바로영구결번입니다. 팬들과 구단이 모두 인정하는 레전드 중의 레전드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해당 구단에서 영구결번이 되면 이후 선수들은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번호를 달지 못합니다. 그만큼 그 번호를 계속해서 되새기고 기억하며 존경하자는 의미입니다.

 

영구결번은 누가, 어떻게 결정할까요? 사실 제대로 된 기준이 없는 것이 사실이고, 기준을 만든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팀과 팬을 위한 헌신을 정량화해서 기준으로 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아무리 해당 구단과 팬들이 원해도 다른 구단의 팬들이 인정하지 못하면 사실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선수여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원하는데 너희들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반대로 팬들이 저 정도면 영구결번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되는 선수들을 구단에서 영구결번 해주지 않는 선수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름 기준으로 삼는 것이 현재까지 영구결번 선수들의 커리어와의 비교일 것입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장효조와 김성한 정도는 당연히 영구결번으로 지정해줘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타팀팬 입장에서 봐도 그렇습니다. 기준이 선동열, 최동원, 이승엽이면 이 세상 어떤 선수가 영구결번이 될 수 있을까요? 기준에 대한 논란은 누구도 세울 수도 없고 오랫동안 논란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누가 봐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선수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쨌든 현재까지의 영구결번의 기준은 구단과 팬들이 원하고, 누구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선수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40년간 엘지트윈스의 팬으로서 노송 김용수 (41), 적토마 이병규 (9), 용암택 박용택 (33)의 영구결번에 대해 대단히 만족스럽고 항상 기억하며 감동과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팀과 팬을 위한 헌신이라는 기준에 가장 완벽하게 부합하는 선수들이기 때문입니다.

 

2022년 현재 지금까지 한국 프로야구의 영구결번은 총 16명입니다. 앞으로 저는 영구결번 선수들의 통산 기록에 대해 한 명씩 다룰 예정입니다. 순서는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연도 순으로 정리했습니다.

 

모든 공식 기록은 KBO 공식 홈페이지를 참고 했고, 세부 정보는 나무위키와 위키피디아를 참고하여 보강했습니다.

 

KBO 공식 홈페이지 선수 조회

 

KBO 홈페이지

KBO, 한국야구위원회, 프로야구, KBO 리그, 퓨처스리그, 프로야구순위, 프로야구 일정

www.koreabaseba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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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 열번째 시간으로, 대한민국 프로야구 영구결번, 무쇠팔 롯데 자이언츠의 최동원 선수입니다. 최동원 선수의 간단한 정보 먼저 확인하겠습니다.

 

선수 정보

이름 최동원 생년월일 1958524
출신교 구덕초 - 경남중 - 경남고 - 연세대 소속 팀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영구결번 번호 롯데 자이언츠 11

 

최동원 선수가 한국 프로야구에 남긴 통산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고로 더 다양한 기록들이 있지만 최대한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요약 버전으로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클래식 스탯만 다룰 예정이니 이점 또한 양해 바랍니다.

 

한국 KBO 통산 기록 (정리 요약 버전)

연도 팀명 방어율 경기 세이브 이닝 탈삼진
1983 롯데 2.89 38 9 16 4 208 2/3 148
1984 롯데 2.40 51 27 13 6 284 2/3 223
1985 롯데 1.92 42 20 9 8 225    161
1986 롯데 1.55 39 19 14 2 267    208
1987 롯데 2.81 32 14 12 2 224    163
1988 롯데 2.05 16 7 3 3 83 1/3 83
1989 삼성 2.10 8 1 2 0 30    9
1990 삼성 5.28 22 6 5 1 92    24
8시즌 통산 2.46 248 103 74 26 1,414 2/3 1,019

 

아마 통산 기록을 보면 놀라시는 분들 많으실 것입니다. 고작 8시즌 밖에 던지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최동원은 숫자로 설명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선수입니다. 우리나라에 선동열 (해태 거즈 18)과 함께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한 투수였습니다. 아마 관리만 잘 받았다면 우리나라의 투수 기록은 모조리 갈아치웠을 것입니다. 혹사의 시대에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게 혹사를 당한 선수가 바로 최동원 선수였습니다.

 

프로야구가 출범하던 1982년 이전에 최동원은 이미 실업야구라고 불리는 아마야구에서 씹어먹고 있었습니다. 프로야구가 출범하고 곧바로 입단하지 않고 실업야구에 남게 되는데 이유는 바로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때 이해창, 김재박, 장효조 등도 같은 이유로 프로야구 입단을 미루게 됩니다. 그렇게 입단을 미루면서까지 올인했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리나라는 우승을 했고, 특히 한일전에서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 한대화의 역전 쓰리런 홈런으로 승리한 장면은 40년 동안 백만번은 본 것 같습니다. 최동원의 팀과 국가에 대한 헌신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프로야구에 입단하기 전부터 실업야구도 최동원은 롯데 자이언츠에 있었습니다. 마지막 실업야구 결승전 시리즈 6경기 전 경기에 출전하여 211세이브를 기록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혹사의 서막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1983년 프로야구에 입단할 때 고민도 하지 않고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게 됩니다. 입단하자마자 곧바로 최동원의 혹사가 시작됩니다.

 

당시 프로야구는 1년에 100경기를 치렀습니다. (1982년은 80경기) 입단 첫 해인 1983년에 혼자서 38경기에 나와 9164세이브를 기록합니다. 208이닝을 던지고 148개의 탈삼진을 잡습니다. 아무리 관리의 개념이 없는 시절이라고는 하지만 해도해도 너무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야구에서는 선발투수가 투구수 관리를 받으며 5일 간격으로 30경기 정도에 200이닝을 던지는데, 100경기 중 38경기라면 혼자 다했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방어율이 2.89인데 16패를 했다는 것은 당시 롯데 자이언츠의 타격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를 반증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1983년과 1984년에는 선동열도 없던 시기였는데 말입니다.

 

최동원의 혹사는 1984년 정점을 찍습니다. 100경기 중 혼자서 51경기에 나와 27136세이브를 기록했고, 284이닝을 던져 223 탈삼진을 잡았습니다. 100경기 중 투수 한 명을 51경기에 내보내는 것은 거의 죽으라고 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2경기 중 1경기는 최동원이 던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동원 선수도 팀의 혹사 요구에 흔쾌히 응한 탓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승에 자신의 몸을 바칠 각오를 한 것이니까요. 실제로 1984년 그해 롯데 자이언츠는 우승을 합니다.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7차전까지 가는 혈투 중 5경기에 나와 41패를 기록합니다. 최동원 선수가 1차전 완봉승, 3차전 완투승, 5차전 완투패, 6차전 구원승, 7차전 완투승으로 롯데가 우승하게 됩니다. 누가봐도 최동원 혼자서 한 것 아닌가요? 74선승제인데 4승이 최동원 혼자 거둔 것이면 나머지 선수들은 좀 심하게 말하면 그저 그랬다는 것 아닌가요?

 

최동원은 입단 이후 5년 연속으로 완투와 완봉을 합쳐 거의 20차례씩 기록합니다. 40~50 경기에 나와 거의 절반은 완투 또는 완봉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 필요없고 혼자서 다 했다는 뜻입니다.

 

최동원의 1984년 탈삼진 기록도 엄청납니다. 역대 한국 프로야구 한시즌 탈삼진 기록을 한 번 보시죠.

투수 – 한 시즌 탈삼진 기록 Top 10

순위 선수명 팀명 기록 연도 경기 
1 미란다 두산 225 2021 144
2 최동원 롯데 223 1984 100
3 주형광 롯데 221 1996 126
4 장명부 삼미 220 1983 100
5 에르난데스 SK 215 2001 133
6 선동열 해태 214 1986 108
7 선동열 해태 210 1991 126
7 류현진 한화 210 2012 133
9 최동원 롯데 208 1986 108
10 스트레일리 롯데 205 2020 144

 

2021년 두산 베어스의 미란다 선수가 225개로 깨기 전까지 1984년 최동원의 223개 기록은 무려 37년간 깨지지 않았습니다. 최동원 선수의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하실 것입니다.

 

아무튼 최동원은 자신의 몸을 바쳐 1984년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을 이끈 뒤에도 혹사는 계속되었습니다. 1985년과 1986년에는 1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이어갑니다. 이닝도 5년 연속 200이닝 이상을 던졌고 탈삼진 개수도 선동열과 함께 1, 2위를 다투게 됩니다. 선발로 던지다가, 다음날 구원으로 나오고, 또 다음날에는 마무리를 하고, 다시 다음날에 선발로 나오는 일이 반복됩니다. 이렇게 최동원은 팀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 당시 모든 경기를 생중계로 지켜보던 저는 MBC 청룡 팬이었지만 어린 나이에도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최동원 선수가 너무 멋있었고 거의 모든 경기에 나와 던지는 열정과 투혼에 감동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1988년 최동원 선수는 우리나라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만한 역사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다른 팀 선수들이지만 선수들이 사고를 당하는 모습을 보고 선수들의 복지와 보호를 위해 선수협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사실 최동원 선수 정도의 레벨이면 그런 곳에 신경 쓰지 않아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테지만 최동원 선수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자신의 레벨 정도 되는 선수가 나서야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구단들과 KBO는 즉각 반발합니다. 감히 선수 주제에 노조를 만드냐는 것이죠. 언론들도 일제히 최동원을 비롯한 선수들에게 집중포화를 퍼붓습니다. 언론에 휘둘린 여론도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제 기억에도 신문에서 하도 뭐라고 하니 최동원이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으로 온 나라가 들썩일 때였으니 더욱 여론이 좋지 못했습니다. “야구 좀 한다고 데모하려고 노조를 만들려고 한다”, “직장인들보다 돈도 잘 벌면서 무슨 노조가 필요하냐”, “운동선수에게 노조가 왜 필요하냐등 말도 안되는 기사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결국 선수협회를 만들고자 했던 최동원의 꿈은 무산되었고 구단과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게 됩니다.

 

롯데 자이언츠는 팀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최동원 선수를 선수협회를 만들려고 했다는 이유로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합니다. 롯데 자이언츠의 최동원, 김용철을 포함한 5명과 삼성 라이온즈의 김시진, 허규옥, 장효조를 포함한 6명을 맞바꾸는 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트레이드를 하게 됩니다. 이 정도 멤버 구성이면 거의 팀을 맞바꾸는 수준입니다. 롯데 자이언츠 구단 입장에서는 괘씸했겠지만 최동원 선수 입장에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팀이 자신을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니 배신감과 허망한 감정이 들었을 것이라고 감히 짐작됩니다.

 

최동원은 그렇게 6시즌 동안 롯데 자이언츠에 모든 것을 바치고 삼성 라이온즈에서 2년간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만 33살의 나이로 은퇴를 하게 됩니다. 지금으로 치면 전성기를 누릴 나이에 은퇴라니 참 씁쓸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 동안 얼마나 혹사를 당해왔고 그만한 대가를 받지도 못하고 팀에게 버림까지 받았으니 멘탈까지 무너진 상태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게 최동원은 은퇴하고 부산시의원으로 출마했다고 낙선하기도 했고, 지금의 스포츠인들처럼 예능인으로 활동도 하고, 야구 해설가도 했고, 투수코치에 2군 감독까지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그러다가 대장암 판정을 받았고 수척해진 모습으로 팬들에게 안타까움을 주더니 급기야 2011년 대장암이 재발해 별세하시게 됩니다. 프로야구 레전드인 장효조 선수가 돌아가시고 며칠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가장 화가 난 지점은 바로 이때 롯데 자이언츠 구단의 행태 때문입니다. 타팀팬이지만 레전드에 대한 예우가 없어도 너무 없는 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롯데 자이언츠는 팀을 위해 온몸을 바친 최동원을 헌신짝처럼 버린 후로 레전드 대우를 해준 적이 없습니다. 최동원 선수도 오죽했으면 코치와 2군 감독을 한화 이글스에서 했을까요. 돌아가시기 전에 영구결번을 지정해줄 수 있는 기회가 20년 동안 얼마나 많았는데 허송세월 보내다가, 결국 돌아가시고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지 않겠다는 망발을 일삼았습니다. 팬들이 가만히 있었을까요? 들고 일어났죠. 그래서 하는 수없이 최동원 선수의 1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겠다고 발표합니다.

 

그래서 화가 납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극적으로 화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자신을 희생한 선수에게는 물론이고 당시의 모든 기억을 가진 팬들에 대한 예우 아닐까요? 설사 타이밍을 놓쳤다고 해도 그가 누구입니까. 최동원이잖아요. 최동원이면 끝난 거 아닙니까?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요? 저는 최동원 선수는 전 구단에서 영구결번을 지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선수협회를 1988년에 만들고자 노력했던 선수였으니까요. 그때부터 이미 선수들을 보호하고 처우 개선을 생각하신 분이니 당연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롯데 자이언츠는 돌아가시고도 정신 못 차리고 영구결번으로 지정하지 않겠다고 하니 그게 제정신으로 할 소리인가요? 결국 팬들의 성화에 못이겨 돌아가신 후 뒤늦게 영구결번식을 열어 11번을 롯데 자이언츠의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게 되었습니다.

 

최동원 선수가 생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선수협회의 꿈은 2000년에 드디어 많은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집니다. 초대 회장은 송진우 선수 ( 글스 21)였습니다. 당시에도 구단과 KBO의 반발이 심했습니다. 괘씸죄를 물어 보복성 트레이드를 당한 선수들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밀어부쳐 선수협회가 설립되었고 모든 야구인들의 꿈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야구인은 스타 플레이어 몇 명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유소년, 중고교, 대학, 독립리그 등 훈련 환경, 복지, 처우 등 지원 프로그램이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선수협회에 불만이 있습니다. 선수협회 홈페이지 (http://www.kpbpa.com/kwa-77855)에 가보면 선수협회의 연혁과 소개가 있습니다. 여기에 최동원 선수에 대한 얘기 한 줄이 없습니다. 1988년에 이미 선수협회를 꿈 꿨던 최동원 선수에 대한 얘기 한 줄 넣어주는 게 그렇게나 어려운 일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2000년에 설립될 때 같이 안 했다고 그런 거라면 더욱 욕을 먹어야 합니다.

 

한국 프로야구에 다시 나오지 않을 불멸의 투수 최동원 선수는 그렇게 영면했고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선동열의 슬라이더와 함께 당대를 풍미했던 최동원의 역동적인 투구폼과 폭포수 커브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참고로 최동원과 선동열은 총 3번의 선발 맞대결을 펼쳤고 111패를 기록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선발 맞대결에서 연장 15회까지 가는 승부 끝에 둘 다 2실점 완투에, 최동원은 209개의 공을, 선동열은 232개의 공을 던졌고, 그 경기가 영화 퍼펙트 게임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정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게임이었습니다.

 

혹사를 당하면서도 팀과 팬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던졌던 최동원 선수를 기리며 최동원 기념사업회에서 2014년부터 매년 최동원 상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프로야구 원로들이 선정위원회를 통해 선정하고 있으며 미국의 사이영상과 유사하게 한 시즌 동안 최고의 투수에게 주어지는 상입니다. 지금까지 양현종, 유희관, 장원준, 린드블럼, 알칸타라, 미란다 등이 받았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최동원2011년 돌아가시고 나서  등번호 11이 영구결번이 되었습니다. 선수 생활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짧은 기간 동안 짧고 굵게 모든 야구 팬들에게 강렬한 기억과 추억을 남긴 최동원 선수의 역동적인 투구폼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는 “영구결번이란, 숫자로 기록을 남기고, 팬들에게 기억을 남기며, 노력, 열정, 헌신으로 많은 스토리를 남김으로써 히스토리가 된 선수들”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기록도 사실 따지고 보면 숫자 하나하나에 스토리가 있습니다. 결국 스토리가 남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동원 선수는 그렇게 엄청난 기록과 팬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과 추억을 선사하며 한국 프로야구 사상 열번째 영구결번 선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그를 기억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선동열과 함께 투수에 대한 얘기, 투구폼에 대한 얘기, 커브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회자되고 소환될 것입니다. 최동원 선수는 팀과 팬을 위해 자신의 모든 투혼을 쏟아부은 선수로 기억될 것입니다.

 

최동원 선수의 기록과 스토리는 여기까지입니다. 다른 세부 정보들은 나무위키나 위키피디아를 이용하시면 되며, 저는 단순 복사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한국 프로야구 영구결번 선수들 목록과 프로야구 관련 재미있는 정보들을 보시려면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프로야구 특집] KBO 한국 프로야구 영구결번 선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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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영구결번 11번 최동원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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