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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특집] 한국 프로야구 영구결번 - 13. 이병규 (LG 트윈스 9번, 한일 통산 기록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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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프로 선수이므로 돈도 중요하고, 많은 대중의 관심을 받는 공인으로서의 명예를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만큼 책임과 높은 수준의 윤리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불편함도 감수해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영예로운 것은 바로영구결번입니다. 팬들과 구단이 모두 인정하는 레전드 중의 레전드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해당 구단에서 영구결번이 되면 이후 선수들은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번호를 달지 못합니다. 그만큼 그 번호를 계속해서 되새기고 기억하며 존경하자는 의미입니다.

 

영구결번은 누가, 어떻게 결정할까요? 사실 제대로 된 기준이 없는 것이 사실이고, 기준을 만든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팀과 팬을 위한 헌신을 정량화해서 기준으로 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아무리 해당 구단과 팬들이 원해도 다른 구단의 팬들이 인정하지 못하면 사실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선수여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원하는데 너희들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반대로 팬들이 저 정도면 영구결번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되는 선수들을 구단에서 영구결번 해주지 않는 선수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름 기준으로 삼는 것이 현재까지 영구결번 선수들의 커리어와의 비교일 것입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장효조와 김성한 정도는 당연히 영구결번으로 지정해줘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타팀팬 입장에서 봐도 그렇습니다. 기준이 선동열, 최동원, 이승엽이면 이 세상 어떤 선수가 영구결번이 될 수 있을까요? 기준에 대한 논란은 누구도 세울 수도 없고 오랫동안 논란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누가 봐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선수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쨌든 현재까지의 영구결번의 기준은 구단과 팬들이 원하고, 누구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선수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40년간 엘지트윈스의 팬으로서 노송 김용수 (41), 적토마 이병규 (9), 용암택 박용택 (33)의 영구결번에 대해 대단히 만족스럽고 항상 기억하며 감동과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팀과 팬을 위한 헌신이라는 기준에 가장 완벽하게 부합하는 선수들이기 때문입니다.

 

2022년 현재 지금까지 한국 프로야구의 영구결번은 총 16명입니다. 앞으로 저는 영구결번 선수들의 통산 기록에 대해 한 명씩 다룰 예정입니다. 순서는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연도 순으로 정리했습니다.

 

모든 공식 기록은 KBO 공식 홈페이지를 참고 했고, 세부 정보는 나무위키와 위키피디아를 참고하여 보강했습니다.

 

KBO 공식 홈페이지 선수 조회

 

KBO 홈페이지

KBO, 한국야구위원회, 프로야구, KBO 리그, 퓨처스리그, 프로야구순위, 프로야구 일정

www.koreabaseba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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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 열세번째 시간으로, 대한민국 프로야구 영구결번, 적토마 LG 트윈스의 이병규 선수입니다. 이병규 선수의 간단한 정보 먼저 확인하겠습니다.

 

선수 정보

이름 이병규 생년월일 1974128
출신교 서울청구초-서대문중-장충고-단국대 소속 팀 LG 트윈스
주니치 드래곤즈
포지션 외야수 투타 좌투좌타
영구결번 번호 LG 트윈스 9

 

이병규 선수가 한국 프로야구에 남긴 통산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고로 더 다양한 기록들이 있지만 최대한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요약 버전으로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클래식 스탯만 다룰 예정이니 이점 또한 양해 바랍니다.

 

한국 KBO 통산 기록 (정리 요약 버전)

연도 팀명 타율 경기 안타 홈런 타점 도루 사사구
1997 LG 0.305 126 151 7 69 23    51
1998 LG 0.279 124 139 9 67 11    39
1999 LG 0.349 131 192 30 99 31    43
2000 LG 0.323 129 170 18 99 14    57
2001 LG 0.308 133 167 12 83 24    58
2002 LG 0.293 109 114 12 43 9    52
2003 LG 0.279 44 43 5 30 1    22
2004 LG 0.323 129 160 14 64 8    62
2005 LG 0.337 119 157 9 75 10    43
2006 LG 0.297 120 142 7 55 3    35
2010 LG 0.290 117 117 9 64 3    37
2011 LG 0.338 127 164 16 75 2    30
2012 LG 0.300 118 126 5 41 5    24
2013 LG 0.348 98 130 5 74 2    24
2014 LG 0.251 62 49 2 25 1    10
2015 LG 0.219 54 21 1 9 0    5
2016 LG 1.000 1 1 0 0 0    0
17시즌 통산 0.311 1,741 2,043 161 972 147 592

 

일본 NPB 통산 공식 기록 (정리 요약 버전)

연도 팀명 타율 경기 안타 홈런 타점 도루 사사구
2007 주니치 0.262 132 125 9 46 0    23
2008 주니치 0.254 105 106 16 65 1    23
2009 주니치 0.218 28 22 3 8 0    5
3시즌 통산 0.254 265 253 28 119 1    51

 

한국, 일본 합계 통산 비공식 기록 (정리 요약 버전)

타율 경기 안타 홈런 타점 도루 사사구
0.303 2,006 2,296 189 1,091 148 643

 

이병규는 LG 트윈스의 암흑기의 시작과 끝을 모두 현장에서 지켜본 당사자였습니다. 선수 시절 이미 입담이 좋고 스타 플레이어로서의 자질은 타고 났다고 정평이 났었습니다. 영구결번의 가장 중요한 자격 중 하나인 원클럽맨, 즉 한 팀에서만 뛰며 팀과 팬들에게 헌신한 대표적인 선수입니다.

 

이병규 선수 본인은 엄청난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누가봐도 타격 천재였습니다. 배드볼 히터라는 수식어가 항상 쫒아다녔던 선수였습니다. 볼넷으로 출루하는 것을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볼이든 스트라이크든 가리지 않고 휘둘러댔습니다. 그 결과 타율 12, 최다 안타 14회를 했고 데뷔 시즌인 1997년에는 신인왕을 수상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타격은 타고났다고 봐야 합니다. 저는 실제로 TV로 야구 중계를 보다가 이병규 선수가 원바운드 공을 쳐서 안타를 만든 것을 본 적도 있었을 정도입니다. 투수가 던지면 그냥 치면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한 선수입니다. 그리고 그 말을 통산 타율 0.311로 증명해낸 것이고요. 2013LG가 암흑기에서 벗어난 그 해에 이병규 선수는 만으로 39, 한국 나이로 40세에 타율 0.348로 타격왕에 오릅니다. 정말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를 만큼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이병규 선수는 1999LG 트윈스 선수로서는 이례적으로 홈런 30, 도루 30, 30-30 클럽에 가입합니다. 30-30 기록은 박재홍이 3차례, 이종범이 1차례, 홍현우가 1차례, 한화 이글스의 용병이었던 데이비스가 1차례, 그리고 이병규가 1차례 기록했습니다. 그리고는 2015년 역대급 용병이었던 NC 다이노스의 테임즈가 한국 프로야구의 전무후무한 40-40 기록을 달성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깨지기 힘든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어쨌든 이병규의 30-30 기록이 왜 대단하냐면 잠실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쓰는 선수에게 거의 불가능한 기록이었기 때문에 대단하고, 테임즈가 40-40을 달성하기 전까지 30-30을 기록한 유일한 좌타자였기 때문입니다. 이승엽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좌타자들은 거의 교타자로 안타 생산 능력만 있고 홈런은 잘 못친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이병규와 이승엽이 대형 거포 좌타자가 된 것입니다. 여기에 이병규는 도루 능력까지 뛰어나 30-30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병규 선수의 KBO리그 최다 안타 기록은 2,043개지만 일본에서 253개를 기록하여 비공식 기록이지만 2,296개입니다. 일본에서는 성적이 신통치 않아 많이 못쳤던 것을 감안하면, 만약 일본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양준혁의 기록을 넘어 통산 최다 안타 1위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박용택에게 깨졌을 테고, 만약 이승엽까지 일본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더더욱 깨기 힘든 기록들이 나왔을 것 같습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2천여개의 안타 중 1/3 정도는 스트라이크가 아닌 볼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유명한 배드볼 히터였습니다.

 

이병규 선수의 수비에 대해 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수비를 성의없게 설렁설렁한다고 라뱅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입니다. 동네 슈퍼에 라면 사러 가듯이 설렁설렁 수비한다고 붙여진 별명입니다. 그렇게 보면 메이저리그 외야수들 중 라면 수비 선수들 많습니다. 지금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고 있는 푸이그도 마찬가지 입니다. 수비를 원래 잘하니 여유가 생겨 그렇게 보인 것뿐 외야 수비 능력은 정상급이었습니다. 외야수 골든글러브를 6회나 받았으니 타격과 수비 모두 인정받았습니다. 아마도 타격이고 수비고 너무 잘하니 얄밉고 꼴보기 싫어서 그런 별명이 붙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병규 선수의 은퇴 직전 팬들은 화가 많이 나 있었습니다. 바로 당시 양상문 감독에게 화가 났던 것이었습니다. 팀의 리빌딩과 미래를 위해 베테랑이었던 이병규 선수를 기용하지 않고 신인 선수들에게 기회를 줬던 것입니다. 물론 감독은 그럴 수 있고 그래야만 합니다. 하지만 납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쉽습니다. 왜냐하면 2군에서 이병규 선수가 날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어 에이징 커브로 더 이상 예전의 모습만큼 잘할 순 없다고 쳐도 2군에서 잘하고 있는 베테랑이라면 최소한 출전 기회는 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군과 2군에 왔다 갔다 몇 번하면 베테랑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은퇴를 생각할 수밖에 없을 텐데 2군에서 잘하든 못하든 기회 자체를 안 주면 다 필요없고 그냥 은퇴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팀과 팬들을 위해 헌신한 고참 선수를 멘탈과 영혼까지 털어서 내보낼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양상문 감독도 나름의 철학과 신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팬들에 대한 배려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감독이 팬들에게 휘둘리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병규 선수 정도의 영구결번 대상 선수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못하는데 팬들이 우겨서 넣어달라는 것도 아니고 2군에서 잘하고 있어서 팬들이 요구하면 들어주는 척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이병규 선수 덕분에 출장 기회를 받아 지금 잘 된 외야수가 누가 있나요? 김현수 FA, 박해민 FA, 홍창기 신인, 박용택 은퇴, 이형종 2, 이천웅 2군 등 당시 뛰던 외야수 다 없고 외부 영입으로 대박을 친 팀이 되어버렸습니다. 프로야구는 무조건 Fan First (팬 퍼스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장에서 야구 전문가들이 더 잘 알고 더 잘하겠지만 팬들을 이렇게까지 무시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중간 어딘가 절충하는 지점을 잘 찾는 것도 감독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병규 선수는 급기야 2016년 은퇴를 결심하고 마지막 경기에서 양상문 감독은 이병규 선수에게 한 타석 기회를 줍니다. 이병규 선수는 그걸 또 안타를 쳐내며 화려하게 선수생활을 마무리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일본에서 파견근무를 하고 있어서 중계로만 지켜봤는데 마지막 경기와 다음해 은퇴식과 영구결번식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이병규 선수에 대한 애정때문이기도 했고, 저는 이병규 선수와 동갑이어서 나와 같은 나이의 선수는 더 이상 야구를 못한다는 생각을 하니 더 서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신인왕을 받을 때부터 LG 트윈스의 암흑기 전체를 다 경험하면서 힘든 야구생활 모두 지켜봤기 때문에 어떤 감정이었을지 팬들은 다 알기 때문입니다. 팬들과 동료 선수들 모두 다 같이 울었습니다.

 

이병규 선수는 1997년과 2002년에 한국시리즈를 경험했지만 아쉽게 두번 다 준우승에 그칩니다. 1997년은 해태 타이거즈에게, 2002년은 삼성 라이온즈에게 졌습니다. 이후 암흑기 중 일본에 건너가 3시즌을 뛰었지만 그닥 성적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병규 선수에게 절실했던 우승 반지를 일본에서 받게 됩니다. 주니치 드래곤즈가 2007년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했던 것입니다. 한국에서 한국시리즈 준우승 2번에 팀은 암흑기에 들어가 가을야구 한 번 못하고 있던 중 일본에 진출한 첫해에 우승 반지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영구결번 선수들 중 한국이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우승 경험이 없는 선수들은 김영신 선수, 김태균 선수, 박용택 선수밖에 없습니다. 이만수 선수는 코치로서 미국에서 우승 경험이 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이병규는 2017년에 은퇴하자마자 등번호 9이 영구결번이 되었습니다. 적토마 이병규의 화려한 선수시절 팀과 팬을 위해 헌신한 것에 대해 모두가 인정한 것입니다. 폭발적인 안타 생산 능력과 팀이 필요로 할 때 한방씩 쳐주는 능력, 그리고 특유의 으쌰으쌰 세리모니 등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는 “영구결번이란, 숫자로 기록을 남기고, 팬들에게 기억을 남기며, 노력, 열정, 헌신으로 많은 스토리를 남김으로써 히스토리가 된 선수들”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기록도 사실 따지고 보면 숫자 하나하나에 스토리가 있습니다. 결국 스토리가 남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병규 선수는 그렇게 엄청난 기록과 팬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과 추억을 선사하며 한국 프로야구 사상 열세번째 영구결번 선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그를 기억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배드볼 히터, 30-30 클럽, 좌타자 타격 이론 등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회자되고 소환될 것입니다. 이병규 선수는 팀과 팬을 위해 자신의 모든 투혼을 쏟아부은 선수로 기억될 것입니다.

 

이병규 선수의 기록과 스토리는 여기까지입니다. 다른 세부 정보들은 나무위키나 위키피디아를 이용하시면 되며, 저는 단순 복사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한국 프로야구 영구결번 선수들 목록과 프로야구 관련 재미있는 정보들을 보시려면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프로야구 특집] KBO 한국 프로야구 영구결번 선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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